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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건판 궁궐 사진전'을 관람하는 사람들-500여 장의 사진을 한번의 관람으로 다 보긴 아무래도 어렵다. 다행히 무료다. 그러니 몇 번은 더 갈 작정이다.
 '유리건판 궁궐 사진전'을 관람하는 사람들-500여 장의 사진을 한번의 관람으로 다 보긴 아무래도 어렵다. 다행히 무료다. 그러니 몇 번은 더 갈 작정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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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유리건판 궁궐사진전'은 국내 그 유례가 없던 사진전이다. '유리건판'이란 말부터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기 때문이다.

- 전시명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궁궐 사진전
- 전시 기간 : 2007. 12. 28 ~ 2008. 2.10
- 전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 전시 사진 : 유리건판 궁궐 사진 500여 점과 유리건판과 카메라 등


영친왕의 고국 방문 기념 사진(보는 방향 오른쪽)과 유리건판(보는방향 왼쪽)
 영친왕의 고국 방문 기념 사진(보는 방향 오른쪽)과 유리건판(보는방향 왼쪽)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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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 유럽에서 발명된 사진 기술은 1851년에는 콜로디온 습판 기술이 개발되어 새로운 전기를 이룬다. 하지만 콜로디온 감광유제가 젖어 있는 동안에 촬영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서 많은 사진을 찍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1871년, 감광제를 유리판에 발라 건조시킨 후 사진을 찍는 건판을 영국인 ‘매독스’가 발명한다. 콜로디온 습판보다 빛에 50배나 민감해서 순간의 동작을 포착해낼 수 있는 이 유리건판은 공장에서의 대량생산과 표준화까지 가능한, 그야말로 획기적인 선진기술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롤필름이 발명되기 전까지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방식이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3만8천여 장의 유리건판과 그 사진(집)을 소장하고 있다. 이 유리건판(사진)은 190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 일본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일정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남긴 것은 세계 그 유례가 없는 사건이랄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 사진들을 왜 남겼을까?

비슷한 연령끼리 앞모습과 옆모습, 남자와 여자 등의 특성을 참 자세하게 사진으로 기록한 이 사진을 보면서 마루타를 떠올렸다면 지나친걸까?
 비슷한 연령끼리 앞모습과 옆모습, 남자와 여자 등의 특성을 참 자세하게 사진으로 기록한 이 사진을 보면서 마루타를 떠올렸다면 지나친걸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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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1902년부터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고적이나 민속, 문화재 등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1940년대,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는데 조사와 함께 사진으로 남기는 한편 궁궐을 비롯한 유적지는 훼손하고 문화재들은 강탈해간다.

이렇게 제작된 유리건판(사진)들은 처음에는 경복궁 건청궁 터에 지은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보관된다. 이후 광복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총 3만8천여 장 중 궁궐 사진은 800여 장인데 그중 500여 장의 사진을 간추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궁궐 사진전을 기획한 것이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데 성공한 일본은 조선의 상징이자 심장이랄 수 있는 궁궐 곳곳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한다.

궁궐 정면인 근정전 앞에 거대한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어 궁궐을 압도하는가 하면 '조정'이라 하여 문무백관들이 국왕에게 조하를 올리던 덕수궁 중화전 안마당의 박석들을 걷어내고 화초들을 가득 심는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현장인 건청궁을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짓는가 하면 경복궁의 영제교나 광화문을 헐어 엉뚱한 곳에 옮겨놓는다.

일본은 수많은 궁궐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서양식 정원을 조성한다. 지금이야 공원이나 운동장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잔디는 일제강점기만 해도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이 잔디를 조상의 무덤이나 사당에만 심었다. 하지만 일본은 당시 죽음의 공간을 상징하는 이 잔디를 궁궐 곳곳에 심기도 한다.

일제는 이처럼 훼손하는 한편 그 원래 모습을 유리건판 사진으로 남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사진들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때 파괴되어 원형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게 하여 복원하는 자료로 그간 쓰여 왔다. 궁궐도 마찬가지, 이번에 전시하는 이 사진들은 경복궁 등의 궁궐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였다고 한다.

경복궁 교태전 앞마당-오늘날 성능좋은 카메라로 흑백 사진을 찍은 듯 사진들은 여러모로 우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경복궁 교태전 앞마당-오늘날 성능좋은 카메라로 흑백 사진을 찍은 듯 사진들은 여러모로 우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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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건춘문과 궁장-왼쪽편의 개울따라 서 있는 전신주 등 궁궐 주변의 풍경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경복궁 건춘문과 궁장-왼쪽편의 개울따라 서 있는 전신주 등 궁궐 주변의 풍경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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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에 철거된 강녕전과 교태전의 원래 모습이 저랬던가? 이제, 이왕가 박물관의 치욕은 그만 벗어야 하지 않을까? 무너지기 직전의 영추문 앞에 칼을 차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일본 순사와 마구 뒹굴고 있는 성곽 돌들에서는 패망의 쓰라림이 느껴졌다. 승재정과 관람정이 마주보고 서 있는 창덕궁 후원이나 둥근 돌확 모양의 앙부일구는 왠지 낯설었다.

현재의 청와대 터에 있었던 용문당과 덕수궁 안에 있었던 한중일 절충식 건물인 구여당은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본 것이다. 이들뿐일까? 훼손되기 전 원래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나 궁궐주변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진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500여점의 이 귀한 사진들 앞에서 원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는 다행스러움보다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들, 무엇을 얼마나 빼앗긴 줄도 모르고 어처구니없게 빼앗겨버린 분노나 치욕이 앞섰다고 할까?

어른 손 한뼘크기(가량)의 유리건판 필름들이다.
 어른 손 한뼘크기(가량)의 유리건판 필름들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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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남긴 유리건판 사진집이다. 이렇게 남긴 사진은 무려 3만 8천여 장이다.
 일본이 남긴 유리건판 사진집이다. 이렇게 남긴 사진은 무려 3만 8천여 장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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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모습은 말과 글로 기록을 남기기 어렵다. 따라서 사진기록은, 파괴와 왜곡의 기록까지 포함하여  역사적 고증을 위한 가장 정확한 사료이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우리 궁궐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가장 훌륭한 전달자이다. 오늘날 궁궐을 복원한다고 해도 이미 진정한 궁궐은 아니다. 왕조사회에서 민주 사회로 바뀌었고, 궁궐의 주변은 이미 고층건물들이 포위한 현대적 도시공간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들만이 궁궐다운 마지막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 전시안내문 중에서

건축물이나 풍경 등을 제대로 기록하기에 글은 그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것이 사진이다. 우리나라에 사진기술이 도입된 것은 백여 년 전, 하지만 우리는 도입된 사진기술로 우리의 모습들을 기록하기 전에 일제에게 훼손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그래서 이번의 사진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궁궐의 원형은? 일제가 파괴하고 변형시켜버린 것들은 어떤 것들이며 그 원래의 모습은?' 등을 알 수 있는 이 사진전은 2월 10일까지 열린다. 궁궐 사진만이 아닌 유리건판 카메라나 사진집, 다른 사진 일부도 전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하면, 이 사진전을 시작으로 시일을 두고 다른 유리건판 사진들도 이번 경우처럼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태그:#유리건판 궁궐사진전, #국립중앙박물관,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역사와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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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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