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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은지 오래된 가게,
 문을 닫은지 오래된 가게,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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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 경인가도를 따라 부천시 범박동, 괴안동, 소사동 일부와 시흥군 소래읍 계수리 일대에 노구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었던 곳 신앙촌, 지금은 아스라한 추억 속에 50~60년대의 모습으로 정지해 버린 마을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본다.

신앙촌의 역사는 당시 천부교를 믿었던 신앙인들이 모여 생필품을 생산하고 1957년 11월부터 총 43만평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300여동의 주택과 50여동의 공장, 각종 공공시설을 건설하고, 1만명 이상의 신도를 입주시켜 주거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지금 이곳이 그때 만들어진 마을이다.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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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에서 불과 10분 거리도 채 안 되는 곳에 다른 세상이 있다. 우리 가족이 주말이면 가끔 외식을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찾아 갈라치면 지름길인 이곳을 꼭 거쳐 가야만 하기 때문에 비좁은 길을 묘기를 부리듯 빠져 나가곤 했던 곳,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느꼈던 것은 꼭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멈춰 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고 동네 집들이 폐가처럼 휑해 보였기 때문에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갔었다. 오늘 나는 그곳을 걸어서 골목 여행을 해볼 작정이다. 

비좁은 길을 묘기를 부리며 지나가는 버스
 비좁은 길을 묘기를 부리며 지나가는 버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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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은 간판 "천천히"
 녹슬은 간판 "천천히"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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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차가 다니는 길에 중앙선 표시가 없을 뿐더러 인도도 없다. 그런데 차량 통행량은 소사구의 어떤 길보다 번잡하다 할 정도로 많은 곳이다. 나는 이 길을 걸어서 골목골목을 탐방하기 위해 나섰지만 보행자가 맘 놓고 걸을 곳이란 아무 데도 없었다.

단지 사람이 알아서 차를 피해가야 한다는 사실 외에는.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비좁은 길을 어떤 차도 빵빵거리거나 경적 없이 잘도 피해 간다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들은 자동 머신처럼 너무도 잘 알아서 간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간다. 녹슬다 못해 퇴색해버린 “천천히”라는 안내 표지판이 무색할 정도다.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하교길은 언제나 위험하다. 길이 아닌 담벽으로 붙어 지나가야 한다.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하교길은 언제나 위험하다. 길이 아닌 담벽으로 붙어 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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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에서부터 생선,야채,등  골고루 갖춘 잡화상 ,슈퍼
 고기에서부터 생선,야채,등 골고루 갖춘 잡화상 ,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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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플래카드
 재개발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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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어가다 보니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흉가 같은 집들이 많이 보인다. 지나가던 차에서만 봤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걸어가다 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보인다.  20여분을 걸었을까. “이주 대책 없는 지장물 조사 전면 거부한다”라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무슨 사연일까 하고 동네에서 오래 된 것 같은  철물점에 들어가 물어볼 요량으로 문을 열고 인사를 드리자 무슨 일이냐며 주인이 나온다.

"<오마이뉴스>시민기자인데 이곳 마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될까요?"라고 말을 건네자, “나는 이곳에서 오래 살지 않았으니 저 앞 가게 슈퍼로 가보세요”라며 거절한다.

"플래카드를 보니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라고 말문을 열자, 고개를 저으며 하시는 말이, “모두들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화합이 안 되어 이제는 뭐든지 관심이 없답니다”라고 말문을 닫아 버린다.

그리고는 앞 슈퍼로 가란다. 할 수 없이 인사를 드리고 나와 슈퍼로 향했다. 슈퍼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내외가 운영을 하고 있나보다. 아저씨가 반가이 맞으며 나오신다. 자녀들은 결혼해서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이곳에서는 부부가 산단다.

신분을 밝히고 "이곳에서 가장 오래 사셨다하니 이 마을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했더니 흔쾌히 대답을 하며 알고 있는 것은 뭐든지 다 얘기해 주겠단다.

- 여기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20년 좀 넘게 살았습니다."

- 집들이 무너져 가고 있던데 사람들이 살지 않는지요?
"이곳이 재개발로 확정되자 80% 정도는 집을 팔고 이곳을 떠났어요. 타지에 있는 분들이 모두 집을 사서 재개발 될 때까지 빈집으로 있답니다. 그래서 이곳은 무법천지랍니다. 몇몇 외국인 근로자들과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가끔 좋지 않은 행동들을 하곤 하지요. 어떻게든 빨리 결정이 나면 좋을 텐데. 서로들 자기 욕심만 챙기려 하니 화합이 되질 않아 언제 제자리를 찾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3~4개의 조합이 있는데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니 시에서도 대책이 안서나 봅니다. 이제 저도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서로 욕심을 부리다 보니 인심이 흉흉해졌단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삼거리를 끼고 좌측은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있고 우측은 6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있다.
 삼거리를 끼고 좌측은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있고 우측은 6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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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현대식 건물의 담장, 우측은 기존에 있던 마을 담장
 좌측은 현대식 건물의 담장, 우측은 기존에 있던 마을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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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 겨울바람만 휑하니 불어오니 더욱더 스산해진 골목의 한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발걸음을 돌린다. 사람이 사는 곳에 재개발이라는 바람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버린 곳. 도시 속의 달동네, 50~60년대의 모습으로 정지해 버린 곳.

몇 발짝만 지나면 현대식 초고층 아파트가 있는 곳, 언제 개발될지 모를 그곳에서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데  정겨운 간판들이 스쳐 지나간다. 똘이네 옷방, 계수 전파사, 로뎀의류, 무교낙지집 일미식당, 방앗간, 감포슈퍼 모두가 50~60년대에 지어진 건물에 붙여진 상호들이다.

주민들의 마음도 뻥 뚫어 줬으면 좋겠다.
 주민들의 마음도 뻥 뚫어 줬으면 좋겠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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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이 거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좁았던 길을 반대편 차가 지나갈 수 있게 기다려줬던 여유도, 자기 집 마당인 양 차도인지 인도인지 모를 길을 무단 횡단했던 누렁이도, 차를 피해 하교 길에 집으로 향하던 초등학생 다솜이도, 그냥 추억 속에 한 장소가 될 것이다. 하수구, 변기, 뻥 간판을 보면서 행정적으로는 범박동, 법적으로는 계수동인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마음도 뻥 뚫어주길 기대해본다.


태그:#하늘 아래 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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