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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격으로 쏟아지는 차기 정부 교육 개편안에 대한 보도는 정확한 내용 없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지는 차기 정부 교육 개편안에 대한 보도는 정확한 내용 없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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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인의 교육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에는 전제 하나가 깔려 있다. 즉, 학생과 학부모들은 지금 인수위가 쏟아내는 교육정책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부에 열중하는 예비 고3 수험생들에게 물어봐도 이렇다 할 의견을 내는 학생을 만나기 힘들다. 의견을 제시하기에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아직 성장기인 학생들이라 학년이 내려갈수록 인지수준이 부족해 중학생까지 가면 뭘 물어본다는 게 어려워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입시제도조차 이해하지 못해 교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학부모가 많다. 때문에 인수위의 교육 개편안에 대한 쏟아지는 언론 보도는 학부모들의 혼란만 가중 시키고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잘은 모르겠지만 바뀐다고 하니 막연한 불안에 휩싸이는 것이다.

갈팡질팡 수험생들... 인수위의 가장 큰 죄는 '혼란 야기'

지금 교육 현장에는 논술이 폐지되고 수능 등급제가 없어진다는 '루머'만이 돌고 있다. 물론 어떤 언론 보도를 봐도 이를 확신할 수는 없다. 이런 판국에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이명박 당선인이 설립하겠다는 자율형 사립고나 기숙형 공립고등학교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질 리 없다.

하지만 교육 정책의 근본에 대해 관심이 없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학벌이 카스트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장 학교에서 정치 과목을 가르쳐도 올해 수능에 무엇이 나올지를 가르치는 것이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의 역할이지,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시민의식 고양'이라는 본래 교육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교육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핵심 교육정책은 사교육비의 급격한 증가를 예고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걱정하는 100인 선언'을 하고 있다.
 교육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핵심 교육정책은 사교육비의 급격한 증가를 예고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걱정하는 100인 선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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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인수위의 가장 큰 잘못은 올해 입시안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인수위는 각종 설익은 정책들이 보도되도록 방치했다.

부동산과 교육은 다른 듯이 똑같다. 남이 아파트를 사서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당황하는 것이나 남의 아이가 앞서가는 모습에 불안해 하는 것은 모두 끝없는 경쟁의 소산이다. 민감한 사안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인수위는 시장이 꿈틀댈 조짐을 보이자 부동산 세제 개편은 1년 동안 시장 상황을 봐가며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은 이런 '립 서비스'조차 없었다.

자율형 사립고 확대나 기숙형 공립고 설립 등은 중학생과 학부모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평준화의 근본 틀이 깨어진다는 것은 고등학교 입시가 대학 입시의 전초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학생들의 학부모의 불안 심리는 가중되고 있고 사교육은 발빠르게 이에 대응하고 있다.

사교육 시장의 성장은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양분'으로 한다. 다른 학생들보다 대비가 늦었다는 말 한마디에 사교육비에 대한 투자는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더 빨리, 더 많이 해서 남보다 앞서겠다는 심리에는 어떤 교육학 이론도 소용없다.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효과가 높은 판매전략이다. 대한민국 사교육은 이 점에서 자본주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다.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수위의 행동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와 기숙형 공립고 도입만 해도 그렇다. 공약으로 내세우고 당선된 인수위 측이나 이를 보도해야 할 언론 등 어느 곳도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해야 할 당사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곳에 오직 불안감만이 독야청청하고 있다.

학교 많이 지어 경쟁 낮춘다? 인수위의 얕은 교육 인식

적어도 '청계천'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추진력을 알고 있는 중학생 예비 학부모들은 지금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다닐 것이다. 적어도 6년 후에나 벌어질 입시 문제가 당장 3년 뒤에 전초전을 치러야 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어떻게 상담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친절한 상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힘이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니 현직 교사로 설명을 곁들이자면, 자사고 확대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 기숙형 공립고다. 이미 기숙형 고등학교는 지방 여러 곳에 세워져 언론을 통해 보도도 많이 됐다. 쉽게 이야기하면 학교에서 먹고 자고면서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자사고가 확대되면 천정부지로 치솟을 학비와 사교육비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교육 자원의 배려라면 배려다. 귀족학교가 될 것이라는 자사고 비판에 대한 정책적 대안인 셈이다.

그러나 기숙형 공립고에서도 교육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다. 이미 기숙형 입시학원이 여러 곳에서 성업 중이다. 앞선 사교육의 발상을 공교육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교통이 발달해 어지간한 곳에서는 어머니가 지어준 밥 먹고 등교할 수 있는데도 학생들을 기숙사에 몰아넣겠다는 발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인수위도 이미 알 것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대부분 대도시에 설립될 것이고, 설사 지방 중소도시에 지어져도 인근 주민들의 자녀가 들어가기는 힘들어질 것이란 사실을. 그래서 지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기숙형 학교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기숙사 운영에 대한 예산 문제와 관리 문제, 이에 대한 교육적 의미에 대한 세밀한 고찰은 없이 말이다.

특목고 입시 문제가 심각하니 숫자를 늘려 경쟁률을 낮추겠다는 얕은 인식 수준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아파트만 많이 지으면 부동산 문제는 해결된다는 단순한 시장논리의 연장선이다. 공급이 늘어나서 경쟁률이 떨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급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다. 특목고 숫자가 늘어나면 날수록 여기에 들어가려는 학생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교육의 구조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육을 논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단순한 공급 확대가 입시의 중압감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은 현 대학입시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지금 대학 숫자는 남아돌고 있다. 지방대학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교수들이 세일즈를 하러 여러 고등학교에 선물 들고 다닌 지 오래다. 더 좋은 대학을 향한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한 양의 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논술 치는 대학 가도록 우선 내신공부하세요"

한국 교육의 문제는 '불안감'이다. 고등학생 80%가 논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논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로 인한 반사이익은 사교육 시장이 모두 가져가고 있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불안감'이다. 고등학생 80%가 논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논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로 인한 반사이익은 사교육 시장이 모두 가져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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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과 논술, 내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됐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킨 조어다. 조·중·동이 설파한 논리지만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은 허점이 많다. 일단 세칭 SKY가 내신을 무력화했다. 삼각형의 가장 큰 축인 내신이 청와대가 힘세다고 인정한 대학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결국 일류대를 가려는 학생들에게 내신은 극복 못할 대상이 아니었다.

논술 역시 마찬가지다. 논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나에게 학생과 학부모가 의논해 오면 해주는 말이 있다.

"먼저 논술을 치는 대학에 갈 성적이 되도록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논술을 입사사정안에 포함 시키는 대학은 대부분 상위 10% 안에 들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 정도가 목표 사정권에 들어오는 학생은 적어도 상위 20%에서 30% 성적은 유지되야아 한다. 그러나 한국 고등학생들은 80% 선까지 논술을 공부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 신문사가 논술 대비 교육 섹션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효과는 둘째로 하고 같이 대비해 안심이라도 하려는 요량이다.

여기에 정부마저 앞장 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느 사이 인수위의 설익은 정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보고 있는가? 바로 사교육 담당자들이다. 이명박 특수에 대한 기대가 사교육 시장을 들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 사교육 시장이 함께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으로 몰아간다면, 이 나라 교육은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한국 교육은 '경쟁'에 대한 근본 구조를 깨뜨리지 않는다면 어떤 정책이 나와도 해결이 어렵다. 해결이 어렵다고 손 놓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교육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은 제어장치 없이 상승 중이다. 이런 말하기는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인수위의 개혁의지가 교육계의 안정을 깨뜨리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무엇보다 중심을 잡아야 할 곳은 정책 집행의 힘을 가진 곳이다.


태그:#이명박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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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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