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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마련했다는 이명박 차기 정부의 영어교육강화방안이 오히려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할 수 있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 "영어교육 광풍, 학부모는 한숨 쉬고, 학원은 무릎 치고!"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마련했다는 이명박 차기 정부의 영어교육강화방안이 오히려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할 수 있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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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영어를 잘하면 저절로 강대국이 될까?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은 영어가 공용어인데도 다 잘사는 것은 아닌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013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영어시험 대신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도입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또 영어로 일반 과목을 지도하는 영어몰입교육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지금의 영어교육 체계로는 학생의 영어활용 능력을 높이지도, 막대한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 같은 방안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차기 정권이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은 나쁘지 않다. 국제화 사회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이제 특정 국가의 언어라기보다 국제공용어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시험성적과 영어구사능력이 따로 가는 현 영어교육체계는 비효율적이어서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전체 사교육비 30조원 가운데 15조원이 영어 사교육비인 상황에서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차기 정부의 생각도 좋다.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영어교육강화 방안을 너무 조급하게 추진하는 데 있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공청회 개최와 같은 최소한의 의견수렴도 하지 않고 마치 혁명하듯 일처리를 하고 있다.

각계에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와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뜻'이라며 밀고 나가는 식이다. '영어교육이라도 해결하여 사교육비를 줄여주고 싶은데 진심을 몰라준다'며 오히려 반대 여론에 서운해 하는 느낌마저 든다.

공교육에서는 준비되지도 상태에서 서둘러 이것을 시행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모든 성과를 차기 정부 5년 내에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아무 이유없이 나온 게 아니다.

국어 잘 해야 다른 나라 언어 잘 한다는 것 상식 아닌가


이명박 차기 정권의 영어교육확대방안이 우리말 우리글의 소중함을 잊게 하고 미국 사대주의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미국 뉴욕의 자유 여신상.
▲ "영어교육 확대는 미국 사대주의 초래할 수 있어" 이명박 차기 정권의 영어교육확대방안이 우리말 우리글의 소중함을 잊게 하고 미국 사대주의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미국 뉴욕의 자유 여신상.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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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영어교육강화 방안은 첫째, 국어 실력을 떨어지게 할 수가 있다. 그러잖아도 영어가 홍수를 이루는 세상이다. 여기서 이 방안이 실시되면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교육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시험 비중과 수업 시수가 많은 과목을 더 많이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영어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우리말 우리글로 독서하고 토론하고 글 쓰는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토대가 없는 가운데 아무리 영어 시간을 늘려도 영어 실력이 어느 한계점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국어를 잘해야 다른 나라 언어도 잘한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사실 전문가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노출시킨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모국어부터 확실하게 지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글 정체성이 훼손될 수가 있다는 이유로 차기 정권의 영어교육강화방안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겠다. 이런 주장을 고리타분한 국수주의라며 귀 기울여 듣지도 않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주장하는 능률적인 영어 교육을 위해서라도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공부가 우선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오히려 차기 정권은 각 대학교에 '정시논술 퇴출'을 유도하여 우리말 우리글로 이루어지는 독서·글쓰기 교육을 후퇴시키고 있다.

둘째, 이명박 정권의 영어교육강화 방안은 사교육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몇 배 더 들게 할 수 있다. 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공교육 외에도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어 교육 환경이 좋은 지역과 그 반대의 지역은 더욱 격차가 벌어질 게 확실하다.

기러기 가족을 없애기 위해 영어교육강화방안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기러기 가족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해외 단기유학이든 방학 중 어학연수든 증가할 게 불 보듯 환하다. 벌써부터 영어학원들과 유학업체들은 전례 없는 대박을 맞았다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셋째, 공교육에서 차기 정부의 방안을 실시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지금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교사가 크게 부족하다. 단기간에 이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반에 수준 차이 나는 학생이 35~40명 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교육하기도 힘이 든다.

특히 영어몰입교육은 학생들의 학과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트릴 수가 있다. 영어 이외의 과목에서는 수업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면 영어 수업을 이해하기 위한 영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조차 정착되지 않은 영어몰입교육을 강행할 경우에 오히려 혼란만 늘어날 것이다.

영어몰입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현직 교사들에 대한 중장기적인 재교육과 원어민 교사 확보가 급선무다. 반별 학생 수도 현재보다 훨씬 적게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방안이 옳을 수도 있으나 준비 기간이 있어야 학교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다.

영어 공용어 택한 나라들, 다 경제적으로 잘 살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명박 차기 정권은 일단 여론이라도 폭넓게 수렴하여 영어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하고, 여기에 근거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론을 수용하라는 말을 상투적인 주장이라고 깎아내려서는 곤란하다. 범국민적인 교육개혁기구 또는 영어교육혁신기구라도 만들어 교육전문가, 교사, 교수, 학부모,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보라는 말이다.

아울러 차제에 영어교육을 어느 연령대부터 어느 정도로 교육해야 할지에 대한 필요성도 근원적으로 살펴보기 바란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은 많은 나라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데도 전부 다 경제적으로 잘 살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잘 산다는 가설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영어교육개혁을 절대로 차기 정부 당대에서 완성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문제제기로 영어교육이 개선된다면 5년 내에 성과가 없어도 후대에서 평가해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급증을 버려라.


태그:#영어, #논술, #우리글, #한글, #영어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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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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