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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권력의 '핵'임을 과시라도 하듯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광폭행보 앞에 거칠 것이 없다. 이명박 당선인의 주요 공약인 경부운하 사업을 '밀어붙이는' 속도가 그렇고, 2일부터 시작된 정부부처의 '맞춤형' 업무보고가 그렇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3일 "대운하(경부운하) 문제를 여론수렴도 않고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간사단회의에서 "속도를 내는 것과 서두르는 것은 다른데 (외부에서는 인수위가) 서두르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국민 여론도 수렴하지 않고 과욕을 부려 밀어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전문가 의견도 듣고 국민 여론도 수렴하면서 중요 정책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면서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인수위의 본격 활동에 앞서 이같이 속도조절론을 제기한 것은 경부운하 강행에 따른 반발이 인수위 활동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경부운하는 초고속 추진

 

이명박 당선인 비서실의 추부길 정책기획팀장도 이날 오전 SBS 라디오 '백지연의 SBS전망대'에 출연, 경부운하에 대한 환경단체 등의 비판에 대해 "여론수렴을 생략하고 밀어붙인다는 보도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의견수렴 절차도 갖고 있으며, 충분히 (여론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새 정부 출범 뒤 다시 계획을 잡아야 하니 '확정됐다'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 등의 설명과는 달리 이미 경부운하 사업은 인수위 내에서 여론수렴의 단계를 넘어선 '확정' 상태다. 이명박 당선인의 최측근이면서 인수위 대운하태스크포스(TF) 상임고문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당선자 임기 안에 (경부운하 사업을) 마치겠다는 게 확고한 의지"라고 거듭 밝혔다. 경부·호남·충청 운하를 2009년 초 동시에 착공해 임기 안에 완공하겠다는 것이다.

 

인수위 기획분과 간사인 박형준 의원도 "대운하 사업은 이제 공약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할 사업이라며 이명박 당선인의 대선승리로 운하논란은 사실상 끝이 났다"고 말했다. 경부운하 사업을 위한 구체적 추진 단계에 접어든 모습이다.

 

장석효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소속 대운하태스크포스팀장은 지난달 28일 국내 5대 건설사 최고경영자들과 조찬 모임을 가졌다. 대우건설,현대건설,GS건설,삼성물산,대림산업 등 시공능력평가 순위 1~5위 건설업체 부회장과 사장들이 모두 참석했다.

 

당시 장 팀장은 "건설사 초청으로 모임에 참석했으며 건설업체들은 기회가 온다면 적극적으로 대운하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지만, 건설사 측에선 당시 모임이 인수위의 제의로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장 팀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날 모임에서 장 팀장이 건설사들에게 경부운하 사업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경부운하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당장 수질 악화 논란부터 야기될 것이 명확했지만, 이 과정에서 '여론수렴'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환경단체들이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한 군사작전식 밀어붙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 2일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180여 환경단체로 구성된 '경부운하 저지 국민행동'은 "인수위의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팀을 해체하고 운하 국민검증기구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이명박 당선인 쪽은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한반도 대운하도 예외가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다음 달로 예정된 인수위의 대운하 토론회에 대해서도 "사업추진을 위한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불참을 검토하고 있다.

 

경부운하 강행에 대한 반발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주로 박근혜 전 대표측 인사들이지만, 이한구 정책위의장도 "대운하는 국민 동의를 못 얻으면 못 하는 것"이라며 "정부 의지가 있다고 해서 굉장히 큰 파급 영향이 있는 것을 그냥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신중론을 펴고 있다.

 

업무보고는 군기잡기식

 

이경숙 위원장은 이날 "인수위의 활동이 본격화 화면서 공직사회가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은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점령군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어 김형오 부위원장은 "업무보고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재보고를 하거나 혼을 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난 5년간의 자체평가와 당선자의 공약, 방안 (규제완화 등)을 성실하게 당선자의 로드맵을 반영한 보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부족하면 수정을 요구하거나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일 교육부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정부부처 인수위 업무보고가 '군기잡기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인수위측은 교육부의 업무보고에 대해 사전에 내려보낸 '지침'에 부합하지 않고, 이 당선인의 공약 실천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혹독한 질책으로 일관했고, 업무보고 직후 발표한 정책 방향은 사실상 교육부 해체를 예고했다.

 

이 당선인이 밝힌 핵심 교육공약 중 하나인 수능등급제 폐지와 관련 교육부는 "오는 3월까지 여론을 수렴해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했지만, 인수위는 "과연 일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 거냐"며 몰아세웠다.

 

교육부는 또 초중등교원의 임용권한 이양에 대해 "교원단체, 노조 등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신중함을 보였고, 특목고 설립지정 권한 이행에 대해서는 "과열진학경쟁 방지대책 필요"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전제조건을 달아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미뤄선 안된다"는 인수위측의 호통을 들어야 했다.

 

대학의 학생정원 관련 권한이양에 대해서도 "일정한 수준의 교육여건 확보 필요"라는 선결조건을 달았지만, 역시 "어제 이 당선인이 '혼을 담아 내 자신이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실용적 국정운영 지침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수위측은 또 150개 기숙형 공립학교, 50개 마이스터교 등 이 당선인의 공약인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관련 "교육부가 공약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 뿐,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보고하지 못했다"고 핀잔을 줬다.

 

결국 인수위측은 "교육부의 권한 이양문제에 관한한 중앙부처는 가급적 머리역할을 하고 수족기능은 지방에 과감히 이양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대학입시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로 넘기고 자율학교·특수목적고 설립·지정 권한을 시·도 교육청으로 넘기는 등 인수위가 발표한 정책 방향은 '공교육 정상화'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학생 선발권이 대학에 통째로 넘어갈 경우, 고교 교육이 입시 교육에 치우쳐 파행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기여입학제를 제외하고 본고사, 고교등급제가 사실상 부활하는 셈이다.

 

인수위측은 교육부 업무보고가 끝난 뒤, "(업무보고에서) 인수위가 일방적인 점령군이 아닌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한 의견조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이동관 대변인)고 전했다.

 

교육부가 이 당선인이 후보시절부터 예고한 '개혁대상 1호'였다고는 하지만, 10년만의 정권교체로 인한 '점령군' 앞에 교육부는 '풍전등화'의 운명을 실감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예정된 각 부처 업무보고를 앞두고 인수위가 확실한 '군기잡기' 차원에서 교육부를 '시범케이스'로 삼은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3일부터 경부운하 '맞춤형' 보고

 

한편 인수위 소속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TF)는 이날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으로부터 대운하 프로젝트 추진에 필수적인 문화재 지표조사와 재해 안정성 업무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한반도대운하 TF는 오는 4일에는 기획예산처와 환경부로부터 대운하의 경제성 및 재무분석 결과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보고받고, 5일에는 건설교통부로부터 향후 예상되는 물동량 등을 보고받을 계획이다.

 

특히 이들 업무보고는 경부운하 사업이 추진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수위측은 각 부처에 업무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사업 추진에 필요한 기술적, 수리적 분석 결과만을 보고하는 '맞춤형' 보고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부운하 사업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물류개선 효과를 낳고, 친환경적 사업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인수위로서는 대선 이후 다시 불거인 경부운하 타당성 논란을 조기에 불식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선(先) 여론수렴-후(後) 추진'이라는 약속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태그:#이명박 인수위, #경부운하,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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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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