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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가 만나 이룬 놀라운 생태계인 낙동강 하구. 이곳에서는 멸종위기야생동물2급이면서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광활한 갯벌과 모래톱, 때론 바다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고니. 이대로 가면 '겨울철 진객' 고니를 낙동강 하구에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을 하면서 19일 낙동강 하구를 찾았다. 습지와새들의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이 새해에 처음으로 고니를 관찰하러 간다고 해서 동행했다. 추운 날씨가 한 풀 꺾여 망원경과 망원카메라, 쌍안경을 울러 메고 나선 것이다.

 

먼저 아미산(해발 234m)에 올랐다. 낙동정맥의 최남단으로 낙동강 하구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를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난간을 어른 가슴 높이까지 해놓아 어린이들은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를 쉽게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름도 아름다운 ‘맹금머리등’과 ‘도요등’ ‘대마등’ ‘백합등’ ‘진우도’ ‘을숙도’가 한 눈에 들어 왔다.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섬이다. 몇 년 사이 새로운 모래톱이 솟구쳐 오르거나 갑자기 줄어들어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 꿈틀거리는 땅’이라 부른다.

 

육안으로 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만 보일 정도다. 망원경을 통해 그곳을 보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한 장면의 ‘환경 파노라마’며 ‘다큐멘터리’다. 온갖 새들의 천국이다. 무리 지어 갯벌에서 바다로 들락거리는 가마우지도 보였고, 긴 주걱을 갯벌에 대고 먹이를 찾는 노랑부리저어새도 보였다.

 

“무리가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네요. 띄엄띄엄 있네요.” 박중록 위원장이 망원경을 통해 고니 개체수를 헤아린 뒤 한 말이다. 이곳에서 관찰된 고니는 도요등 25개체, 백합등 101개체, 맹금머리등 231개체뿐.

 

망원경을 통해 고니를 헤아리는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고니는 덩치가 커서 망원경으로 보면 그 숫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니뿐만 아니라 다른 철새들도 많이 줄었다는 게 박 위원장의 설명.

 

“여기서 오늘 뿔논병아리가 15개체 보이네요. 이전에는 몇 백 개체나 보이던 장소죠. 무리를 지어서 모여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요.”

 

 

2002년 겨울부터 매년 고니 등 관찰

 

박 위원장은 2002년부터 매년 겨울마다 철새를 관찰해 오고 있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1주일 내지 보름, 1개월 간격으로 개체수 파악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겨울 들어 그는 지난 해 11월 3회, 12월 3회 개체수 파악에 나섰던 것.

 

아미산에서 떨어지면 몰운대와 다대포해수욕장에 닿을 정도다. 몰운대 입구에 있는 ‘할매국밥집’에서 한 그릇에 3000원 하는 장어국밥을 먹었다. 맛도 일품이지만 함께 내놓은 동동주가 더 맛있었다.

 

다음 코스는 을숙도. 가는 도중에 부산 사하구 장림동 다대산업5길 앞 해안가를 살폈다. 도로를 건너 해안가로 내려가니 무리지어 노닐던 철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들의 평화를 깬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고니가 보였다. 그 숫자는 3개체뿐. 대신에 희귀종인 개리 6개체가 보였다. 그 녀석들은 마치 포크레인처럼 머리를 갯벌 밑으로 파묻고 엉덩이는 하늘로 향하게 한 뒤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곳에 서니 ‘펑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폭탄 터지는 소리 같았다. ‘폭음탄’이란다. 낙동강 하구 양식장에서 철새의 접근을 막기 위해 터뜨리는 소리였다. 망원경으로 찾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양식장에서 터뜨리는 폭음탄 소리가 이곳까지 생생하게 들렸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박중록 위원장은 “폭음탄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인데,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폭음탄 소리는 을숙도에서도 들렸다. 석양이 질 무렵까지 계속 들렸다.

 

하구언을 지나 을숙도 안으로 들어갔다. 을숙도를 거의 관통하는 명지대교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다리 기둥은 거의 다 세워져 있었다. 이전 쓰레기매립장이었던 곳을 파 기둥을 세우기 위한 기초공사를 해놓았다. 그곳에서 침출수나 오탁수가 흘러 바다로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탐조대 앞 바다에 철새 많아, 인공 먹이에 길들여져

 

을숙도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들어갔다. 갈대숲 사이로 새들이 날고 앉기를 반복했다. 카메라를 들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고 했더니, 박 위원장은 “저 녀석들도 사람을 알아보죠. 낯선 사람이 오면 놀래요. 좀 멀리 떨어져서 가죠”라고 말했다. 갈대숲 사이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속에 보인 고니는 10마리도 되지 않았다.

 

이어 철새 관찰을 위해 설치해 놓은 탐조대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찾아오기도 했다. 탐조대는 아담한 건물 벽에 구멍을 뚫어 철새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탐조대에서 10여m 더 안쪽으로 간이탐조대를 만들어 놓았다.

 

탐조대와 간이탐조대 사이는 갈대로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와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위장이다. 간이탐조대 사이에 난 구멍 안으로 보니 철새가 무리를 지어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본 철새는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았다.

 

고니도 많이 보였다. 다른 철새에 비해 덩치가 큰 탓에 쉽게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파악된 고니는 230개체. 무리를 지어 있었다. 다른 곳보다 왜 여기에 고니며 철새가 많으냐고 물었더니 박 위원장은 그 까닭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말해 길들여진 거죠. 매일 인공적으로 먹이를 주잖아요. 먹이가 많으니까 모여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위험한 방법이죠. 야생성을 빼앗아 가는 거잖아요. 자연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공적으로 먹이를 주게 되면 자연적응력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낙동강 하구에서 철새의 먹이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렇게라도 해서 먹이를 주고, 철새들이 모여들게 해야 한다는 차원도 있죠”라고 말했다.

 

고니 총 787개체, 예년 3000여개체보다 훨씬 적어

 

이날 하구언 위에 있는 삼락․하명둔치에서는 고니가 41개체 발견되었다. 이날 박 위원장은 아미산 건너편 명지갯벌까지 총 16곳에서 고니를 관찰했다.

 

2008년 1월 19일 낙동강 하구에서 발견된 고니는 총 787개체(큰고니 350, 고니 1, 고니류 436개체)였다. 이는 예년에 비해 1/3 이상으로 줄어든 수치다. 지난 해 12월 파악했을 때보다 200개체 이상 줄어들었다.

 

습지와새들의친구가 모니터한 연도별 고니 도래 실태를 보자. 2005년 10월 111개체(마리), 11월 1995마리, 12월 2738마리였고, 2005년 10월 144마리, 11월 3600마리, 12월 2953마리였다. 그런데 2007년 10월 24일에는 151마리였고, 11월 22일 1782마리, 12월 6일 968마리, 12월 16일 852마리뿐이었다. 새해 들어 더 줄어든 것이다. 4월 중순까지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박중록 위원장은 “요즘 양산과 울산의 하천에서도 고니가 발견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면서 “낙동강 하구로 와야 할 고니들이 그쪽으로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남저수지나 우포늪 등에서도 고니가 발견되고 있다.

 

그는 “대개 1월 중순 이전까지는 고니들이 낙동강 하구에서 움직이지 않죠. 먹이가 풍부하기에 그렇죠. 이후부터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죠. 그런데 벌써부터 양산이나 울산에서 고니가 발견된다고 하니, 생태계 변화가 있는 거죠”라고 설명. 그는 “그쪽 사람들은 반가워서 전화를 하는데, 사실은 걱정이죠”라고 덧붙였다.

 

낙동강 하구에서 고니가 줄어든 이유는 먹이 부족이 제일 큰 원인으로 꼽힌다. 고니는 주로 세모고랭이를 먹는다. 물가에서 자라는 풀이다. 이전에 낙동강 하구는 세모고랭이 군락지였다. 그런데 지난 해 여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세모고랭이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세모고랭이 줄어, 원인 밝혀질 때까지 명지대교 공사 중단해야“

 

습지와새들의친구는 이전에 찍어 놓았던 사진과 비교해 세모고랭이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2005년 여름 을숙도와 2006년 8월 명금머리등에서 찍었던 사진과 2007년 여름 을숙도와 명지․명금머리등 갯벌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했던 것.

 

이 단체는 세모고랭이가 줄어든 원인은 명지대교 건설공사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강수량 감소 등을 이유로 들지만 이 단체는 명지대교 공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명지대교는 하구언보다 아래에 있으며 을숙도를 거의 관통한다.

 

박중록 위원장은 고니 개체수 감소의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명지대교 건설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같은 현상이 이번 겨울로 끝나 원상회복되면 다행이지만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걱정이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2일 ‘명지대교 사후 환경영향평가 보고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해 지금까지 파악한 고니 개체수 감소 현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회의 때 정밀조사라도 하자는 약속을 받아내야 하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겨울 낙동강 하구의 고니 개체수 조사 결과를 환경부와 문화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부산시 등 개발론자들은 낙동강 하구 일대에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보호구역과 습지보호구역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이들 구역이 줄어들면 철새들의 공간은 더 줄어들게 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고니를 더 이상 낙동강 하구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고니#을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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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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