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타투 합법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타투이스트 이랑(맨왼쪽)씨는 지난 6일 지체장애인 주리빈(가운데)양의 팔에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 등을 새겨 넣었다. 맨오른쪽은 이씨에게 문신시술을 요청한 아버지 주흥종씨.
 '타투 합법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타투이스트 이랑(맨왼쪽)씨는 지난 6일 지체장애인 주리빈(가운데)양의 팔에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 등을 새겨 넣었다. 맨오른쪽은 이씨에게 문신시술을 요청한 아버지 주흥종씨.
ⓒ 이랑 미니 홈피

관련사진보기


작년 여름, 타투이스트(문신예술가) 이랑(33·본명 이연희)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정신지체 장애인을 딸로 둔 주흥종씨였다.

"제게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체장애 2급 딸이 있어요. 15살인데 정신연령은 3∼4살밖에 안 되는 아이예요. 제 딸에게 문신을 해주면 안될까요?"

이씨는 '15살 딸에게 문신을 꼭 해줘야 하는 이유'를 주씨에게 물었다.

"어렸을 적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봤어요. 팔찌·목걸이부터 딸이 입는 모든 옷에 명찰을 달아놓았죠. 그런데 단 1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요. 지금 딸을 잃어버리면 찾을 가능성이 희박해요. 그래서 문신은 제 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그 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간절한 부성애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주씨 "불법이지만 그 방법밖에 없어"... 이씨 "타투도 사회에 도움 줄 수 있어"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6일, 이씨는 주흥종씨와 그의 딸 리빈양을 만났다. 이씨는 2시간에 걸쳐 리빈양의 팔에 이름과 주민번호·연락처를 새겨넣었다. 주씨의 노심초사를 영원히 지워 버릴 '문신 명찰'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충남 천안에서 살고 있는 주씨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엔 혹시 보기 싫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문신) 모양이 깨끗하고 이쁘게 나왔다"며 "처음에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상 의사가 아닌 사람이 시술했을 경우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문신을 딸에게 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신지체아인 딸의 정신연령이 3살에서 3살 반밖에 안된다. 그 아이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아빠 이름도 잘 얘기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 어렵다. 그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갖는 방법에는 문신밖에 없었다."

주씨는 "문신 시술이 불법인 걸 알고 있지만 미성년자는 지문도 대조할 수 없지 않나"라며 "불법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찾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문신 시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리빈양 팔에 새겨진 '문신명찰'.
 주리빈양 팔에 새겨진 '문신명찰'.
ⓒ 이랑 미니 홈피

관련사진보기

"잃어버렸던 지체 장애아가 옆 동네에서 살고 있었는데 죽는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더라. 경찰을 믿고 있지만 경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쁜 사람 손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선량한 사람이 데리고 있을 경우 우리 아이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신 시술이) 불법인 줄 알지만 그 법이 우리 아이를 찾아주는 법은 아니지 않나."

또한 리빈양에게 문신을 시술한 이랑씨는 "짧은 시간이었고 매우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기분과 보람을 느꼈다"며 "우리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타투는 범죄가 아니라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법은 타투이스트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었지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기뻤다"고 말했다.

8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 1인시위 예정

이랑씨는 내일(8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 '타투 합법화'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그는 작년에도 제주도에서 국가인권위까지 국토를 종단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씨는 "대통령직 인수위 앞 1인 시위 끝나고 오는 4월 총선이 끝나면 새롭게 시작하는 국회 앞에서도 1인시위를 할 생각"이라며 "그 이후 5월 중순부터는 해남 땅끝부터 도라산까지 자전거로 다니며 타투 합법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씨는 문신 시술과 관련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데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오는 11일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태그:#이랑, #타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