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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이런 말이 전하고 있다.

'과거를 보려면 시안에 가고, 현대를 보려면 베이징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에 가라.'

베이징을 떠난 나는 현대에서 거꾸로 과거를 보기 위해 시안으로 향했다.

시안(西安)이 어떤 곳인가? 기원전 11세기부터 서기 10세기까지 13개의 왕조나 정권이 도읍을 삼거나 정권을 세운 곳이 아닌가? 무려 1100여 년의 역사 속에 서주(西周), 진(秦), 서한(西漢), 당(唐)이 도읍을 정하며 중국에서 가장 강성한 시대를 만들었던 도시이다. 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었던 서안에서는 수많은 역사 인문 경관을 볼 수 있었다.

시안의 첫 이미지는 우중충함, 그 자체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국제 공항인데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의 청사 곳곳에 불이 꺼져 있어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밖에는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는 25인승의 미니 버스였다. 내가 그 버스에 맨 늦게 올라탔고, 내가 타자 곧바로 시내로 출발했다. 버스는 특별한 정류장이 있는 게 아니라 승차한 사람이 원하는 곳에 내려주었다. 나는 별 어렵지 않게 미리 예약한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역의 중심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떠나오고 있다. 성벽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시안역 서역의 중심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떠나오고 있다. 성벽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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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계속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시안역으로 향했다. 시안은 커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다. 여기 성벽은 중국에서 그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곳이라 한다. 이 성벽은 명나라 때 만들어졌는데, 당나라 시대의 성벽은 지금보다 그 규모가 열 배나 컸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성벽이 도시 전체를 네모로 둘러싸고 있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이채로웠다. 나는 나중에야 여기 시안이 카이로, 아테네, 로마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대 유적도시임을 알았다.

시안역에 도착한 나는 병마용과 화칭츠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치고는 너무나 낡고 초라했다. 당나라 헌종 황제가 양귀비와 노닐었다는 화칭츠와 진시황의 병사들을 그대로 재현한 병마용은 같이 묶어서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화칭츠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헌종 황제와 양귀비가 노닐었다는 화칭츠. 가운데 양귀비의 하얀 조각상이 눈에 띈다.
▲ 화칭츠 헌종 황제와 양귀비가 노닐었다는 화칭츠. 가운데 양귀비의 하얀 조각상이 눈에 띈다.
ⓒ 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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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고, 나는 우산을 쓰고 화칭츠 안으로 들어갔다. 헌종 황제와 양귀비는 매년 10월이 되면 이곳 화칭츠에 와서 봄까지 보냈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 연화탕(蓮華蕩)과 전용욕실인 해당탕(海棠湯), 궁녀 전용의 상식탕(尙食湯)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화층치에서 나온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병마용이 있는 곳까지는 한참이나 걸어가야 했다. 가는 입구 곳곳에 어린아이들이 나와 작게 축소된 병마용을 팔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는데 나는 미덥지 못해 그걸 사지 않았다. 배낭 여행객이 그런 무거운 물건을 쉽게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소수민족으로 보인다.
▲ 병마용을 둘러보는 중국인들 옷차림으로 보아 소수민족으로 보인다.
ⓒ 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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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병마용 박물관은 총 3개의 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1호갱과 2호갱이 규모가 컸다. 그 유명세 탓인지 수많은 관광객, 특히 서양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카메라에 받침대까지 들고 간 나는 최대한 줌을 당겨 그 병마용들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텔레비전이나 사진을 통해 익히 보아왔던 모습들이지만 실제로 보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과연 금세기 최대의 발견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충 훑어만 보고 가는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1호갱에서만 한 시간 넘게 머물며 병마용을 하나 하나씩 살피며 아득한 3천년 저쪽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그 섬세한 모습에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 병마용 그 섬세한 모습에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 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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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도 조금씩 비가 뿌렸다. 나는 호텔에서 걸어서 서문(安定門)으로 향했다. 성벽에 올라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된다 들었지만 입장료를 받는 곳은 없었다. 성벽과 함께 성루가 커다랗게 솟아 있었다. 거대한 성벽과 성루 안에 있으니 마치 <와호장룡>의 영화 속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이곳을 통해 성문을 올랐다.
▲ 서문(安定門) 이곳을 통해 성문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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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엄청나게 높고 단단했다. 성벽 위의 폭이 무려 15미터. 왕복 4차선의 차도와 맞먹는 넓이였다. 이 정도의 두께라면 지금의 대포로 쏘아도 무너뜨리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벽이 아니었겠는가? 성벽의 총 길이는 14킬로미터 가량 된다. 나는 그 성벽의 정확히 반을 걸어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인데다 비까지 내려 7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아버지와 손자만 만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왕복 4차선 정도로 무척 넓었다.
▲ 성벽 위 왕복 4차선 정도로 무척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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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성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마음껏 걸었다. 사극 속의 한 장면을 연상하며 적진과 대치하고 있는 군사라 생각하고 성벽 아래를 내다보기도 했다. 중국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고 대단한 추억을 여기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원형 그대로 보존된 성벽이 이렇게 길게 이어진 곳이 세계 어디에 여기 시안말고 있겠는가?

서문에서 출발한 나는 사각형의 반을 돌아 남문(明德門)에서 내려왔다. 여기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남문에서 내려와 시내 중앙으로 들어갔다. 여기엔 커다란 종루가 있었다. 이 종루에서 70번의 종소리가 울리며 성 전체의 문이 열렸다고 한다.

종루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회족(回族, 이슬람)거리가 나왔다. 예전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이곳에 페르시아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이슬람 거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거리의 이름처럼 거리 곳곳에 이슬람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돼지고기를 금하는 종교적 계율에 따라 양고기를 파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중국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 이슬람 거리 중국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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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족 거리를 나온 나는 버스를 타고 샤오옌타(小雁塔)와 다옌타(大雁塔)를 잇따라 보았다. 샤오옌타는 그 이름답게 별로 크지 않았지만 다옌타는 규모가 큰데다 위치한 곳이 큰 공원으로 이루어져 볼거리가 많았다. 큰절과 함께 석가삼존상과 십팔나한상이 볼만했고, 향을 올리는 많은 참배객들로 붐볐다.

시내를 굽어보는 다옌타.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
▲ 다옌타 시내를 굽어보는 다옌타.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
ⓒ 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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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의 시안 여행이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곳이 너무나 많았다. 가히 보름동안의 배낭여행 중에 하이라이트라 할만 했다. 중국의 과거, 중국의 전통과 역사를 체험하고 싶다면 시안을 꼭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저의 오마이뉴스 블로거 <소설과 여행이 만났을 때>
http://blog.ohmynews.com/novel 에도 실려 있습니다.



태그:#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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