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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를 대표하는 도시, 천년고도 경주 가는 발길 닿은 곳마다 유적이다. 많은 유적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으며 비가 오거나 눈이 와서 야외 답사나 여행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신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그 곳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아라.

 

황금의 보고 신라 무덤을 알 수 있는 고고관

 

국립경주박물관은 크게 고고관, 안압지관, 미술관, 특별전시관 등으로 건물을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가장 큰 건물이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고관을 둘러보자.


 고고관은 크게 선사원삼국실, 고분실, 국은기념실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원삼국실은 주로 경주 주변 일대에서 출토된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의 선사시대에서 초기국가인 원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울주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의 모형과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된 허리띠 고리 등과 돌칼, 가락바퀴, 돌살촉이 전시 되고 있다. 청동기 거푸집과 요령식 동검 여러 가지 철기도 볼 만하다.

 


 고분실에는 신라하면 떠 오르듯 황금과 관련된 장신구류와 금관관모, 목걸이, 굽은 옥 등과 천마총,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과 청동그릇, 유물그릇, 각종 모양의 토기가 진열되어 있다. 특히 천마총에서 출토된 계란(달걀)은 이색적이고 무덤 속에서 나온 토우와 토용 등을 통해 당시 신라인들의 사회상을 엿 볼 수 있어 주목된다.

 

 

 

 

 국은 기념실은 고 국은 이양선 박사가 생전에 수집한 귀중한 문화재들 666점이 전시 진열 중인데 그 중 국보 제275호 말탄 무사 모양의 토기와 오리모양의 토기는 눈에 띈다.

 

 

 

 기와 전돌 석제품 등 박물관 유물로는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귀중한 문화재로 다시 한 번 한 개인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해 본다.


 안압지 유물만 한 곳에 모은 전시관
 
안압지관은 말 그대로 건물 자체가 모두 안압지 한 곳에서만 출토된 유물들로 진열 전시되어 있는데, 안압지의 역사와 의미 출토유물 들이 있어 안압지에 관한 모든 곳을 이 곳에서 다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먼저 주목되는 곳은 나무로 된 배와 각종 금속공예품 금동가위, 청동 숟가락, 금동 불상, 금동 삼존판불, 각종 모양의 토기 그리고 수막새 암막새 등 각종 기와와 전돌 목제품, 칠공예품 등 볼 거리가 너무나 많다.

 

 

2층으로 구성되어 둘러 보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각종 동물뼈와 놀이 기구인 주령구(복제품)는 당시 신라 왕실의 풍류는 알 수 있다.

 

 

 

 신라 역사와 불교조각을 한 눈에 감상 할 수 있는 미술관

 

 미술관은 2층 건물로 1층에는 로비부터 석탑에서 출토된 부재들이 진열 중이고 신라역사 자료와 불교조각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신서기석, 남산신성비, 명활산성 작성비 등 신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금석문과 이 건물을 지을 당시 발굴과정을 강화 유리로 밑 바닥을 깔아 재현해 놓았다. 당시 신라의 불교문화를 알 수 있듯이 각종 불상과 석조 조각이 전시 중인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삼화령 애기부처라 불리는 장창골 석조미륵삼존불이다. 미소가 아름답고 이 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불상이다.

 


 중간에는 불교 공인에 기여한 이차돈의 순교비가 있는데 순교 장면을 새겨놓았다. 하동에서 출토되었다는 금강역사상 모서리 돌 기둥도 볼만하다.


그리고 통일신라 3대 금동불 중에 하나인 백률사에서 옮겨온 약사여래입상도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작품이다.

 

 

 2층은 황룡사실로 주로 사찰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 속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와 영묘사터에서 발견되었다는 웃는 얼굴무늬 수막새는 볼 만하다.


 

 

 감은사지 사리장엄구와 황룡사 강당자리 북쪽에서 출토 되었다는 대형의 망새(치미)와 구층목탑 모형은 황룡사의 역사를 알려준다.

 


국보가 2점이나 있는 야외정원

 

 야외에도 많은 석조물들 있으나 그 중 설명문과 함께 우리에게는 너마나 잘 알려진 것은 당연 성덕대왕신종일 것이다. 에밀레종과 봉덕사종으로도 불리며 국보 제29호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그 무게만 18.9톤이나 된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였다.

 

 

 종의 맨 위에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이 종에는 무엇보다 우수한 2쌍의 비천상이 볼 만 하며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을 통해 종의 내력을 알 수 있다. 현재 타종은 되지 않는다.

 

 야외 마지막 끝 부분으로 돌아가면 구석에 국보 제38호로 고선사지 삼층석탑도 보아야 하는 문화재인데,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놓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형태이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5단으로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견주어 그 크기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형 석탑이다.

 

다양한 석조물들이 너무나 많다

 

 이외에도 숭복사지에 옮겨다 놓은 거북모양의 비석받침, 장항리절터에서 옮겨다 놓은 석조불입상, 경주남산 승소골에서 옮겨온 삼층석탑과 용장계곡에서 옮겨온 석조약사여래좌상, 철와골에서 발견된 대형의 불두, 흥륜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하는 대형 석조와 경주읍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하는 대형의 석등도 볼 만하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잘 보지 않고 지나치는 척화비도 꼭 보아야 할 문화재들이다.

 

 

 볼 것이 너무 많아 둘러보는 데만 해도 5시간 이상 소요되나 대부분은 1-2시간정도 둘러보고 다 보았다고 관람을 마친다. 천천히 좀 더 여유를 두고 관람한다면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유물들이 이제는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태그:#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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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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