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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주택이 숨을 쉬게하기 위해 밖의 습기는 차단하고 내부의 열은 발산하는 기능성 자재인 타이백을 합판과 사이딩 마감 사이에 설치한다.
▲ 타이백 시공 목조 주택이 숨을 쉬게하기 위해 밖의 습기는 차단하고 내부의 열은 발산하는 기능성 자재인 타이백을 합판과 사이딩 마감 사이에 설치한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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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외부 벽체는 방부목 루바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였다. 합판과 외부 벽체 마감인 사이딩 사이에는 외부의 습기를 차단하고 내부의 열기를 배출할 수 있는 타이백을 시공한다.

사람이 고산 등반 시 기능성 옷인 고어텍스 재킷을 입듯, 집도 방수가 되면서 내부 열기를 배출하도록 숨쉴 수 있는 자재를 설치하는 것이다. 타이백 구입을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대전 부근에도 목조주택 자재를 판매하는 매장이 개점했다는 정보를 얻었다.

반가운 마음에 집사람과 같이 청원 IC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목조주택 건축 자재 매장을 방문하였다. 타이백 1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그 매장은 개점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지 체계가 조금 엉성하게 보였으나 우리가 원하는 목조주택의 모든 자재를 갖추고 있었다. 수도권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았으며 남원 목재상보다 30% 이상 저렴하였다.

넓은 매장을 둘러본 나는 삼나무 루바를 발견하였다. 나는 집사람에게 약품처리한 방부목보다 천연 방부목인 삼나무(시다) 루바로 외부벽체를 마감하자고 하였다. 방부목을 주문한 인천으로 연락해보니 취소가 가능하며 곧바로 환불해주겠단다. 우리는 삼나무 루바와 창고를 지을 목재를 포함하여 90만원 정도의 건축 자재를 구입해 덤프트럭에 싣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지리산으로 오두막 짓는 일을 계속하러 출발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어린애 같은 마음을 집사람에게 들킬까봐 조바심이 들었지만 눈치를 보니 집사람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 쳐다보며 부끄러운 웃음을 주고받았다.

벽체 내부 마감은 천연 무공해 페인트와 국산 편백나무 루바 가운데서 고민하다 편백나무 숲과 일체감을 이룰 수 있는 편백나무 루바로 결정하였다. 10월 27일, 아침 8시경에 남원 산림조합에 들러 편백나무 루바를 구입하고 집터 입구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돼간다.

외부 차량의 무단 출입을 막기위해 설치한 덫에 내가 걸리는 결과가 됐다.
▲ 진입 금지 외부 차량의 무단 출입을 막기위해 설치한 덫에 내가 걸리는 결과가 됐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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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박○○씨가 석축의 중간 마감 때 입구를 봉쇄하기 위해 막아 논 큰 돌이 앞을 가로막는다. 진입로가 건조하고 잘 다져 있을 때는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린 비에 흘러내린 미끄러운 토사가 젖은 채 쌓여 있어 우리 트럭이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심스럽게 진입을 시도했으나 미끄러운 황토 토사에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큰 돌에 트럭이 걸리고 말았다. 집사람 자가용인 귀여운 덤프트럭의 우측 뒷바퀴 부분이 많이 찌그러져 버렸다. 30여분 실랑이를 하다가 트럭을 간신히 뒤로 빼놓고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 오두막 터로 올라왔다.

내부 벽체 공사 중 가장 힘든 과정인 서까래와 윗깔도리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은 공간을 외부와 내부 합판으로 막고 그 사이를 유리섬유로 채워 단열작업을 하는 것이다. 작은 틈새라도 생기지 않게 밀봉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도 북풍한설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홀하게 할 수 없다. 서까래 사이의 단열작업을 끝내고 나니 날이 저문다.

오두막에서 첫 밤을 보냈다. 바닥 난방이 설치되지 않았으니 냉방에서 자나 싶었는데 집사람이 고맙게도 전기담요를 꺼내어 요 위에 깔았다. 바닥에 곧 온기가 돈다. 집사람은 저녁을 위해 조촐한 축하 자리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공구박스 위에 합판 조각을 얹어놓고 그 위에 저녁식탁을 차리면서 프랑스 와인 한 병을 곁들였다.

고급 아파트 생활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 백번을 얘기한다 해도 이 밤 축복받은 이 자리의 행복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혓바닥이 단 한 번에 국 맛을 알 듯 이 순간 우리들의 가슴 벅찬 행복의 맛을 알 것이다.

태풍에 의해 집체가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주춧돌과 기둥을 고정시킨다.
▲ 기둥 확보 태풍에 의해 집체가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주춧돌과 기둥을 고정시킨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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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일요일 아침 5시에 일어났으나 주위가 너무 어둡다. 난 우리 집터에서 지리산 주능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어떨까 항상 궁금했던 터라 추위를 떨치고 일어났다. 집터로 내려가 좌선의 자세로 세상이 열리는 순간에 나를 옮겨 놓았다. 찬란히 붉은빛으로 쪼개지는 세상의 모습에 미래를 훔쳐보는 흥분이 더해져 마음의 옷깃을 여미었다. 언제될지 몰라도 나의 일과는 이 집터에 세워질 집에서 맞는 일출과 함께 시작할 생각이다.

한옥과 달리 목조 주택은 주택 자체 무게가 경량이므로 태풍이 몰아칠 때 집채 위치가 옮겨지지 않고 천정이 날아가지 않도록 기둥을 확보하고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허리케인 타이를 서까레와 윗깔도리 사이에 설치한다.
▲ 지붕 확보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허리케인 타이를 서까레와 윗깔도리 사이에 설치한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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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까래와 윗깔도리 연결 부위에 허리케인 타이를 설치해야 한다. 기둥을 주춧돌에 앵커볼트로 고정시키고 ‘ㄴ’자 철물을 이용하여 지붕을 벽체에 고정시키고 있는데 광주의 장인과 장모님께서 지리산 단풍 구경 오시는 길에 우리 오두막을 들르시겠단다.

팔순의 아버님께서 그렇게도 궁금해 하시는 딸의 별장을 시찰하러 오신다는 연락이었다. 집사람은 전화기를 놓자마자 시공순서를 외부 벽체에서 내부 벽체로 바꾸란다. 노부모가 오시면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아득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딸의 배려라 싶어 군말 없이 내부 벽체 시공으로 작업순서를 바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겪이다. 일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붕과 서까래 사이 삼각형 모양의 스티로폼을 잘라 맞출 때는 너무도 죽이 잘 맞아 서로를 칭찬하는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행복의 미소를 주고 받는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스티로폼 작업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조급하고 서두르면 탈이 나기 쉽다. 또한, 작업장 주변을 항상 잘 정돈해야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일을 서두르다 보니 먹줄통을 아무 데나 놓게 되고 일에 정신이 팔린 나는 먹줄통의 날카로운 바늘 촉을 밟아버렸다. 바늘 끝이 발바닥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당뇨병 환자에게는 발의 상처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산동면의 개인병원으로 가봤으나 주말이라 닫혀 있다. 남원의료원 응급실로 서둘러 갔다. 아직 이사도 않았는데 남원의료원 신세를 두 번씩이나 졌다. 일을 서둔다고 서둘렀지만 전체적인 공정은 더욱 늦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스티로폼 작업을 끝내고 석고보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집터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집사람의 바로 아래 처제와 동서가 장인과 장모님을 모시고 오두막 길을 올라오고 있다. 손아래 동서 김서방은 오두막에 도착하자마자 “오메! 성님! 정말로 저질러 부렀소, 이잉” 하며 매우 놀라는 눈치다. 김 서방은 건축 설계사이자 아파트 건설현장 소장이다. 그도 오십이 넘은 나이이니 30여년 건설현장을 누벼온 사람이다. 내가 집사람과 둘이서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미완성 오두막 안 전기장판 위에 돌아앉아 김 서방이 준비해온 고기를 소주 안주로 드시면서 흐뭇해 하시는 장인어른과 웃음꽃이 핀 장모님과 두 딸을 보고 있노라니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자신들의 어머니 앞에서는 다시 어린애가 되는 모양이다. 처가 식구들이 오는 순간이 첫 번째 주말 오두막 짓기 작업이 끝나는 순간이 됐다.

덧붙이는 글 | 본격적인 목조주택을 지기 위한 실습으로 오두막을 짓는 자신의 경험담입니다.



태그:#목수, #오두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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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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