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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순정만화(1ㆍ2)
- 글/그림 : 강풀
- 펴낸곳 : 문학세계사(2004.2.∼2004.5.)
- 책값 : 한 권에 12000원씩


 인터넷만화를 그리는 이 가운데 나라안에서 가장 이름이 높다는 강풀(강도영)님. 손이 아닌 셈틀로 그리는 만화를 썩 내켜하지 않기에 이분 만화는 몇 번 지나가며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터넷만화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손쉽게 그리려 한다는 생각도 들고, 기계로 꾸민 빛깔이 제 눈에는 아주 따갑고 낯설고 사람냄새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온갖 빛깔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셈틀입니다.

 

하지만 온갖 빛깔을 다 나타낼 수 있으면 뭐하나요. 사람냄새, 풀냄새, 꽃냄새, 흙냄새가 없는 걸요. 이렇게 따지면 요즘 물감도 자연에서 얻기보다는 화학물질을 뒤섞어 만드니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나마 질감이라도 있기는 하지만.

 

 한편, 너무 손쉽게 그린다는 느낌이 드는 인터넷만화는 ‘누구나 배워서 그릴 수도 있다’는 좋은 대목이 있어요. 뭐, ‘누구나 배워 쉽게 그린다’고 해도 아무나 대충 그릴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가 아닙니다. 그만큼 애쓰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다만 손그림 만화보다 품이 적게 들고, 어차피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세상이라면 손그림을 긁어서 인터넷에 띄우나, 처음부터 셈틀로 그려서 띄우나 마찬가지일 테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셈틀로 그리는 편이 보기에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어요. 손그림 만화는 종이에 찍어서 맨눈으로 보아야 제맛이고, 셈틀그림 만화는 인터넷으로 보아야 제맛이니까요. 강풀님 <순정만화>도 어느 만큼은 ‘종이보다 인터넷 화면’이 더 보기에 낫습니다.

 

 강풀님이 그리는 만화는 널리 사랑받고 좋은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언제나 세상살이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우리들한테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아요. 자기가 겪고 느끼고 본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머리로 꾸미거나 지은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를 자기 입이나 동무들 입을 거쳐서 들려줍니다. 그러니 이분 만화에는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싱싱합니다. 파릇파릇한 기운이 있습니다. 잠깐 보고 지나가면 그만인 다른 인터넷만화와는 달리,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힘, 기운, 느낌이 서려 있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며 차근차근 인연을 쌓다가 자기 삶이 차츰 바뀌고, 어느 결엔가 서로를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이 사랑으로 탄탄하게 자리잡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순정만화>입니다. 사내 셋, 계집도 셋, 이들을 둘러싼 크고작은 인연이 하나씩 엉키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면서 사랑이든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미움이든 멀리 있지도 않으나 바로 옆에 있기만 하지도 않음을 가만히 느끼도록 합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사람 사귐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참 흔한 이야기입니다. 뻔한 줄거리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로서로 좋게좋게 끝내는’ ‘순정만화’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뻔하고 흔한 이야기를 잘 그리네요. 뭐랄까,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림 그린 이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그렸으니, 그림 보는 우리들도 눈에 힘을 빼고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요 놀이라 하겠으나 ‘어떻게 먹고살까’를 생각하지 않고 바삐 돌아가는 우리들한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우리는 또 우리대로’ 어떠한 길을 스스로 찾아가면 좋을까를 넌지시 느끼게 해 줍니다.

 

 문득, 만화쟁이 강풀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대로’ 꾸밈없이 그릴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다른 만화쟁이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누구나 다 모르는 줄’ 잘못 생각하는구나 싶고, ‘누구나 다 모를 만한 이야기를 억지로 찾으려’ 바둥거리고 있으니, 마음을 적시고 즐거운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만화대사로 쓰는 말을 좀더 다듬고 걸러낼 수 있으면 훨씬 좋은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책값을 꽤나 비싸게 붙였고, 책도 지나치게 겉멋들여서 꾸몄습니다. 그린이와 줄거리하고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부풀린 꾸밈새 때문에, 지난 세 해 동안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이제서야 찾아서 보았습니다.

 

(50) 소박한 삶
- 지은이 : 레기네 슈나이더
- 펴낸곳 : 여성신문사(2002.2.15.)
- 책값 : 8000원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돈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은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도시사람들만 겪는 돈 문제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 자원과 에너지가 어떻게 낭비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22쪽〉


 돈으로 물건을 사서 쓰는 세상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 풉니다. 자기 손으로 지어내는 물건이나 먹을거리는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누구한테 무엇인가를 선물할 때에도 돈을 주고 살 뿐이지, 손수 마련하는 일이란 보기 드뭅니다. 떡국도, 만두도, 김치도 다 사서 먹으니까요.

 

 이렇게 돈으로 모든 일을 풀다 보면,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밖에 없고, 이러는 가운데 ‘물건도 돈으로 사고, 쓰레기도 돈으로 치우면 그만’이라는 버릇이 몸에 배어듭니다.


.. 값비싼 선물 공세를 펴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시간이 너무도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즉, 선물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을 메꾸려 하는 것이다 ..  〈51쪽〉


 적잖은 사람들이 ‘옛날이 좋았어’ 하고 떠올리는 옛모습이란, 사람다운 마음, 이를테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있는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 사람과 온갖 목숨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마음쓰던 삶터,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어도 도둑이 들지 않는 마을 문화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리워하는 지난 옛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까닭은,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 삶에서 빠져나오기 싫기 때문이지 싶어요. 자기부터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사람들한테 펼치고픈 마음은 없이, 남들이 자기한테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테고요. 자동차를 몰 때는 경적을 울리기만 할 뿐, 빠르기를 늦춰 다른 차가 먼저 가도록 마음을 쓴다거나, 자전거나 걷는사람이 먼저 가거나 마음놓고 다닐 수 있도록 눈길을 두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도 느낍니다.


.. 미래에는 산업생산품의 풍요가 아니라, 그런 걸 만들어내느라고 우리가 파괴해 버린 것들, 즉 자연ㆍ시간ㆍ공간ㆍ여유ㆍ건강ㆍ환경 등이 중요해진다. 이제 한적함과 고요함이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걸 얻으려면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늘날엔 시장을 보거나 자동차를 몰 때,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소란과 번잡을 참아내야 한다. 다세대 주택의 벽들은 너무나 얇아서 이웃들이 내는 별별 소리가 모조리 들린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너무도 자극을 받은 나머지 이제는 오히려 고독과 정적을 겁내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너무도 낯설어진 것이다 ..  〈27쪽〉

 

 눈 같지 않은 눈, 눈이 아닌 비가 그치고 며칠 지나니, 날이 쌀쌀해지지 않고 포근해집니다.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하다던 우리 날씨는 벌써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찬물로 머리를 감지만 그다지 춥지 않습니다. 머리를 말리려고 옥상마당에 나와 서서 해바라기를 하는데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한동안 반소매 차림으로 동네를 죽 내려다봅니다. 전철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에서 살던 때에는 사람이 아닌 산짐승과 나무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도시로 나와서 사는 지금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삽니다. 문득, 사람들은 ‘휴가’를 즐기려고 시골 자연 삶터를 찾아서 떠나는데, 도시에서도 호젓한 골목길 나들이를 하면서 휴가를 즐길 수 있고, 헌책방을 찾아나서며 휴가를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심지를 가로질러, 충주에서 청주로, 대전에서 옥천으로, 대구에서 김천으로, 부산에서 양산으로, 서울에서 인천으로, 수원에서 안산으로, 군포에서 광명으로 나들이를 떠나도 쏠쏠하게 휴가를 즐기는 셈이 아닐까 싶고.


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여성신문사(2002)


순정만화 1~2권 세트 - 전2권 - 강풀 순정만화 시즌Ⅰ

강풀 지음, 재미주의(2011)


태그:#책읽기, #강풀, #순정만화, #레기네 슈나이더, #소박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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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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