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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류(韓流)’란 말은 1999년 중반 중국 언론 매체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 당시 홍보용 음반의 타이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 사이의 새로운 유행 경향을 총칭하는 ‘한류(寒流)’라는 신조어에서, ‘한(寒)’을 ‘한(韓)’으로 바꾸게 되어 ‘한류(韓流)’란 단어가 탄생했다.
 
이러한 한류는 중국, 대만, 홍콩,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북미, 남미, 중동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실제로 터키와 인도에 <해신>, 핀란드에 <풀하우스>, 가나와 탄자니아에 <겨울연가>, 홍콩과 이집트에 <대장금>, 우즈베키스탄과 스와질란드에 <올인> 등이 수출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한류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지속시켜 나가느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간의 한류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을 돌아본다.
 
그 동안 한류 분석을 함에, 주로 소비자의 문화적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적 상황, 소비자의 반응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데에 치우쳤다면서, 문제는 이로 말미암아 “한류의 유지에 대한 방법론이 피상적으로 도출된다는 것”을 지은이는 지적한다. 바꿔 말해서 성공 요인을 작품 그 자체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은이는 이른바 계절 연작 드라마 네 편(<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의 작품성에 주목하여 심층적인 분석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근원적인 감동 요인을 작품 안에서 찾아보게 되는데 그것은 해당 드라마들이 인간 보편의 원형(archetype)에 닿아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멜로드라마는 주제나 장면의 반복 등 상투성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대중에게 저급하게 다가서는 방식이라고 순수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폄하되어 왔다. 그러나 같은 모티프가 집요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것이 오랜 세월을 두고 축적되어온 인류 공동체의 무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즉 모티프의 반복이 표면적일 때는 많은 시청자들이 진부하고 상투적이라고 싫증을 내지만 그 이면 구조가 이 무의식에 닿아 있을 때는 반복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이다. - 책 25~26쪽
 
우선 <가을동화>는 ‘희생제의로서의 비극’으로 읽는다. 표면적으로는 남남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남매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남녀의 근친상간 금기가 주제라는 것. 그리고 이는 인류 공동체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감정선을 건드리게 되며, 특히 은서의 죽음은 이런 금기와 관련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원시인들의 타부 의식처럼 ‘운명’이라는 비극의 속성을 드러내게 된다.
 
또 죽음과 재생이라는 ‘물’의 원형 이미지를 토대로 삼아 ‘바닷가’라는 드라마의 배경을 해석한다. 즉 가을에서 겨울로 진입하는 계절에 바닷가에 은서와 준서가 앉아 있다는 것은 은서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암시라는 것. 그리고 마치 <공무도하가>에서처럼 준서는 물을 건너지 말라 했지만 은서는 기어이 물을 건너고 만다는 것.
 
준서가 은서를 업었을 때, 은서는 잠깐 자겠다고 말한다. 이야기해 달라는 그녀의 말에 준서는 힘주어 내일의 일을 말한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은서 생각을 하고 그녀의 사진을 정리하며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고, 점심 먹고, 산책하고…… 강박적으로 되풀이되는 준서의 말에서 우리는 은서를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준서는 소리없이 울며 숨죽여 말한다.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그러나 은서는 준서의 등 위에서 숨을 거둔다. 임은 기어이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 책 46쪽

<겨울연가>는 프라이의 분석 중 겨울의 뮈토스에서 제기되는 ‘숙명의 아이러니’로 읽는다. 특히 준상의 교통사고 후 유진의 입장에서는 준상이되 더 이상 준상이 아닌 아이러니 하며, 또 민형은 민형대로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상황에서 과거의 연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아이러니 하며, 오히려 이러한 아이러니 요소들의 연속이 시청자로 하여금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요나 콤플렉스’로도 읽는다. 준상이의 집은 ‘잃어버린 자궁’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이러한 장소적 공간으로서 용평스키장의 벽난로 앞이나 남이섬, 유진이 설계한 ‘불가능한 집’ 등도 모두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이섬과 준상이네 집은 유년 시절의 그리움, 자궁 회귀로의 욕구, 리비도의 퇴행이란 인류 공동체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일본 여성들이 그 장소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엄마 잃은 준상인 욘사마에게 모성애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책 81쪽
 
이 밖에도 <여름향기>는 혜원과 은혜가 좋아한 ‘카라꽃’이 사자를 물리쳐 사랑을 쟁취한 ‘용사의 전설’을 담고 있다는 데 착안하여 세 개의 장애 요인(의리, 심장병, 은혜의 심장)을 추출해내고 있는 점이 돋보이고, <봄의 왈츠>는 이 드라마의 ‘원점회귀 구조’를 파악하여 수호가 낮은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것 즉 진실한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을 설명해내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계드라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자기동일성 찾기로서의 사랑’이다. <가을동화>에서의 사랑은 형제애와 성애의 상관성을 잘 보여주면서, 무엇보다 성숙한 사랑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과 삶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고, <겨울연가>에서는 준상의 통합적 자아 찾기로서의 ‘기억 되살리기’를 들 수 있으며, <여름향기>는 혜원과 민우의 통합적 자아 찾기(각각 정재와 은혜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 <봄의 왈츠>는 수호의 통합적 자아 찾기(자기애를 회복해야 하는)가 중요 과제로 나타난다.
 
또 하나는 ‘연애의 디테일 반복’이다. 드라마 속에는 소나기 모티프, 자전거 타기, 신발 신겨주기, 버스 뒷좌석에 같이 타기, 머리 묶어주기, 동일한 등장 배우, 방자와 향단이형의 인물들의 등장, 남녀 안타고니스트들의 등장 등이 반복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부분들은 분명 작품에 크고 작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같은 모티프들이 계속 반복될 경우 마지막 작품쯤에 가서 시청자들은 진부한 클리셰로 여겨 식상하게 될 수 있음을 지은이는 지적해놓고 있다. “작품의 근본 주제와 연결되지 않는 장식적 요소들은 원형이 아니라 클리셰이며 사람들을 감동이 아니라 싫증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한류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는 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좋은 연구자가 진지한 태도로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시청자의 기대지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의 드라마 비평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할 필요가 있는데 일례로 문화비평가들의 지나친 냉소적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즉 “시청률을 의식하여 한껏 낮추어진 드라마를 고도의 비판적이고 고급한 시선으로 재단함으로써 드라마를 감상하는 시청자가 선입견을 갖도록 조장”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좋은 작품’이라고 강조하는 최혜실의 <한류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은 한류를 단순한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문화로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인문학자적 문제 제기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최혜실 / 펴낸날: 2007년 12월 17일 / 펴낸곳: 새문사


한류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최혜실 지음, 새문사(2007)


태그:#최혜실, #한류, #겨울연가, #드라마, #가을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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