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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



어느 카드 광고의 배경이 된 노래다. 2004년 광고가 나온 당시 이 동요는 크게 유행했다. 유치원 재롱잔치나 개그프로그램, 드라마에서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소재로 즐겨 사용될 정도였다. 나 역시 이 동요가 입에 잘 붙고 재밌어서 많이 따라 불렀다.

하지만 정작 아빠 앞에서 불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그 당시 내 나이 열아홉이긴 했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애교’를 잘 부리는 나의 성격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독 아빠 앞에 서면 ‘애교’와는 거리가 멀어진 채 이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딸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나에게 아빠와 굉장히 친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게다가 난 외동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외동딸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고들 하며 ‘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겠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엄마와는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는데 비해 아빠와는 어딘가 모르는 거리감이 있다. 셋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아빠와 둘이 있게 되면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때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거리감이 생겨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난 아빠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표현하기 너무 어려워졌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입 안에서 맴돈다. 하지만 입이 안 열린다.

권위적인 아빠 vs 자상한 아빠

김장까지 도맡아 하는 우리 아빠입니다.
 김장까지 도맡아 하는 우리 아빠입니다.
ⓒ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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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권위적이면서 자상하다. 할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인지 아직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엄마와 나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아빠의 의견에 엄마와 내가 반대를 해도 우리가 무조건 따라오기를 바란다.

그럴 때면 엄마와 나는 불만을 가득 품은 채 그대로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가 권위적인 모습만 지닌 것은 아니다. 요리와 청소가 취미인 만큼 집안일을 도맡아 하신다. 이번 토요일에는 김장을 하기 위해 20포기의 배추를 절이고 김치 속에 들어갈 재료를 버무리는 일을 하는 등 집안일을 돕는 정도를 떠나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우리 아빠만큼 자상한 아빠도 없을 것이다. 휴일에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엄마와 나의 아침상을 차리며 강아지 목욕도 시킨다. 엄마가 하기 싫어하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도 도맡아 한다. 아빠만큼 자상한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빠는 천하무적


아빠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아빠가 이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세고 가장 멋있는 줄 알았다. 세상의 대장인 줄 알았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 만큼은 절대적인 대장이었다. 초등학교 때 날 괴롭히던 남자아이를 아빠가 혼내줬다. 천둥이 치는 날이면 아빠의 두툼한 품 안에 들어가 잤고 초등학교 때 드라마 ‘M’과 ‘전설의 고향’을 볼 때면 아빠의 팔을 안고 봤다.

나를 괴롭히고 무섭게 하고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아빠의 손으로 모두 해결되었다. 아빠는 신과 같았다. 그런 믿음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도 아빠는 나에게 천하무적 신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아빠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아빠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아빠는 어깨뼈를 다쳤다. 아빠는 입원을 했다. 항상 건강했던 아빠였기에  깁스를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나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사고로 인해 다쳤지만, 자동차와 부딪혀도 끄떡없을 것 같던 아빠는 깁스를 한 채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22살의 나이에 아빠가 슈퍼맨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때도 난 아빠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물론 엄마와 함께 밤마다 야식을 싸들고 병원에 찾아가긴했지만 '아프지 않냐'는 진심어린 말조차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만 걱정했을 뿐 아빠의 어깨 한 번 주물러드리지 못한 못난 딸이었다. 사고 두 달이 넘은 지금은 깁스도 풀었고 어깨뼈도 모두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빠가 다시 슈퍼맨으로 복귀한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기뻤다. 다만 그 기쁨을 ‘퇴원 축하해요, 아빠’라는 문자 메시지 하나로 표현했을 뿐이다.

아빠와의 대화

기사 쓰기를 빌미로 아빠와 대화를 시도했다. 부녀지간에 대화를 ‘시도’까지 할 건 없지만 나에게는 정말 시도였다. 평소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말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혼자 삼켜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주제가 아니면 그냥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난 질문지를 준비하고 심호흡을 한 후에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 인터뷰 할 게 있어요.”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빠와 나의 대화가 많지 않은 것에 항상 아쉬워하는 엄마가 더 반가워했다. 엄마는 항상 네가 먼저 아빠에게 가서 애교 좀 부려보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하지만 왜 인지 모르겠으나 그게 안 된다. 엄마는 이런 나의 심정을 알까? 인터뷰를 한다는 나의 말에 아빠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딸이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떨린다는 농담도 던지셨다.

나는 아빠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사실 내가 아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빠 역시 나에게 별 말씀이 없다. 다른 친구들을 보면 아빠와 장난도 많이 치고 농담도 많이 하는데 우리 아빠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아빠에게 존댓말을 한다. 물론 그럼 사람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나의 주위 친구들은 대개 아빠에게 반말을 한다. 나도 반말을 하면 아빠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존댓말을 하다 보니 항상 예의를 갖추게 된다.

내가 아빠에게 친근히 다가가지 못한다 할 수 있지만 아빠 역시 내가 친근히 다가갈 수 있는 빈틈을 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빠는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왜 우리는 다른 부녀지간처럼 친하지 않냐’고 물어보긴 너무 미안했다. 조금 우회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이가 생기면 어떤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아빠는 장난이 참 많다. 개그프로그램 보면서 같이 웃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아빠도 자식이 생기면 분명 재밌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으셨을까? 근데 내가 아빠에게 못 맞춰주는 것은 아닐까? 난 아빠의 대답이 궁금했다.

“음. 글쎄? 아빠다운 아빠가 되고 싶었어. 우리 아이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었지.”

아빠의 대답은 의외였다. 걸림돌이 되지 않는 아빠라니. 해석해본다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럼 지금 그대로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

이번 질문은 꽤 직접적이었다. 아빠의 답은 “Yes" 였다.

“딸이 있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들보다 딸이 더 살갑게구니 딸 키울 맛이 나지'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아빠의 대답은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이 있다면 내 인생의 흔적을 남긴 것 같아서 좋다고 하셨다. 나는 아빠의 흔적이었구나? 나라는 존재가 ‘나’라는 대상으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흔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딸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이 있나요?

이 질문에 아빠가 “아빠에게 애교도 많이 부리고 말도 많이 했으면 좋겠어” 라고 대답할 것이라 99% 확신했다. 그 전에도 아빠가 ‘다운이는 다른 딸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 다른 딸들은 아빠들을 살살 녹인다던데’ 라고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또 다시 예상을 빗나간 대답이 돌아왔다.

“잘 먹고 잘 살길 바란다. 그 말은 자기의 인생을 알아서 잘 펼치고 하고 싶은 꿈을 이루길 바란다는 말이야"

“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빠의 이전 대답에 난 예정에 없던 질문을 불쑥 던졌다.

“글쎄…. 사실 깊게 생각해 본적은 없어. 방관, 방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가 되고 싶냐, 뭘 하고 싶냐 물어보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네가 아빠에게 이야기 한 적 없잖아.”

슬쩍 아빠의 섭섭함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딸의 생활에 최대한 개입 안 하고 뒷받침만 해주겠다는 아빠의 생각에 ‘딸 역시도 도움의 손길이나 조언을 구하려고 한 적이 없다’는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우리 아빠는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건 사실이다. 내가 재수하던 시절에도 ‘이번에는 꼭 대학교 들어가라’는 말씀조차 한번 없었다. 잔소리 없는 아빠였다. 하지만 어떨 때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딸이 재수를 하는데도 어떻게 아빠가 열심히 하라는 격려 한마디 없으신지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때 내가 먼저 ‘아빠 열심히 할게요’하길 바라셨던 거다. 재수하는 딸한테 열심히 하라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행여 그게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걱정하셨던 거다.
그동안 내가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아빠도 다른 딸들처럼 내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셨던 것이다. 근데 난 바보처럼 아빠가 먼저 다가오길 기다렸으니….

좋아하는 사람: 아빠


유치원 앨범 첫 장 자기 소개 부분에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라고 아빠가 직접 써 넣으셨다.
 유치원 앨범 첫 장 자기 소개 부분에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라고 아빠가 직접 써 넣으셨다.
ⓒ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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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진은 유치원 앨범 앞 장에 자기소개를 기입한 부분이다. 당시 난 7살이었다. 몸무게는 16kg, 장래희망은 선생님(이건 내가 썼다. 당시 내 글씨다), 좋은 버릇 독서, 나쁜 버릇 편식,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다. 장래희망을 빼곤 모두 아빠가 썼다.

주목할 것은 좋아하는 사람에 아빠 스스로 아빠라 썼다는 점이다. 나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전혀 없는 걸로 봐선 아빠 마음대로 쓴 것이다. 아빠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 보다.

딸이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 아빠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 나이 때 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했다. 아빠는 은근히 샘나셨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에 남을 유치원 앨범에 떡허니 아빠 자신을 쓰신 것이 아닐까?

15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겠지? 딸이 누구보다 아빠를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왜 난 이제야 깨달은 걸까?

7살의 어린 아이에서 22살의 아가씨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고 앞으로도 아빠일 것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 이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지만 서서히 조금씩 표현해 나간다면 아빠도 내 진심을 알아주시겠지?

사랑한다 말하고 싶다. 내 愛인 아빠에게….
사랑해요. 아빠!

웃는 모습이 똑같죠? 눈 웃음은 우리 부녀의 트레이드마크랍니다!
▲ 아빠와 나 웃는 모습이 똑같죠? 눈 웃음은 우리 부녀의 트레이드마크랍니다!
ⓒ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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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녀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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