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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이번 수능 물리 문제 복수정답 논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에도 수능 과학 문제에 대하여 '문제에 과학적 오류가 있다', '정답이 잘못됐다'는 문제제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이에 대하여 계속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이유로 문제제기를 기각하였다. 잘못된 관습이 이번 대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제가 과거보다 훨씬 심각하다. 왜 그런지 한번 들여다보자.

과거의 사례들과 이번 사건은 두가지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과학적 개념에 대한 엄밀하지 못한 표현'이 쟁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평가원이 '고교 교과과정의 범위'로 한정한다면 문제와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수능 과학문제 논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2학년도 수능 공통과학 8번 문제를 보자. 이 문제는 체세포 핵 이식을 이용한 쥐의 복제를 소재로 한 것이다. 평가원은 복제쥐(C)의 유전자가 핵을 제공한 쥐(A)의 유전자와 똑같다고 간주하고, 정답을 ②번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유전자는 핵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도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핵과는 별도로 복제하고 분열한다. 이 문제는 동물의 경우로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문제가 된다. 왜냐 하면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에 속하기 때문에, 복제쥐(C)의 핵 유전자는 A와 동일하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B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핵 유전자에 비하면 그 중요도나 크기가 훨씬 작기는 하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대한 서술은 대학 1학년 수준의 일반생물학 정도에서부터 볼 수 있다. 평가원도 '고교 교과과정 범위를 고려할 때 ②를 정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2002학년도 수능 공통과학 8번 문제. 평가원은 복제쥐(C)의 유전자가 핵을 제공한 쥐(A)의 유전자와 똑같다고 간주하고, 정답을 ②번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유전자는 핵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까지 엄밀하게 고려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게 된다.
 2002학년도 수능 공통과학 8번 문제. 평가원은 복제쥐(C)의 유전자가 핵을 제공한 쥐(A)의 유전자와 똑같다고 간주하고, 정답을 ②번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유전자는 핵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까지 엄밀하게 고려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게 된다.
ⓒ 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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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학적 용어의 엄밀성을 고려한다면, 보기 ②의 표현을 '쥐 A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다'가 아니라 '쥐 A와 같은 핵 유전자를 가진다'는 식으로 좀더 엄밀하게 한정해 줘야만 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까지 엄밀하게 고려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2004학년도 수능 화학2 72번 문제를 보자. 이 문제에 대하여 평가원이 내놓은 정답은 ⑤였다. 즉 ㄴ, ㄷ, ㄹ이 옳은 서술이라는 것이다. 이중 ㄷ이 논란이 되었다. 광학 이성질체에는 이낸시오머(enantiomer)와 스테레오아이소머(stereoisomer)가 있다. 고교 교과과정에서는 이낸시오머만 배우기 때문에, 이에 한정한다면 ㄷ의 서술이 맞다.

그러나 대학 2학년 수준의 유기화학에서 배우는 반응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A의 Br2 반응 생성물과 D의 Cl2 반응 생성물은 스테레오아이소머 관계로서 서로 다른 생성물(즉 일종의 이성질체 관계)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보면 ㄷ은 틀린 서술이고,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는 셈이다.

이번 문제는 객관식 문제로서 치명적인 결함 있어

이번에 논란이 되고있는 2008학년도 수능 물리2 11번 문제의 경우, 과거의 사례들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교과서에 명백히 서술되어 있는 내용인데다가, 앞에 소개한 과거의 논란 사례들이 '정답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던 반면 이번 경우엔 '정답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기 때문이다. 객관식 문제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인 것이다.

이 문제는 '이상기체'에 대한 보기의 설명 가운데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이다. 평가원이 제시한 정답은 ④, 즉 ㄴ과 ㄷ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물리학회는 이중 ㄴ은 '이상기체'의 일반적인 성질이 아니라 이상기체 가운데 '단원자 이상기체'에 국한된 성질이므로 틀린 서술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ㄷ을 제외한 ②도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보면 ④를 오답처리하고 ②를 정답처리해야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②와 ④의 복수정답 처리를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기체란 분자의 부피 및 분자간 상호작용이 전혀 없는 기체로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조건 하에서는 실제 기체도 근사적으로 이상기체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이상기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실제 기체의 경우에 적용하는 것은 물리학과 화학에서 기본을 이루는 중요한 내용이다.

이상기체 가운데 단원자 기체의 정적 몰비열은 3/2RT 이다. 그러나 이원자 기체의 정적 몰비열은 5/2RT, 삼원자 기체의 정적 몰비열은 6/2RT이다. 이렇듯 이상기체는 단원자/이원자/삼원자 이상기체 등으로 분류되며, 각각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 ㄴ의 서술은 이상기체를 단원자 기체로 한정한다면 맞는 내용이지만, '이상기체 일반'에 대한 서술로서는 틀린 것이다. 이원자나 삼원자 이상기체에는 맞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에서 '1몰의 단원자 이상기체'로 한정해 주었다면 정답이 ④가 되겠지만, 그냥 '1몰의 이상기체'라고 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②가 더 엄밀한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원자 분자와 다원자(이원자 및 삼원자) 분자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은 대학 수준의 교재에는 모두 나와 있는 내용이며 일부 고등학교 물리2 참고서에도 나와 있다. 또한 물리2 교과서들 가운데 대부분이 단원자 기체와 다원자 기체의 개념을 구별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일부 교과서에는 다원자 이상기체의 사례를 언급하며 이 경우 "기체 분자 1몰의 내부 에너지는 3/2RT보다 커진다"(교학사판 물리2 교과서의 사례)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번에도 가장 거세게 항의해온 학생들은 이러한 내용이 나와 있는 교과서나 참고서를 보고 공부한 학생들이다. 개념을 엄밀하게 적용하게 풀었는데 오답이라니, 더구나 가장 배점이 큰 3점짜리 문제가 오답 처리되었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이번에 논란이 된 문제는 과거의 논란 사례들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두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일부 교과서에서 분명히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 그리고 과거의 논란 사례들이 '정답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객관식 문제의 속성상 '최선의 답을 구한다면 평가원이 제시한 정답이 맞다'는 변론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정답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반론을 회피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안일함이 이번 사태 불러

 22일 밤 서울 삼청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열린 대입수능 물리문제 오류논란관련 기자 브리핑에서 이명준 수능연구관리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정답 오류 논란이 제기된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 물리 II 11번 문제에 대해 검토한 결과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으나 한국물리학회가 내놓은 입장과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22일 밤 서울 삼청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열린 대입수능 물리문제 오류논란관련 기자 브리핑에서 이명준 수능연구관리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정답 오류 논란이 제기된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 물리 II 11번 문제에 대해 검토한 결과 정답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으나 한국물리학회가 내놓은 입장과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 연합뉴스 최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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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상기체를 단원자 분자와 다원자 분자로 구분하여 내부에너지를 구하는 것은 제7차 물리2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원래의 정답인 ④를 고수하였다. 일부 교과서에 단원자/다원자 분자의 차이가 서술되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평가원은 9종의 물리2 교과서들 가운데 일부에만 서술되어 있으며 이것을 보편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답하였다. 그런데 평가원의 이같은 발언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평가원이 출제한 지난 9월 모의고사에서 이상기체 앞에 '단원자'라는 수식어를 붙인 사례가 발견된다. 즉 평가원도 용어 사용에 있어 일관성이 없었던 것이다.

둘째, 2008학년도 수능 지구과학1 18번 문제에 대한 이의제기에 대하여 평가원은 '일부 교과서에는 대서양의 북적도 해류가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이를 7차교육과정 지구과학1 범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즉 일부 교과서에만 서술되어있다는 이유로 '고교 교과과정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물리2 11번 문제에 대한 입장과 모순된다. 이중잣대인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일부 교과서에만 서술되어있는 내용을 수능에 출제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심지어 8종의 교과서 가운데 한두 종에만 서술된 내용을 출제한 사례들도 있다.

셋째, 평가원이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검인정 교과서를 채택하는 취지가 무색하다. 모든 교과서가 똑같은 내용과 범위를 담고 있어야 한다면 그냥 1종의 국정 교과서를 사용해야지, 왜 여러 종의 검인정 교과서를 채택하는가? 그리고 교과서 내용 가운데 어디까지가 엄밀한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로서 수능에 출제될 수 있는지를 평가원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넷째, 도대체 언제까지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표현을 '고교 교과과정의 범위로 한정함'을 방패삼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칠 것인가? 앞에서 밝혔듯이 과거에도 엄밀하지 못한 표현과 개념 적용으로 인해 논란이 벌어진 사례들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수능 문제의 출제위원이 각 과목별 전공 대학교수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학교수들을 출제위원으로 초빙하는 이유는 이들이 고교 교과과정의 범위를 잘 판정해줄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기준에서 원리적 오류가 없는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오류 논란, 사교육업계에 대단한 광고효과

한편 이러한 오류 논란은 사교육업계에 대단한 광고 효과를 가져온다. 작년에 있었던 2007학년도 경찰대 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주도적으로 지적한 사람은 유웨이중앙교육의 모 수학강사였다. 결국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져 모든 보기가 정답으로 처리되었다. 최근 2008학년도 연세대 수시2학기 수리논술 문제의 오류를 주도적으로 지적한 사람 또한 대치동의 모 학원원장이었다. 연세대가 해당 문제를 모두 정답처리하자 이 학원은 플래카드까지 걸어놓고 이를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이번 수능 물리2 문제 또한 메가스터디의 모 물리 강사가 온라인상에서 주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강사는 아직 이를 광고에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앉은 자리에서 저절로 몇십억원짜리 광고 효과를 누린 셈이다.

물론 사교육업계에서 주도적으로 제기한 문제라고 해서 이것이 결과의 판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사교육업계에 광고효과만 일으킨다는 점을 고려하여, 입시문제의 출제에 만전을 기하고 이의제기에 대하여 보다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수능을 출제하는 평가원이나 논술고사를 출제하는 대학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평가원은 이번에 명백히 큰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지고 피해 입은 학생을 구제해야 한다.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수험생들의 억울한 처지를 고려한다면, 시기가 너무 늦었네 어쨌네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물론 수능 등급제 하에서는 일부 응시자의 등급이 달라지면 다른 학생들의 등급도 달라지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정시 원서접수 기간이므로, 긴급 조치를 발동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사태를 진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일단 수시전형 합격자를 다시 선정해야 하는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격자 전체를 다시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2 11번 문제로 인해 불합격처리된 학생들만 추가 합격시키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수능 물리2에 응시한 수험생 전원에게 정정된 등급이 표기된 새 성적표를 발급하고, 정시전형 원서접수 기간 및 논술고사 시기를 늦추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평가원이 현재의 입장을 고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사태는 법정소송으로 비화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불행하고 우려스러운 사태이다. 입시문제를 출제하는 기관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물리학자들의 공식적인 견해를 부정하고, 결국 어느쪽 주장이 타당한지가 법원에서 판결되는 것이다. 어찌하여 물리학 문제에 대하여 대한물리학회가 아닌 다른 기관이 더 권위있는 판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지든지간에 그 부작용은 지금 평가원이 수험생에 대해 사과하고 긴급조치를 취하는 경우보다 훨씬 클 것이다. 제2의 '판사 석궁테러 사건'이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이 사건의 기원은 90년대 치러진 성균관대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다). 교육 당국의 현명하고 기민한 대처를 촉구한다.


태그:#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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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yibohm@hanmail.net) 기자는 메가스터디 창립멤버로서 기획이사이자 연봉 18억원을 받는 스타강사로 활동하던 중, 2003년 말 은퇴를 선언하고 2004년부터 4년째 무료 인터넷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곰TV/곰스쿨닷컴과 EBS를 통해 수능 과학탐구 및 자연계열 논술 강의를 하고 있고, 곰TV를 운영하는 그레텍(주)의 교육사업총괄이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이범, 공부에 反하다>(2006)가 있습니다. '이범의 한국 교육 발가벗기기'는 3불정책(1회), 트라이앵글(2회), 특목고(3회), 사교육(4회), 공교육(5회), 대안(6회) 등 모두 6회 연재됩니다. 이 목차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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