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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진보도 망했지만, 낡은 진보도 망했다. 옛 열린우리당 세력도 교체의 대상이었지만 민주노동당도 심판받았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대패'했다. 2002년 대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표를 얻었다. 지난 대선에선 3.9%, 96만 표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3%, 70만표다.


5년 전에는 국회의원 하나 없이, 당 지지율 2%에서 치렀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조건은 달랐다.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탄생시켰고, 정당보조금도 두둑했다. 10만 당원 조직도 있다. 그런데도 후퇴했다. 민주노동당은 말을 잃었다.


19일 오후 6시, 문래동 당사에 나온 권영길 후보의 표정은 침통했다. 상황실에는 30여 명의 지도부가 나와 있었지만 긴 침묵이 흘렀다. 권 후보는 20분 만에 자리를 떴고 대표실로 내려갔다. 김창현 선대본부장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따라나섰다.


이후 7시께 권 후보는 다시 상황실로 올라와 "겸허히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겠다"며 "국민이 보내준 지지를 밑거름으로 다시 비상하겠다"고 짤막한 입장을 밝히고는 자택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심상정 의원은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자의 질문을 피했다. 다들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결과다. 권영길 후보는 내내 여론조사에서 3% 벽을 깨지 못했다. 그래도 '설마'하며 5%는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면 '선방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냉정했다. 한 당직자는 "참패를 떠나 대국민 반성문을 제출해야 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왜 이리됐나...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이 당 지지율보다 못했다

 

왜 이리 됐는가.

 

외부 요인? 간단히 설명된다. 정책 실종, 후보 난립, 상호 비방으로 점철된 선거판에서 민주노동당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어려웠다는 게 그간의 항변이었다. 불리한 이유들이다.


그러나 유리한 상황도 전개되었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민주노동당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자유주의 세력의 '스토킹'도 없었다. 사표론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선거 막판 5.9%까지 지지를 받았지만 정몽준-노무현 단일화 결렬 후폭풍으로, 망령 같은 사표심리가 발동해 2%가 빠졌다고 억울해했다.


이번에는 지역주의도 완화됐다. 수도권과 영호남에서 고루 진보의 뿌리를 내려온 민주노동당 아닌가.

 

또한, 이번 대선을 관통한 '정권교체론'은 야당인 민주노동당 입장에선 대안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는 호재였다.

 

민주노동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창해온 양극화 해소를 고리로 '사이비 진보' 세력을 제치고 개혁층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논리적으론 가능한 얘기지만 실제는 달랐다.


지난 대선보다 적은 득표. 그 현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두 가지 뼈아픈 대목이 있다.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이 당 지지율보다 못했다는 점이다.


의석수 면에서 민주노동당은 원내 3당이다. 지지율도 민주신당과 큰 차이 없는 3위다. 7∼10%는 꾸준히 유지했다. 그런데 후보는 그의 절반도 얻지 못했다. 당은 지지하지만 후보는 지지하지 않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4개월짜리 신인 문국현에게 '7년 진보정당' 자존심 구겨졌다... 왜?


노회찬 의원은 "민주노동당 지지자 중에 45% 정도만 권영길을 찍었다"며 "22%는 문국현 후보에게 갔다"고 분석했다. 당 지지자를 빼앗긴 것이다. 노 의원은 "당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당 틀을 채 갖추지도 못한 창조한국당, 4개월짜리 정치신인 문국현 후보에게 '7년 진보정당, 기호 3번 후보'의 자존심은 있는 대로 구겨졌다. 문 후보는 6%를 얻었다. 권영길의 2배다.


원인은 크게 4가지다.


첫째, 권영길이라는 '인물'의 한계다. 권영길 후보는 1997년 김대중과 겨뤘고, 2002년 노무현과 겨뤘던 대권 삼수생이다. 당 경선에서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었다. 민주노동당=친북당 이미지를 담보하는 '자주파'의 지지를 끌어내 당선됐다. 그러고도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해 결선까지 갔다.


심상정 후보의 '심바람' 기세가 만만치 않았지만 다수파를 등에 업은 권 후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평당원 혁명' '당 혁신'을 외친 노회찬·심상정의 목소리는 묻혔다.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진보정당의 차세대 리더십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는데 형식적 다수세력의 부자연스런 개입으로 묵살됐다"고 말했다.


둘째, '메시지'가 없었다. 이명박은 '국민성공시대', 정동영은 '가족행복시대', 문국현은 '사람중심 진짜경제'라고 하는 슬로건이 있었다. 권영길은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었다. 어떻게 바꾸겠다는 내용이 '시대정신'으로 집약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하면 떠오르는 대표공약?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 등의 기억에 남아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간 정책이 이번 대선에선 없었다. "서민지갑에 200만원씩을 채우겠다"고 했지만 돈 달라고 진보정당 지지할까? 권 후보는 방송토론회에서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며 지나간 레코드판을 다시 돌렸다. 나아지게 해줄 무엇인가로 후보가 '대답'해야 했다.

 

셋째, '선거전략'의 부재다. 지휘본부도 '문래동' 따로 '여의도' 따로 놀았다. 권영길 후보 캠프가 있는 여의도는 의원들과 특보단·대변인실의 근거지였고, 당사가 있는 문래동은 최고위원들 중심으로 돌았다. 실무는 여의도에서 하고 의사결정은 문래동에서 내리는 2원 체계였다. 일과 결정이 따로 놀아 삐거덕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한때 특보단은 못 해먹겠다며 '보이콧'을 한 적도 있다.


후보는? '민생투어'라며 지방을 돌았다. 노인들만 남아 있는 농촌을 돌며 한 표를 호소했다. 권 후보가 핵심 캠페인으로 내세운 '백만민중대회'는 어땠나. 불법집회 논란에 휩싸여 정작 메시지는 묻혔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비상'이 걸렸다. 선거를 5일 앞두고 1억원을 들여 수도권의 현수막을 전격 교체했다.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 후보는 막바지 유세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민주노동당을 구해달라"고 읍소했다.


넷째. 고질적인 문제다. 구조적이고 본질적이다. 정파 갈등. 선거기간 잠복해 있다 싶더니 민주노동당의 '국가비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폭발했다. 당 정책위원회의 젊은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자주파가 고집한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반기를 들었다.


조승수 전 의원은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나는 선거운동 못한다"며 침묵의 카르텔을 깼다. 선거 한복판에서 노선투쟁이 다시 불붙는 듯 했다. 또 평등파 내부에선 '사민주의냐, 사회주의냐' 논쟁이 벌어졌다. 보수가 파이를 키워가는 동안 진보는 분열했다.


바닥을 쳤다, 제대로 싸워서 거듭나길...


대선 결과를 놓고 민주노동당은 뒤숭숭하다. 지도부 총사퇴, 긴급중앙위원회 소집, 비례대표 선출 연기 등 당면한 얘기부터 '권영길 정계은퇴'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구체적인 조치가 어떻게 가시화될지는 몰라도 총선전략보다 대선평가가 우선이라는 인식은 공통적인 것 같다. 20일 오전 최고위원 회의와 선대위 회의가 연거푸 열린다. 대선 평가와 수습방안이 논의될 것이라 한다.


민주노동당, 바닥을 쳤다. 더 물러설 곳이 없다. 제대로 싸워서 거듭나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나라, 서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태그:#권영길,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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