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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원이 아쉬운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단지
 십원이 아쉬운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단지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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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통장을 산다는 전단지가 좁은 골목의 벽에 붙어 있다. 좋은 일에 쓰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어떤 용도인지 궁금하여 전단지에 적혀 있는 전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처음엔 서툰 우리말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통장 산다는 전단지 보고 전화드렸다고 하자, "저 한국말 몰라요" 하는 말에 '그럼 어디 사람이냐?' 물었더니 '필리핀'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기를 바꿔 통화를 시도했다. 이번에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 통장 사신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네. 통장 삽니다."

-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하죠?"
"직접 저희가 가거나, 회수팀이 가고요. 혹은 퀵서비스로 거래합니다."

- 제게 법적인 불이익이 없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입출금통장용으로 사용합니다. 최소 10개 만들어 주셔야
하고요. 주민등록증 앞뒤 복사 해서 1부 주셔야 하고요."

- 10개나요?
"네. 은행은 저희가 지정해주고 문자로 알려드립니다. 이상한 생각하실 시 저희가 소송을 걸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본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내용상 불법 외국인 노동자의 통장으로 사용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러한 통장거래가 전단지 등의 오프라인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도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어, 차명계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전화통화를 통해 "통장거래가 불법으로 사용될 소지가 있으니 문제가 된다. 하지만 현행법상 불법임이 밝혀지기 전까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 있는 통장 사고 판다는 게시글들
 한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 있는 통장 사고 판다는 게시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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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 제물포지점의 김용환 부지점장(49)은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밝히며 "은행측으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느나 계좌 개설을 거부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아 어렵다"고 말했다. 현 제도하에선 은행이 사후에 "지급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김 부지점장은 통장을 파는 경우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절대로 통장을 팔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제일은행 제물포 지점 김용환(49) 부지점장 인터뷰
제일은행 제물포 지점 김용환 부지점장
 제일은행 제물포 지점 김용환 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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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장을 산다는 광고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데 대책은 있나?
"은행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여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의심이 되어 통장 발급을 거부하면 민원이 들어와 어려움이 많다."

- 은행 차원에서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본점에서 신규거래시 발급에 신중해야할 유형이 내려온다. 예를 들어 연세 많으시고 인터넷을 하기 어려워 보이시는 분이 온라인 거래를 같이 요구할 경우, 생활 능력이 없어 보이시는 분이 통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그래서 본사에서 넘어 온 유형에 가까운 분이 오시면 오랜 은행업무를 통해 얻어진 경험으로 의심을 하고 여러가지 질문을 하여 가급적 (대포통장이나 차명계좌로 사용 될 소지가 있는) 통장발급을 막으려고 하지만 강하게 항의할 경우 현실적으로 발급거부를 은행측으로서는 하기가 어렵다.

- 실제 그러한 비정상적 통장이 사용된 경우가 있는가?
"최근 대포통장 수사의뢰가 3건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통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럼 발급을 거부한 경우는 있는가?
"최근 한 농아가 통장을 만드려고 왔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메모지에 '제물포 지점 제일은행에서 통장을 발급'이라고 쓰여진 쪽지를 발견하고 거부를 한 적이 있다. 항의를 하긴 했지만 그냥 돌아갔다. 대포통장으로 쓰일 것이 확실시되어 거부한 경우이다."

- 대포통장 발견시 은행에서 취하는 제재 조치는 있나? 신용불량자로 등재된다거나 하는.
"그렇진 않다. 아까도 말했듯이 수사의뢰가 들어와야 우리도 알게 되고 '지급정지'를 내리는 정도이다. 따로 고발을 하거나 그렇진 않다. 이미 형사사건으로 수사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

- 은행에 근무하는 입장에서 대포통장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
"대포통장은 범죄에 쓰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통장을 몇 푼에 파는 것은, 범죄를 부추기고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할 소지가 있다. 그러니 적은 돈을 위해 절대 통장을 거래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은행도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요즘 여러 사건으로 힘이 든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태그:#대포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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