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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로 갔을까? ..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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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미술사박물관도 가고, 오페라 공연도 보고, 고전 음악가들의 흔적도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했다.

비엔나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아내와 난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문제로 툭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나 값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집을 신중을 기해 고르는 편인데, 손님이 벅적대야 재료가 신선하다, 현지인이 많은 식당이 바가지요금이 없다는 등 나름대로 선별기준을 갖고 있었다. 반면 나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

"그냥 아무거나 먹자니깐!"

그날도 내가 짜증 내고 고집 부려서 그냥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피자를 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피자가 정말 맛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내는 뽀로통해져서 나 때문이라고 몰아세웠고, 궁색해진 난 버럭 화를 내며 계속 억지를 부렸다.

"배부르면 됐지! 그리고 피자 맛이 다 그렇지 뭘 그래!"

결국 아내도 화를 냈고 나는 성난 돼지처럼 씩씩대며 앞만 보며 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뒤가 허전했다.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가재 눈으로 힐끔힐끔 보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돌아섰다. 어…, 진짜 아내가 없었다.

'대체 어딜 간 거야!?'

그 자리에 서서 10분 넘게 기다렸다가 왔던 길을 따라 기념품점이나 카페를 기웃거려 보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더 화가 났다.

'말도 없이 사라지면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야!!'

아! 비엔나... 아내의 실종? 영화일 뿐이라고!

(성 안에서 바라본 풍경)
▲ 아, 부다페스트 (성 안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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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광장까지 몇 차례나 왕복하는 사이 훌쩍 1시간이 흘러갔고, 거리에는 어느새 황금색 불빛들이 켜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밤이 내린 비엔나 광장은 예술의 도시답게 낭만으로 넘실거렸다. 피에로가 낡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익살스럽게 춤을 추었고, 머리를 노랗고 붉게 물들인 아이들이 무술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댄싱으로 겹겹이 둘러싼 관광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있었다. 난 까치발을 띠고 짧은 목까지 늘여보지만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성당의 종소리가 '뎅뎅' 울렸다.

'그래, 미사!'

나는 성당으로 뛰어들었다. 허리를 절반으로 꺾고서 무대 앞까지 몇 번이나 오가며 애타게 아내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그곳에도 그녀는 없었다. 순간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소리와 함께 벼락처럼 하나의 메시지가 내 머리를 쳤다.

'아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난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니야, 침착해야 돼, 별일 없을 거야. 그래, 먼저 차로 갔을지도 몰라, 맞아, 아마 그럴 거야. 나는 뛰다 걷다 하며 30분만에 주차해둔 곳에 도착했지만 아내 대신 나를 기다려준 녀석은 21유로짜리 '불법주차 벌금딱지'란 놈이었다.

유럽에서 우리는 중고차를 구입해 개조(?)한 후 차 안에서 잠자며 여행하고 있었기에 서로 연락을 남길 숙소도 없었다. 더 이상 찾아다닐 곳도 없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밤 11시를 넘어섰고 거리에는 인적마저 드물어졌다. 그때 <도망자>의 해리슨 포드가 문득 떠올랐다.

(사진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 아내의 실종? (사진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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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실종!? 아냐! 그건 영화일 뿐이라고!'

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해리슨 포드의 영상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다. 찾아나설 수도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 아내와 지내왔던 12년 세월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밤 12시가 지나면 대사관부터 연락하리라 마음먹고 있을 때였다. 골목 끝에서 익숙한 몸매의 실루엣이 나타나더니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아, 아내였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내 아내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토록 감격해 하는 나를 보는 아내의 표정은 실로 복잡했다. 처음엔 '놀람', 다음엔 '뜨악', 마지막에는 '미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그녀는 앞만 보고 걷는 내 꼴이 보기 싫어 더 느리게 걷다 보니 내가 사라졌고, 가다 보면 만나겠지 하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오랜만에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졌고, 그 후로는 예술의 도시 비엔나 거리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이렇게 온갖 상상으로 괴로웠던 밤은 나 혼자만의 자작극으로 끝이 났다. 내가 아내의 대범함을 잠깐 잊어버린 실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비엔나에서의 모든 관광을 포기하고 헝가리 국경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 부부를 싸우게 하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주차위반 딱지를 먹인 비엔나에 대한 나름의 보복(?)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비엔나에 사는 친구 라인홀트가 헝가리 시골마을 파폭(Pápoc)에 있는 '여름 집'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도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와의 재회

(시청 앞 공원에서)
▲ 비엔나의 휴일 (시청 앞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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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군!"

라인홀트는 우리를 얼싸안았다. 그는 인도 우다이푸르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였다.

 명함 '가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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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루 종일 옥상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햇볕을 쬐고 있었는데, 아내와 난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전쟁 치르듯이 계획표대로 착착 여행을 수행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하루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넌 마을구경 안 하니?"
"난 매년 겨울, 이 마을, 이 게스트하우스에 와. 인도는 내게 영감을 주거든."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인도인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코끼리 얼굴을 가진 신 '가네샤'가 그려져 있었다. 그때 난 동글납작하고 이마가 벗겨진 그의 얼굴과 썩 잘 어울리는 명함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직업은 드로잉 아티스트라고 적혀있었다. 그는 매년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지내고 가면 여러 점의 그림을 쉽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헝가리에 있는 그의 여름 집은 깔끔했다. 작은 정원에는 꽃나무들이 가지런하고, 낮은 지붕의 일자형 집채에는 벽난로가 있는 침실, 간이 부엌, 깨끗한 욕실이 차례로 있었다. 그 옆에 따로 마련된 작은 공간은 작업실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그곳만이 라인홀트다운 공간이었다. 어수선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에서)
▲ 모차르트 계란?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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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쁜 집이 겨우 '5천유로'라고 했다. 라인홀트의 엽서그림 한 점이 1천유로 정도라 하니, 그가 비엔나에서 그림 다섯 점을 팔면 헝가리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건 유로 통합 이후 일반적 현상이라 했다. 헝가리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등으로 돈 벌러 가면서 특히 시골에 빈 집이 많아졌고, 대신 그 빈집을 오스트리아인 등이 사들이는 것이다. 이 마을만도 24가구 중의 여덟 집이라 했다. 국경을 맞댄 두 나라의 엄청난 소득·물가 차이가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다음날부터 우리 부부의 화려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밀린 빨래를 해서 널고, 샤워를 한 후, 일기를 쓰다, 낮잠을 자면, 라인홀트와 그의 여자친구 마티나가 요리를 만들어 대령(!)했다. 이국땅에서 언제 이런 호사가 또 있었을까.

하루는 미안한 마음에 아내와 내가 한국식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독일 한국식품점에서 구입한 미역과 자장을 꺼내고, 시장에서 배추와 각종 채소를 사 와서 자장밥, 미역국, 김치를 만들었다. 반응은? 물론 대박이었다. 어찌나 김치를 좋아하던지, 아내는 다음날 또 한 번 김치를 담아야만 했다.

나이도 국적도 피부색도 상관없이 서로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일

(오른 쪽부터 라인홀트, 마티나, 실비아)
▲ 헝가리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들 (오른 쪽부터 라인홀트, 마티나,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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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날, 이별파티를 열어야 한다며 두 사람은 오후부터 부산을 떨어대더니 그리스 요리를 준비한다, 음악을 선곡한다, 바쁘게 움직였다. 마침내는 라인홀트가 큼직한 와인 오크통을 통째로 어깨에 메고 들어왔다. 그들의 포도밭에서 따서 직접 만든 와인이라고 했다. 이마가 벗겨지고 배가 불룩 나온 그가 오크통을 지고 들어오는 모습이라니! 그냥 영화의 한 장면이다.

"라인홀트! 오늘 밤에 이걸 다 마실 작정이니?"
"헤이, 용! 걱정 마! 비엔나의 아티스트가 다 마실 거니까!"


유럽음악과 한국음악을 번갈아 들으며 우리는 이별파티를 시작했다. 라인홀트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비엔나에서는 재미있었어?"
"그러니까… 그게…."


나는 우물쭈물하는데, 아내는 뭐가 재밌는지 신이 나서 비엔나에서 둘이 싸운 일을 얘기했다. 마티나가 배꼽을 잡고 웃더니 자기들 얘기도 털어놓았다.

"세상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깐! 딱 한 번 라인홀트와 그리스 여행을 간 적이 있어. 그날 뭐 때문에 싸웠더라? 참 나, 생각도 안 나네. 아무튼, 라인홀트는 말도 않고 혼자 걸어가는 거야. 점점 차이가 벌어지는데 저 멀리 작은 점이 될 때까지도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거야. 괘씸해서 혼자 해변을 실컷 돌아다니다가 방갈로로 돌아갔지. 그런데 자기 혼자서 신나게 밥을 먹고 있잖아! 돼지처럼! 쳇, 그러고 보니 용이 훨씬 낫네. 그 뒤로 난 다시는 라인홀트랑 여행 안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 연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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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는 흐흐거리며 웃기만 하고 마티나는 계속 목청을 높였다.

"이 집만 해도 그래. 내가 좋아하는 꽃나무 몇 그루 심었다고 얼마나 화를 내던지. 그 이후론 정원에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거야. 자기 돈 주고 샀다 이거지! 그래서 일주일 동안 말을 안 했어. 곰곰이 생각할수록 분하잖아. 그래서 나도 길 건너에 집을 따로 샀지 뭐!"  

이것이 비엔나에는 한 집에 사는 커플이 헝가리에서 여름 집을 따로 가진 이유였다. 어쩌면 연인들이 다투는 방식은 지구촌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때론 왜 싸웠는지 생각나지도 않는 사소한 이유로 말이다.   

두 연인의 러브스토리를 듣다 보니 어느덧 이별의 밤이 깊어갔다. 내일이면 나그네 부부는 다시 길을 떠나고 오스트리아의 연인은 남아서 또 싸우며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이도 국적도 피부색도 상관없이 서로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일, 참 매력적인 일이다. 벽난로 불빛이 춤추듯 우리 얼굴에서 일렁였고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커졌다. 마지막 남은 김치 한쪽이 라인홀트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오크통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유럽여행, #중고차여행, #헝가리, #비엔나,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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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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