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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천재를 그리다-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전'이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일산)에서 3월16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몽파르나스의 화가지망생, 잔느 에뷔테른', '몽파르나스에서 피어난 사랑',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니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삶과 사랑들(자료전시)' 등 5개 섹션으로 나뉜다.

 

이번 전에는 모딜리아니(1884~1920 애칭 모디)의 유화, 드로잉 45점뿐만 아니라 그의 연인이자 모델이며 아내인 잔느(1898~1920)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65점도 선보인다. 작품 수는 잔느 것이 더 많다. 실제로 잔느가 어린 나이에도 모딜리아니 못지않게 비범한 화가였음을 보여준다.

 

여성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나

 

 

모딜리아니처럼 여성의 내면에 흐르는 잔잔한 표정과 내밀한 욕망까지 담아 여성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세속의 성모마리아처럼 신비하게 그린 화가는 드물 것이다. 특이한 점은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면서 가장 여성스럽게 그렸다는 점이다.

 

모딜리아니의 많은 여인의 초상화 중 역시 잔느의 것이 최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기에 헌신을 다했을 것이다. 그는 또한 그녀의 예민한 감성뿐만 아니라 미세한 숨소리도 놓치지 않았고 따뜻한 촉감까지도 그림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번 전의 포스터로 쓰인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를 보면 잔느가 무언중에 남편에게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드릴게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잔느는 이렇게 그의 뮤즈가 되어 그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랑했고, 예술가로서 신뢰와 존경을 보냈다.

 

모딜리아니는 유태인 특유의 우수를 풍기는 보헤미안으로 방탕했고 당대 최고의 미남이었다. 그래서 그 주변엔 여자들이 두루 많았다. 그러나 "천사와 같은 잔느가 모딜리아니를 구했다"라는 말처럼 그를 진정 구한 여자는 바로 잔느였다.
 

파리파 작가 중 최첨단 아방가르드

 

'여인의 초상'을 보면 모딜리아니 그림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바로 절제된 단순함이다.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림의 입체적, 추상적, 원시적 요소들이 용광로에서 녹아 정화되듯 여러 과정을 거친 뒤에 나온 것이라 더 세련되고 우아한 단순함이다.

 

이런 그림이 나온 건 그가 파리의 인류학 박물관 등에서 본 이집트 유적, 캄보디아 불상, 아프리카 조각 등 토테미즘에 근거한 때묻지 않는 원시주의 미학에서 얻은 영감 때문이다. 또한 입체파를 열어준 세잔의 영향도 컸다. 그리고 그가 화가 이전에 조각가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는 대표적 '에콜 드 파리'파다. 당시 파리는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다.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를 비롯하여 브랑쿠시, 후안 그리스, 키슬링, 디에고 리베라, 샤임 수틴, 후지타 쓰구하루가 그들이다. 그는 이렇게 그들과 교류하며 코즈모폴리턴의 관점에서 세계미술계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에콜 드 파리(L'Ecole de Paris)에 대해서

 

'에콜 드 파리(L'Ecole de Paris)'는 '파리파'라는 뜻으로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파리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화가들이 많았는데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활약한 외국화가를 총칭하는 말이다. 

 

1900년 스페인의 피카소를 비롯해서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루마니아의 조각가 브랑쿠시, 네덜란드의 반 동겐, 독일의 에른스트, 스페인의 후안 그리스와 미로, 폴란드의 키슬링,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 리투아니아의 샤임 수틴, 일본의 후지타 쓰구하루가 그들이다. 

 

파리파는 특별히 공통되는 주의나 양식 없이 제각각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동했기에, 20세기의 어떤 이즘이나 유파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는 또한 니체, 보들레르, 로트레아몽의 시와 철학에도 심취했다. 바로 이런 지성과 교양을 갖춘 그였기에 파리파 작가 중에서도 최첨단 아방가르드의 기수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상적 삶을 직시하면서도 그는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아카데미즘을 내동댕이치고 보다 근원적 미술에서 그 돌파구를 찾았다.

 

대상의 재현 아닌 작가의 독창적 재해석

 

 

위의 '아니 비야네'에서 보듯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어쩐지 어색하고 균형감도 없어 보인다. 기우뚱함, 무기력함, 눈을 그리다 만 것 같은 낯설고 생뚱맞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잘못하면 사람들 손가락질을 받을 만함에도 모딜리아니가 이렇게 '데포르마시옹(변용 혹은 왜곡)'을 사용한 건 그 어느 작가도 흉내 내지 못할 인간내면에 잠재한 아름다운 영혼과 상처받기 쉬운 심성과 섬세하고 고귀한 감성 등을 담기 위한 그의 미학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를 두고 기념비적인 선이니, 그리스 조각 같다느니, 무표정의 아름다움이니 하지만 이는 모딜리아니가 아방가르드 작가로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독창적 재해석으로 인물과 사물을 총괄적으로 표현하려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잔느 작품 공개로 그의 예술 재조명

 


사실 이번 전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건 모딜리아니보다 잔느다. 그녀가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걸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잔느는 잘 알다시피 몽파르나스에서 화가지망생으로 모딜리아니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가족들의 극구반대에도 그와 결혼했으나 3년도 채 되기 전 남편이 결핵으로 죽자 9개월 된 둘째 애를 밴 채 그 다음날 6층 처가집에서 떨어져 죽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망연자실한 처가 쪽에서는 이런 것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 오랫동안 침묵해오다가 오빠인 앙드레가 그녀의 유작을 공개함으로써 잔느는 다시 주목받는다.

 

이번 전만 해도 잔느의 작품만 60점이 넘는데 '파리의 지붕'도 그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연도가 정확하지 않지만 두 부부가 그랑드 쇼미에르 15번지에서 신접살림을 막 차렸을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멀리 파리의 오망 졸망한 아파트 지붕과 작은 정원이 보인다. 

 

예술의 상호보완적 융합

 


'자화상' 하나만 봐도 잔느가 뛰어난 감각을 지닌 작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때로 과감하게 기존의 사회적 통념을 깨는 셀프누드를 그리기도 했다.

 

위의 2번째, 3번째 그림은 폴란드 화가 바라프스키를 두고 잔느와 모딜리아니가 그런 것인데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렇게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같은 모델을 두고 그림도 그리기도 했고 서로가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사실 모딜리아니도 생전에 폴 기욤과 즈보로브스키 같은 화상의 관심을 끌기는 했으나 크게 인정받진 못했다. 그렇지만 둘은 이렇게 누구보다도 예술적으로 잘 통했고 깊이 이해했고 상호보완적으로 융합했다.

 

자의식과 열정이 넘치는 작가, 잔느

 

 

이제 끝으로 잔느의 또 다른 작품 '종 모양의 모자를 쓴 여인'을 보자. 손을 가지런히 놓은 채 갸우뚱한 긴 목하며 한쪽만 그린 것 같은 눈 등은 영락없이 모딜리아니 풍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잔느 풍이 느껴진다. 이제 그녀도 독자적 시기를 맞게 된 셈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잔느는 그냥 남편에게 순종하고 가정에서 안정을 찾는 여성이 아니라 강한 자의식과 열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작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여간 그녀의 삶은 지고지순한 사랑과 불꽃같은 예술혼이 일치되어 더욱 빛난다.

 

이번 전을 통해서 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 두 사람은 단지 연인과 부부의 관계를 뛰어넘어 각자 고유성을 지닌 두 예술가의 만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일산) 1577-7766 www.2008modi.com
입장료 일반 1만원 초중고 8000원 만2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 
교통편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에서 하차 바로 아람누리출구와 연결됨


태그:#모딜리아니, #잔느 에뷔테른, #세잔, #피카소, #아람미술관(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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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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