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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속개되는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 중앙위원회에서 당의 행로가 결정된다.

통합신당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대패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채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다. 대선 패배 20일만에 고작 나온 것이 중앙위원회를 열어 '교황 선출방식'으로 당대표를 선출하기로 한 결정이다. 10일 새로 선출된 당 대표가 최고위원들을 임명하는 식이다.

정성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당 쇄신과 진로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통합신당, 어떻게 해야 사나 정성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당 쇄신과 진로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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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에 따르면, 교황 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이 가지며, 그 수는 최대 120명이다. 교황 선거 방법은 비밀 투표뿐이다. 특징은 출마자 없이 추기경들이 각각 마음속에 정한 후보의 이름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뽑는 것이다. 바티칸 교황궁의 시스티나 경당의 출입문을 봉쇄해 놓고 2/3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한다.

3일 동안 투표를 하고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을 때는 투표를 중단하고 기도와 토의 그리고 선임 사제 추기경의 영성적 권고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 추가 투표 뒤에도 교황 선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역시 같은 절차를 몇 번 되풀이한다. 12일이 지나도록 선출되지 않을 경우에는 과반의 지지를 얻으면 된다. 이렇게 해도 끝내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황 궁무처장이 선거인 추기경들에게 선거 진행방법에 대한 의견 제시를 요청한다.  

이 교황령의 규정과 다르게 치러지는 선거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무효다. 또 선거인 추기경들은 특정인 또는 특정 다수에게 투표하거나 기권하지 않도록 만드는 모든 형태의 조약·협정·약속·서약을 해선 안된다. 이러한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들은 자동 파문의 처벌을 받는다. 신과 대화하는 영성이 충만한 추기경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하지,속세에서는 가능할 법하지 않은 선출 방식이다.

오래 전부터 예고된 '최악 시나리오'... 통합신당의 총선 패배

그런데 여러 정파들의 연합체인 통합신당이 교황 선출방식으로 당 대표를 뽑겠다고 한다. 각 정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정치의 세계에서 이처럼 성스런 방식으로 대표를 뽑는다니 어찌 보면 기특한 일이다. 그런데 그뿐이다.

지난 4일 국회 본관 귀빈식당에서 열린 통합신당의 당 쇄신과 진로모색을 위한 토론회의 명칭은 '대통합민주신당, 어떻게 해야 사나'였다. 그만큼 통합신당은 '생존'이 절박하다는 얘기다.

이날 발제자인 조국 교수(서울대 법대)는 "통합신당 쇄신위의 방안을 보니 진정성을 느낄 수 없으며,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도 않다"며 "미안하지만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는 통합신당의 총선 패배는 필연적이라고 본다"고 쓴소리를 했다.

사실 통합신당의 총선 패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최악의 시나리오'다. 정통보수를 표방하는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신당이 설 땅이 더없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는 선거결과다. 어림잡아 200석(한나라당) 대 50석(통합신당)이다.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개헌도 할 수 있다.

현재의 정당 지지도라면, 통합신당이 살 길은 '읍소작전' 한 가지뿐이다.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지배하는 거대권력을 견제할 최소한의 의석(개헌 저지선)을 달라며 '동정표'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정을 얻는 데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있다. 집단적인 자기 희생이다. 희생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모든 제의(祭儀)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물꼬 튼 김한길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김한길 의원 지지자들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위원회의에서 '대선참패 실질책임자 각성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김한길 의원 지지자들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위원회의에서 '대선참패 실질책임자 각성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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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제의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더구나 정치가 아무런 자기 희생 없이 교회의 겉으로 '폼 나는' 선출방식만 차용해서는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물꼬는 이미 텄다. '뜻밖에도' 3선의 김한길 의원(서울 구로을)이다.

김한길 의원이 열린우리당 해체를 통해 '노무현 프레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진단 위에서 탈당해 중도개혁통합신당을 만들었을 때,이른바 친노 그룹은 그의 처신을 '당권을 차지하려는 행위'로 규정하고 진정성을 의심했다.

또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정동영 예비후보가 당시 미국 사는 전처 소생의 큰아들을 잃은 김 의원을 위로차 만난 것을 두고 '당권-대권 밀약설'을 유포한 세력도 친노 그룹이었다. 김 의원이 불출마 선언에 이어 정계은퇴까지 결심한 것도 이런 정치에 대한 환멸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지역구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가장 적은 표를 준 서울 선거구 중의 하나다. 그런데 정작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친노 그룹은, 고향이자 '적진'인 대구(수성을) 출마를 선언한 유시민 의원을 제외하곤 납작 엎드린 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불출마를 심각하게 고려중인 4선의 임채정 국회의장(서울 노원병)을 제외하고는 당의 원로부터 이른바 '386 정치인'까지 죄다 출마할 태세다.

김원기·이해찬·문희상·천-신-정·김근태·386도 죄다 출마 태세

우선 6선의 김원기 의원(전북 정읍)은 정계의 원로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사부'다. 그 공로로 국회의장도 지냈다. 노 대통령은 2월이면 퇴임해 정치를 떠난다. 아무리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지만, 제자가 정계를 은퇴하는데 스승이 정계에 남아 얼쩡거리는 것은 노욕으로 비치는 것이 한국적 정서다.

5선의 이해찬 의원(서울 관악을)은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 속에 이른바 '실세 책임총리'로 참여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 역시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질 의사는 없는 것 같다. 이 의원은 9일 노 대통령의 ‘동업자’였던 안희정씨 출판기념회에서 "저는 5번 했으니까 돼도 좋고 안 돼도 좋은데, 안희정 동지만큼은 꼭 국회의원을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3선의 문희상 의원(경기 의정부갑)은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다. 그는 용기 있고 합리적인 정치인이며 지역구에서도 비교적 평이 좋다. 그는 당초 불출마를 고민했으나 초선들의 불출마 압박에 '인격 모독'이라며 되레 생각을 바꿔 열심히 표밭을 갈기로 했다고 한다.

민주당 분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의 핵심 주역인 천·신·정은 각각 당 의장(정·신)과 원내대표(천), 장관(정·천)을 지냈다. 3선인 천정배 의원(경기 안산 단원갑)은 당초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불출마를 고민했으나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혀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선인 신기남 의원(서울 강서갑)측 역시 "대선 패배 책임과 맞물려 정치를 계속해야 될지 근원적인 고민을 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가능성 있는 지역이라는 얘기가 있어 고심 중이다"며 불출마 의사가 없음을 완곡하게 밝혔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정대철 전 고문, 정동영·김근태·문희상 전 의장 등 통합신당 중진들. 사진은 지난해 6월 22일 대통합 추진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귀빈식당 오찬 모임.(자료사진)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정대철 전 고문, 정동영·김근태·문희상 전 의장 등 통합신당 중진들. 사진은 지난해 6월 22일 대통합 추진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귀빈식당 오찬 모임.(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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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마 희생 제의에는 '386 정치인'들도 예외 아니다

정동영 전 의원은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목하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노인 폄하' 발언으로 비례대표 말석으로 배수진을 쳤으나 낙선해 지역구가 없다. 그러나 그에게 도전장을 던져온 사람은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실세'로 통하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서울 서대문을)은 설날 단배식에서 "정동영·이회창 같은 센 사람하고 붙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서대문을 선거구는 정동영 전 의원이 사는 곳이다. 그러니 번거롭게 이사를 갈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출마하면 된다. 그로서는 18대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실세와 맞붙어 살아남으면 다시 한번 대권의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17대 총선 때처럼 다시 비례대표 말석에 배수진을 치고 전국 선거유세를 하는 방안도 고민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3선인 김근태 의원 역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대선 불출마'라는 희생을 감수했다. 그런 그에게 '총선 불출마'는 가혹한 형벌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은 정동영 후보 개인보다는 민주화 세력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이끈 한반도재단은 그에게 불출마를 권고했으나 그는 최근 측근들에게 "수도권과 충청·영남에서 교두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출마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불출마라는 희생 제의에는 이른바 '386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재선인 송영길·오영식·임종석 의원과 초선인 백원우·우상호·이광재·이인영·이화영·정청래 의원 그룹에서도 한두 명은 불출마를 선언해야 중진·친노 그룹에 대한 불출마 압박도 진정성을 갖게 된다.

또 어차피 이들 대부분은 이번 선거에 나가도 진다. 그럴 바에야 이번엔 접는 것이 사는 길이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국민은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을 견제세력을 키워달라는 호소의 진정성을 믿을 것이다.

'젊은 피' 오세훈 바친 한나라당과 버락 오바마 현상

다른 당도 그랬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은 탄핵을 주도한 박관용 국회의장을 선두로 김용환, 신경식, 유흥수 의원 등 20명 이상의 중진들이 줄줄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희생 제의’를 치렀다. '늙은 피'로도 모자라 '젊은 피(오세훈 의원)'도 불출마라는 ‘희생 제의’에 동참했다. 그 덕분에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을 뚫고 개헌 저지선(10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50석 안팎으로 예상되는 의석을 개헌 저지선(100석)까지 올리려면 관심을 끄는 '흥행' 요소가 있어야 한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버락 오바마 현상이 그것이다. 민주당 예비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바마는 61년생이고 흑인이다. 미국인들은 변화와 통합을 역설하는 그에게서 '검은 케네디'를 느낀다고 한다.

아프리카 케냐 이민 2세인 그의 집안은 케네디 같은 명문가는 아니지만 명문대 졸업후 자기 희생과 사회 봉사가 있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오바마는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후 얼마든지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지만 시카고에서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했다"며 "그를 뽑아 변화를 이루자"고 호소했다.

이에 맞서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은 "경험이 많은 클린턴만이 교육을 비롯한 미국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호소하지만 미국인들은 '경험'보다는 '변화'를 선택하려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부시→클린턴→다시 부시→또 다시 클린턴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할 태세다.

'교황당'이냐 '쇄신당'이냐, 갈림길에 선 통합신당

통합신당은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3년여 동안 당 대표를 9명이나 갈아치울 만큼 늘 '쇄신'과 '변화'를 추구했다고 항변한다. 문제는 그 지도부가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는 점에 있다. 통합신당은 지금, 또 다시 '교황당'이냐 '쇄신당'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교황선출 방식은 중앙위원들이 대표 후보를 한명씩 적어낸 뒤, 이 가운데 상위 2~3명을 대상으로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를 한다. 그러나 이는 경선을 거부한 '손학규 합의추대 방식'의 변형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현재의 판세대로라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당의장으로 추대하는 '교황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서 재야파 그룹과 쇄신파 초선그룹, 그리고 시민사회세력은 각각 '선명 야당'과 '혁명적 쇄신'을 내걸고 우원식 의원(서울 노원을)과 문병호 의원(인천 부평갑) 및 이계안 의원(서울 동작을), 그리고 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 등을 대표주자로 내세우고 있다.

교황 선출방식은 출마 의사를 밝힐 수 없으므로 사전선거운동 자체가 무효다. 그러나 이들 쇄신파 사이에 '반(反) 손학규 연대'가 이뤄져 이심전심으로 합종연횡이 되면 '쇄신당'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 통합신당은 '총선 흥행'을 위해서도 지금은 자기를 희생하고 공동체에 봉사해온 40대 초재선 그룹에서 당 대표 경선에 나서 설령 실패하더라도 지도부에 입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번에 집권한 한나라당과 보수정권은 대과가 없는 한 적어도 10년은 간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통합신당으로는 5년 뒤보다는 10년 뒤가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통합신당이 정권을 되찾기 위해 취할 길은 불을 보듯 환하다. 10년 뒤에, 현재 한나라당의 차세대 지도부와 '대회전'을 할 만한 후진들에게 길을 터줘 이들이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과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를 꾀하는 것이다.


태그:#통합신당, #교황선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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