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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안방극장에서 방송되는 조선 사극 삼국지는 그야말로 제왕들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왕 세종>의 세종, <왕과 나>의 성종, <이산>의 정조는 조선의 3대 성군으로 불리며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최근 사극에서는 왕보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킹메이커’다. 도입부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아역이나, 이전 세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견 배우들의 캐릭터 혹은 주인공에게 평생의 라이벌 혹은 조력자가 되어주는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보다 더 주목받는 캐릭터로 눈길을 끌고 있는 것.

 

장대한 시대와 인물을 넘나들며 긴 호흡을 이어가는 사극은 초반 시선몰이를 통한 고정 시청층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라마 전개를 시대별로 분류한다고 할 때, 아역이나 중견배우들은 이제 어린 시절을 이어주는 가교나 조연을 넘어서 ‘하나의 시즌’을 구성하는 당당한 주역들이자, 사실상 드라마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는 ‘킹메이커’라 할 만하다.

 

주인공의 어린시절 소화한 아역 배우에 '찬사'

 

지난해 방송된 <태왕사신기>, <왕과 나>, <이산> 등에서는 모두 초반 주인공의 아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나란히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유승호는 <태왕사신기>에서는 담덕(배용준), <왕과 나>에서는 성종(고주원)의 어린시절을 연기하며 ‘거물 아역’ 전문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산>에서는 이산(이서진)의 아역을 연기한 박지빈이 스타덤에 올랐다.

 

여기에 <대왕 세종>이 배출해낸 새로운 아역 스타는 이현우(15)다. 김상경이 주인공을 맡은 세종의 어린 시절 충녕대군 역할을 맡은 이현우는 <태왕사신기>에서 처로 역 이필립의 아역을, 영화 <황진이>에서는 놈이 역 유지태의 아역을 연기하여 이미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아역계의 베테랑(?) 스타. 사극은 아니지만, 최근 방송된 <로비스트>에서는 주인공 송일국의 아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사극은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역들이 형성해낸 주인공의 캐릭터는 성인 연기자들의 등장 이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대왕 세종>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천방지축이면서도 누구보다 백성과 수하를 아낄 줄 알고 자신의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감수성 예민한 충녕대군의 캐릭터를 창조해낸 이현우의 연기는 훗날 형인 양녕을 제치고 조선 4대 군주에 오르게 되는 세종의 행보와 정치적 당위성을 위한 복선에 큰 흡인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또한 최근 사극에서는 아역들에게서 최고의 감성연기를 뽑아내는 것이 흥행의 필수공식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산>에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하게 된  박지빈이나 <대왕 세종>에서 세상의 무서움을 체험하게 되는 이현우의 호소력 넘치는 눈물 연기는 방영 초반 드라마의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각각 아버지와 수하의 죽음으로 정서적 트라우마를 안게되는 과정과 갈등요소가 이야기의 초점이 되며 아역배우들의 등장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묘사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아역들 못지않게 극의 큰 중량감을 더하는 것은 바로 사극 장르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중견 연기자들의 호연이다. <주몽>에서는 주몽의 부친이자 고조선 부흥운동의 리더 해모수 역을 열연한 허준호가 있고, <왕과 나>에서는 내시부 수장 조치겸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새로운 내시상을 창조해낸 전광렬이 있다.

 

역시! 중견배우들

 

중견배우들의 잔치로 불리웠던 <대조영>에서는 초반부  임동진(양만춘), 김진태(연개소문), 임혁(대중상), 이덕화(설인귀) 등이 본격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전에, 이전 세대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극이 초반 탄탄하게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냈다. <이산>에서는 영조 역으로 오랜만에 시대극에 복귀한 원로배우 이순재의 눈부신 호연과 세손의 책사 홍국영 역으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늦깎이 스타 한상진이 있다.

 

<태조 왕건>의 궁예 역으로 전성기를 맞았던 김영철은 7년 만에 복귀한 KBS 사극에서 태종 이방원 역할을 맡아 다시 한 번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 이미지를 선보였다. 10년 전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이 연기한 호방하고 야심만만한 이방원 캐릭터와는 닮은 듯 다르게, 냉정하면서도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태종의 다중적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여기에 노회한 재상 하륜 역을 맡은 최종원, 고려유민 비밀결사조직의 수장을 맡은 김명곤, 충녕대군의 스승 역할을 맡은 조성하처럼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중견 연기자들의 복귀도 시선을 모으는 요소다.

 

아버지의 업보를 등에 업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는 세종이나 정조의 일생에서 태종과 영조의 캐릭터는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홍국영이나 조치겸 같은 인물들은 다소 단선적이거나 전형적으로 흐르기 쉬운 주인공들의 단점을 메우고 대의명분에 치우친 주인공과는 또다른 현실적인 욕구를 상징하는 인물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왕들의 이야기를 거론하는 사극에서, 주인공 제왕보다 ‘킹메이커’들이 더 주목을 받는 현상은 그만큼 오늘날 대중의 현실적 공감대를 자아내는 캐릭터들의 성향이 변화하고 있는 추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조연들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라이벌 혹은 조력자로서 극의 갈등구도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향후 행보에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인물들로 묘사된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태그:#사극, #왕과 나, #이산, #대왕 세종,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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