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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정치검찰-이명박 유착진상규명 비대위'는 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경준씨가 의원들의 접견과정에서 직접 작성한 자필 메모 3장 등을 공개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치검찰-이명박 유착진상규명 비대위'는 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경준씨가 의원들의 접견과정에서 직접 작성한 자필 메모 3장 등을 공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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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실일까?

김경준씨의 잇단 '메모'와 '증언'은 BBK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아니, 이제 더 이상 ''BBK 주가조작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BBK 논란'을 뛰어넘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검찰이 특정 후보를 위해 사실을 조작했느냐는 문제로까지 확산됐다. 변호인까지 변호를 해야 할 의뢰인의 요청을 묵살하고, 되레 검찰 편에 섰던 것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김경준씨가 끝까지 자신의 범죄행위를 숨기거나, 형량을 덜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정치권의 사주를 받고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따라서 '상식'의 수준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다. 김경준씨의 진실 여부를 상식의 수준에서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김경준씨 '메모'의 진실은?

우선 김경준씨가 지난달 23일 그의 모친과 장모와 면회했을 때 적어 건네주었다는 '메모'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 내용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검찰은 '메모' 자체가 미리 '기획'돼 준비된 것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미국에서 미리 작성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경준씨는 물론 그 가족들은 검찰의 수사를 교란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공작'을 준비한 사람들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리 머리가 좋고 배포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치밀하게 일국의 수사기관을 희롱하고, 나아가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김씨 장인과 장모는 <서울신문>과의 두 차례 인터뷰에서 이 '메모'의 원본을 공개했다. 김씨의 장모가 가지고 간 종이와 김씨 모친이 갖고 있던 볼펜으로 작성했다고 한다. A4 절반 크기의 괘지는 김씨 장모가 "인천공항에 김씨 모친을 마중나가는 과정에서 메모를 할 게 있어서 가지고 간 종이"라는 구구한 설명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런 증언까지 나오자 "면회 과정에서 작성됐을 수도 있지만, 가족이 원본 제출을 거부하고 있어 의심을 버릴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서울신문>이 10일 보도했다(검찰 "메모원본 면회 때 만들었을 수도").

김경준씨는 이 '메모'에서는 물론 지난 7일 통합민주신당 법률지원단 송영길 의원 등과 만나 작성한 '진술서'에서도 일관되게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술하도록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또 BBK는 실제로는 이명박 후보가 지배권을 갖고 있던 회사로 문제가 되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기로 이명박 후보와 협의해 결정했다는 주장을 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글 이면계약서를 1년 전 시점으로 소급해 작성 날인 한 것도 이런 관계 때문에 이 후보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놓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이 후보가 직접 날인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경준은 왜 진술을 번복했을까?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BBK 사건의 배후 실세는 이명박 후보"라는 주장이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의 진실성 여부는 별도로 검증 확인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가 자신의 처지를 변호할 수 있는 이런 '진술'을 검찰 수사 때 왜 번복했을까 하는 점이다. 김경준씨는 검찰의 '회유'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의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김경준씨가 왜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진술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을까?  그보다 '현실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은 아니었을까? 검찰 '회유설'을 김씨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김경준 가족이 4일 공개한 김경준씨의 메모. (11월 23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
 김경준 가족이 4일 공개한 김경준씨의 메모. (11월 23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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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러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다.

되레 검찰의 반박 논리가 더 궁색한 부분도 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 어떻게 '회유'하고 '협박'하겠느냐는 반박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김씨가 "검찰이 이명박씨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는 '메모' 내용에 대해 "검찰은 이명박씨를 모른다, 모르는데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반박한 것은 설득력이 없다. 대한민국에 이명박 후보를 모르는 검사가 누가 있겠는가?

김경준씨의 '검찰 회유' 주장이 나온 다음에 검찰이 보인 반응 역시 그렇다. 김씨 누나인 에리카 김과 김씨 부인 등에 대해서 범죄인 송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은 일종의 '위협'일 수 있다, 범죄 혐의가 확정돼 범죄인 인도 요청이 필요하면 하면 될 일이다, 김씨 수사 발표를 하면서 그 방침을 같이 밝혔거나, 수사가 미진했다면 수사가 끝난 다음에 결정하면 될 일이다.

범죄 혐의를 확정하기 전에 공개적으로 범죄인 인도 요청 운운하는 것은 당사자의 인권과 명예 훼손에 해당될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검찰의 '회유' 주장이 나오고, 에리카 김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밝힌 상태에서 검찰의 이런 입장 천명은 김씨 가족들의 '입'을 막기 위한 일종의 '위협용'이란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어느 쪽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꼭 확인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김경준씨는 구체적인 '회유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한글계약서 등에 대한 진술 번복을 요구하면서 미국 가족과의 전화 통화도 막았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실제 그랬던 것인지 여부 등을 따져본다면 김씨의 '검찰 회유' 주장의 전반적 신뢰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경준 변호인,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 신청하지 않았다는데...

그런 점은 이회창 후보 진영의 김정술 법무지원단장이 지난 7일 서울구치소에서 면회하고 밝힌 내용도 마찬가지다. 김경준씨가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 변호인들이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김경준씨 가족들이 사임한 변호사에게 박스째 넘긴 자료들이 상당부분 검찰에 넘어갔다는 주장도 그렇다. 당연히 검찰 수사에 도움이 되라고 넘긴 자료들일 수 있지만, 피의자의 자료를 통째로 검찰에 넘긴 것은 '황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만약 김경준씨와 그 가족들의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이 '끝장났다'는 것을 뜻한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법의 정의를 실현해야 할 국가 기구가 되레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면, 또 그런 '범죄적 행위'가 용인된다면 한국의 사법기구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변호인들이 의뢰인의 요청까지를 묵살하고, 피의자의 반론권 행사를 막고, 피의자의 반박 자료까지 무책임하게 처분했다면 이 역시 법조계의 직업윤리가 파탄났다는 반증일 터이다. 

정치권의 치열한 공방과는 무관하게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할 이유이다. 언론이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신문들은 아예 이를 외면하고 있다. 사법시스템은 물론 언론이라는 사회적 공익 시스템의 최후 보루 또한 그 한 축이 이미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태그:#검찰 회유 논란, #김경준, #이명박, #BBK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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