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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 작아산(雀兒山:취얼산) 정상에서 더꺼에 이르는 계곡은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관문이나 되는 듯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아름다운 심연(深淵)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산 정상에 펼쳐졌던 풀밭은 30분이나 차를 달린 후에야 끝이 나나 보다.
 
초원이 끝나는 어름부터는 숲이 나타난다. 드문드문 서 있는 키 큰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초록의 양탄자 위에는 양이며 야크들의 재롱이 한창이다. 초원과 숲과 시냇물 그리고 그 사이에 뛰놀고 있는 이 대자연의 주인인 양과 야크들, 알프스가 아름답기로 이 계곡보다  아름다울까.   
 

 

작아산의 산 그림자가 마을로 내려올 때쯤 우리 일행도 더꺼(德格:데끼)에 도착했다. 현지어로 데끼라고 부르는 더꺼는 작아산 계곡이 끝나는 기슭에서 불쑥 나타났다. 마치 더꺼는 작아산이 날갯죽지 안에 마을을 포근히 안고 있는 형상이다. 도시의 한가운데로 작아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흐르고, 민가들은 하천을 끼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 일행은 중심가 사거리에서 멀지 않은 작아산빈관에 여장을 풀었다. 도시 규모에 비해서는 꽤 크다고 느껴지는 작아산 빈관, 빈관의 뒤쪽으로는 시냇물이 흘러 객사의 창문만 열면 냇물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온다. 여장을 풀자마자 시내 구경도 할 겸 서둘러 삼삼오오 시내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더꺼는 동티벳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일 뿐 아니라, 티벳인들의 문화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더꺼를 티벳인들의 "문화 고성(古城)"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 유명한 인경원(印經院)이 이곳에 있으며, 작은 포탈라 궁이라고 불리우는  팔방사(八邦寺:빠방쓰)도 이 곳 더꺼에 위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일행이 더꺼에 도착한 시간은 시내에 있는 인경원도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라도 할 생각으로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니자니 붉은색 가사를 입은 라마승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빈관에 돌아와 물어 보니 내일 시내 사찰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는데, 원근 각처에서 스님들이 이곳으로 집결해 대부분의 객사들이 대만원이라고 한다. 뒤따라 들어온 김선생님과 정선생님은 냇가에서 야크를 잡는 것을 보고 왔단다. 사찰에 큰 행사가 있으면 야크를 잡아 부처님께 보시를 한다는데 아마 내일 행사에 사용될 제물인가 보다.

 

높은 산의 자락에 안긴 더꺼에는 밤도 빨리 찾아온다. 오랜만에 나도 작아산의 품에 안겨 고단한 몸을 마음껏 풀어헤치고 단잠을 잤다. 밤새 작아산의 숨소리 같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빈관에 딸린 찬청(식당)에서 쉬판(누룽지탕 같은 흰죽)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8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참도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 계획된 여정은 참도까지 318km,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러나 도로 사정이 하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계곡을 빠져 나오자 벌써 3명의 부지런한 순례객들이 오체투지로 우리보다 앞서 길을 가고 있다. 어디에서 출발한 순례객들인지 그들에게 보시라도 조금 하고 싶었으나, 출발하자마자 차를 세우기가 미안해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부디 라싸까지 무사히 당도하기를….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탄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매정하게 지나친다. 미안한 마음에 뒤돌아보니 순식간에 한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진다.


더꺼에서부터 공로(公路)와 나란히 흐르고 있는 강물 이름이 궁금해 디키에게 물어보았더니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시 운전기사에게 물어 이 강물의 이름을 우리에게 일러 준다. 잔다리버(janda river)라고 한다. 우리 차의 기사는 천장공로를 50번이나 왕복했다고 하더니 운전 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지리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다. 내가 디키를 거치지 않고 수첩에 한자를 적어 보여주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수첩에다 한자를 적어 내게 돌려 준다.

 

 

다시 얼마를 달려가자 우리와 함께 흘러가던 잔다강의 맑은 강물이 시뻘건 흙탕물과 몸을 섞는다. 내가 다시 수첩에 '長江之始源?'이라고 적어 기사에게 보였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양쯔강의 발원인 금사강(金沙江:찐사지양)인 것이다. 두 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여기가 바로 시장자치구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물론 과거의 티벳 영토는 사천성의 일부까지를 아우르는 지금보다는 훨씬 넓은 지역까지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현재의 행정 구역상 티벳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만약 티벳이 독립할 경우, 양쯔강의 상류인 금사강을 티벳에 빼앗기게 되므로 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장강(금사강,金沙江)을 경계로 해서 사천성과 티벳(서장)을 분리하였다고 한다. 금사강교 앞에 서둘러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금사강의 강줄기와 나란히 뻗은 평지도 잠깐, 차는 또다시 가파른 산언덕을 기어오르고 선경(仙境)은 계속 이어진다. 옐라파스(4225m) 정상에서 조망하는 경치는 한 마디로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다. 조물주는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빚어놓고 이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는지. 분명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 양과 야크의 세상이요 그들의 낙원이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주인이 아닌 유일한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는 저들이 주인이고 우리가 분명 객이다. 잠시 객이 스쳐가며 속세에 찌든 심신을 씻고 간다고 생각하니 초록의 산야와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과 이 자연의 주인인 야크와 양떼들에게 미안하다. 친구들이여 안녕!

톰브(Tombu)에서 만난 사람들


계곡을 거의 벗어나자 도로 양쪽으로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늘어선 조그마한 마을이 나타난다. 디키의 사촌들(이모네 가족)이 산다는 톰브(Tombu)라는 마을이다. 어제 밤 빈관 로비에서 디키가 머지않은 곳에 사촌들이 살고 있으니,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은지 의향을 물어 왔다. 영어가 서툴러 자세히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친척 집으로 우리 일행을 초청한다는 정도는 이해했다. 여행 중에 민가를 방문한다는 것은 흔히 있는 기회가 아니기에 디키의 초대를 일행 모두가 반기는 표정이었다.
 

디키 이모네 집은 마을 한가운데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자 바로 나왔다. 대문 앞에는 조그마한 채마밭이 있고 배추며 푸성귀들이 심어져 있다. 어디를 가든 서민들의 삶의 모습은 비슷한가 보다. 마치 우리나라 시골 마을을 온 느낌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의 구조는 우리네 가옥과는 사뭇 다르다. 아랫층은 주로 가축을 키우거나 헛간으로 쓰이고 2층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아랫층 중앙에 놓여 있는 가파른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바로 거실이 나온다. 창이 작아 실내가 좀 어둡기는 하지만 집안의 구조는 짜임새 있게 되어 있다.
 
이모네 식구들과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디키 이모는 우리 일행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음식들을 내놓는다. 삶은 야크 고기, 야크 젖으로 만든 천연 요거트, 야크 우유, 수유차, 특히 삶은 야크 고기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데 꼭 쇠고기 수육을 먹는 기분이다. 요거트는 신맛이 강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찻잔을 비우면 언제 따라 놓았는지 다시 잔이 채워져 있다.

 

톰브 마을에서의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고 몸도 마음도 충만한 채 마을을 벗어나자 또다시 계속되는 초원의 산야. 그런데 가만히 보니 초록의 양탄자 사이로 빗물이 골을 이루는 곳엔 어김없이 검붉은 흙탕물이 흘러내린다. 초록과 대비된 색깔이 더 매혹적이다. 금사강의 강물이 그토록 붉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모세혈관 같은 이 초원의 혈류들이 모여 내를 이루고 다시 내가 모여 그렇게 탕탕히 흘러내렸나 보다.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놓기도 잠시, 조금 전 디키 이모네에서 마셨던 야크 우유가 뱃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모양이다. 화장실은 고사하고 사방을 둘러봐도 은폐물 하나 없는 초원에서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1호차를 세우면 뒤따라오던 차들이 줄줄이 멈출 텐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의식을 치러야 하다니 맙소사. 그러나 식은땀을 흘리며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결국 뱃속 반란군에게 백기를 들고 차에서 내려 무작정 산등성이를 향해 달음질을 쳤다.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던 야크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허연 엉덩이를 까고 영역 표시를 하고 있는 이 이상하게 생긴 동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발밑에는 작고 노란 꽃들이 마치 수를 놓은 듯 점점이 박혀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에서 화장(?)을 한 것이다.

 

참도(Chamdo.창뚜) 가는 길


다시 비가 내린다. 비라기보다는 안개에 가깝다. 멀리 풀밭에는 소풍을 나온 것인지 아니면 축제라도 하는 모양이다. 풀밭에 여러 동의 천막을 치고 제법 왁자하게들 놀고 있다. 가만히 보니 축제를 즐기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말들도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참으로 낭만적인 풍경이다. 냇물이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어 그 흥겨운 놀이에 끼어들지는 못하고 한참을 바라볼 뿐이다.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티벳인들의 생활은 너무나 단순해 보인다. 하루 종일 양이나 야크 때를 몰고 초지로 나와 여기 저기 이동하며 이들을 돌보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렇게 소풍을 나와 단조로운 생활에 리듬을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마음대로 추측해 본다.

 

3년 전 아들과 함께 티벳 여행을 할 때 아들이 내게 물었다. “아빠, 여기 애들은 무슨 낙으로 살아?” “왜?” “친구도 없이 하루 종일 저렇게 양떼나 돌보고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고?” 나는 얼떨결에 저렇게 살다 보면 자연도 훌륭한 친구가 된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자연이 친구가 된다는 내 대답을 쉽게 수긍했을 리는 만무하다.


중간에 점심을 먹을 만한 적당한 마을이 나타나지 않아 참도로의 여정을 강행하던 중 토바 마을에서 뜻하지 않게 길이 막혀 버렸다. 앞서 가던 대형 트럭 한 대가 도로 공사 중인 진흙길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일행들은 이 틈을 타 과일 가게에 가서 과일을 사먹기도 하고 당구장에 들어가 이 마을 청년들과 당구 시합을 하기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오후 4시가 지나도 트럭은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워낙 짐을 많이 실은 터라 작업 중이던 중장비로 끌어 올려도 쉽게 구렁에서 나오지 못한다. 조용하던 마을에 갑자기 구경거리가 생겼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 나와 이 난처한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들에게는 무료하고 따분한 한낮에 좋은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한 시간도 더 지체를 한 모양이다.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이지만 나는 마치 60년대 내가 자라난 시골 마을에서의 한때를 이곳에서 보낸 느낌이다. 바쁠 것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어 무료히 서성였던 나의 유년의 한낮을 이곳 토바 사람들로부터 다시 본 느낌이다.


참도가 가까워지고 있나 보다. 짚차에 달린 고도계가 3300m를 가리키고 있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참도의 해발 고도가 3240m이니 아마 20분 정도만 더 달려가면 참도에 도착할 것 같다. 


태그:#티벳 여행, #천장 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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