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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을 끼고 구례에서 하동을 잇는 19번국도 섬진강변. 강 건너편 구례군 간전면 백운천 마을 앞 강가 옆으로 아담한 한옥 한 채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쯤부터였다.

 

동트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부터 네댓 명의 젊은이들이 부지런히 나무를 자르면서 시작된 집짓기는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는 손놀림이 시나브로 서너 달 정도 이어지는 사이, 해가 바뀌며 오롯한 한 채의 집이 번듯한 모양새를 드러낸 것이다. 

 

마을과 살짝 떨어져 있어 홀로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물안개 피는 강가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지어진 아름드리 집은 지은 사람들의 정성이 깃든 만큼이나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강가 옆 오달지게 지어진 집 주인은 인근 순천에서 시인으로 사회운동가로 살고 있는 한 교사. 그리고 이 집을 지은 사람 또한 이전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현직교사의 집을 전직 교사가 지은 셈이다.

 

현직 교사의 집을 짓고 있는 전직 교사

 

 

길게 산발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집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김길수 선생.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작은 민박집도 하면서 한옥 목수로 집짓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지만, 현직교사의 집을 지은 전직 교사의 표정에는 또 하나의 집을 잘 지어냈다는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녹두장군 전봉준을 연상케 했다. 길게 기른 수염을 휘날리며 나무를 재고 흙을 퍼내는 그의 모습에는 어디에도 교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열심히 집짓는 일꾼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교사로서 교단에 서는 것보다 집 짓는 일이 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왜 집 짓는 일을 하냐?"는 물음에 그의 대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집 짓는 일이 재밌어요.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요"

 

우문에 현답이다. 퍼즐 맞추듯 맨 땅 위에 선을 긋고 돌을 놓고 나무를 세우며 하나의 집을 완성해 가는 일이 그에게 재미를 안겨주는 일이었고 체질에 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교사의 사명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에서 민박집 주인으로 한옥 짓는 건축가로 돌변하기는 했지만, 그에게 이 세 가지 일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어떤 위치에 있어도 어색함이 없다.

 

집짓는 일은 지금 그가 바로 열성을 쏟는 일이고, 민박집은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이며, 교사일은 학교의 요청이 올 때면 기간제 교사로 간간이 한 학기 정도를 맡을 만큼 아직도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근무하던 학교가 다소 외진 곳에 있는 터라 이런저런 사정으로 교사가 부족할 때면 그에게 요청이 들어와  빈자리를 한 학기 정도는 메워주는 식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의 일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교사를 할 때도 아이들과 함께 하던 순간이 행복한 시간이었고, 민박집 일이 바쁜 여름철에도 손님들을 맞는 일이 즐거움이고, 집짓는 일에 열중하는 지금의 시간 또한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가장 보람 있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이다. 

 

 
교육현실에 사그라진 젊은 교사의 열정
 

2001년 지리산 자락의 아담한 초등학교. 초임지로 부임한 한 선생님에게는 뜨거운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래들보다 늦은 나이에 교육대학을 나왔지만 교단에 선 선생님에게 아이들과 만남은 설레이는 일이었고 큰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의 열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학생 사랑은 주변에 소문이 자자해서 그의 학생 사랑을 본 사람들이 “우리 애는 저 선생님에게 보내고 싶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학교가 끝나면 그는 아이들을 찾아 다녔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면서 몸소 참교육을 실천했다.

 

하지만 그 열정이 2년만에 끝을 맺은 것은 교육현실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교장과 교감에게 “교사로서 품위를 지켜라”고 말한 게 그가 교단을 떠나면서 던진 말이었을 만큼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컸다.

 

“뭐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교사들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분들 같았어요. 쓸데없는 꼬투리나 잡고 어떻게 하면 힘들게 할까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분위기를 못 견딘 것이지요.”

 

진정성 있게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한 젊은 교사의 순수함은 교육 관료들의 모습과 교육현실에 실망감을 갖게 되면서 그 열정이 사그라지게 된다.

 

학교를 나왔지만 그는 늘 아이들과 함께 했고 그래서 맡았던 게 지리산 자락의 환경운동단체 생태교육과 관련된 일. 그의 역할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아이들과 놀아주며 그 속에서 자연스런 환경생태교육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민박집 주인이 됐는데 그 발단도 아이들과 연관이 있었다.

 


사실 그가 운영하는 민박집은 그가 가르치던 학생의 학부모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그가 잘 돌보던 아이, 그래서 그를 고마워하던 학부모는 어려움이 생기자 그에게 하소연을 했고,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법원으로 바로 넘어가 큰 손해를 본다는 말에 안타까움을 느낀 그가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외면해도 상관없었겠지만 눈물 글썽이며 신세한탄하는 학부모의 호소를 모른 척 하는 것은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알아봐 준다는 것이 본의 아니게 스스로가 나서며 민박집 주인이 돼 버린 것이다.

 

학부모의 하소연 외면 못 해 떠안게 된 민박집

 

그의 이런 마음은 집을 지으면서 새집도 함께 만들어 주는 것에도 드러난다. 아직 내부 공사가 덜 끝난 집. 그러나 처마 밑 새집은 진작에 완성시켜 놓고 집주인보다 먼저 입주시키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존재이기에 새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김길수씨가 집 짓는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민박집을 인수하기 전 자신의 집을 손수 지을 때부터였다. 동생과 친구들 등 지리산 주변의 지인들이 힘을 모아 지은 한옥집은 제법 번듯하게 잘 지어졌고, 그의 첫 작품이었다.

 

비록 민박집 인수 때문에 부득이하게 팔아야 했지만 집짓는 기술은 첫 집을 지은 이후 그가 애쓴 만큼 나타났고, 노력한 만큼 늘어났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던 마음이, 목수가 되어 집 짓는 일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정성을 기울인 만큼 번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그가 지은 집은 총 8채. 민박은 그저 형식이고 한옥 목수일이 그의 주업이 된 상태다. 어쩌다 보니 민박집을 인수해 살고 있지만 민박집 운영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다.

 

여름철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기간은 돈을 주면 받는 것이고, 그냥 가더라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흔적 없이 정리만 잘 해 놓으면 그뿐이다. 그래서인듯 지리산 뱀사골 자락에 위치한 그의 집은 늘 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그의 집짓기 특징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받아준다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박문수씨(38) 외에 그와 함께 일하는 김찬연씨(28)나 독일인 다비드 아이젤레(28)는 한옥을 처음 지어본 사람들이다.

 

부산이 집인 김찬연씨는 지리산 자락에 놀러왔다가 김길수씨를 알게 돼 합류하게 됐고, 독일에서 온 다비드는 김찬연씨가 외국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로 그 역시도 세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찾았다가 함께 하게 됐다.

 

마침 다비드는 독일에서 목수학교를 나온지라 나무를 주로 이용하는 한옥에 관심이 많았고,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한 모습으로 일을 도우며 한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 덕에 수개월간 한국에 머무르며 한옥에 매달렸던 다비드가 일을 얼추 끝내고 다음 목적지인 중국으로 떠날 즈음 초보 막일꾼은 어엿한 한옥 목수로 변해 있었다.

 

자연학교를 통해 꿈꾸는 참교육에 대한 희망

 

김길수씨의 꿈은 지리산 자락에 대안학교로서 자연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갖고 있고 결국 그가 가야 할 길은 교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옥 목수 일에 열심이지만 자연학교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영락없는 선생님의 모습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닌 자연학교라고 강조한 그는 그 차이점을 이렇게 말했다.

 

"대안이라 함은 또 다른 대안을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안학교를 만들기보다는 자연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대안이 아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과 어울리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배우는 학교지요."

 

"그렇다고 방종이 있어서는 안 되고, 자연의 질서 안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아이들을 억누르지 않는 자유스러운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가 덧붙이는 자연학교의 모습이다. 넓은 공간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삶을 배우는 학교. 그것은 그가 꿈꾸는 참교육의 모습임과 동시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상상할 때마다 갖게 되는 그의 작은 희망이다.

 

따라서 한옥 목수일도 자연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손으로 직접 지을 것이고, 민박집처럼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고, 아이들을 직접 가르칠 것이기에, 지금 그가 하는 일이 모두 망라돼야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교육에 대한 염원으로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는 김길수 선생님. 마무리 공사를 위해 마지막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 속에, 그 꿈이 계속 영글어 가고 있었다.

 


태그:#김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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