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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가득한 한옥의 입주 전 모습.
 풀이 가득한 한옥의 입주 전 모습.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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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엔 한 두 채의 버려진 집들이 있다. 주인은 도시로 떠나고 집만 혼자 남아 시골을 지킨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면 집은 스스로 삶을 정리하듯 무너져 내린다.

지붕에는 어느새 잡풀이 자란다. 마당엔 일년생 풀들이 자라다가 억새가 자라기 시작하고, 어느새 버드나무와 밤나무가 움을 튼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손을 탄 땅은 결코 야생의 산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다. 아마 그것은 인간이 선 자리가 자연에 남긴 흉터일 것이다.

귀농을 하려는 분과 함께 일을 하기로 했는데 숙소가 없어 새로운 사무실을 구하러 다녔다. 읍에도 가보고 오래된 우체국 건물도 가봤다. 그리고 시골집에도 가봤다. 한 할머니와 계약하기로 했는데 그날 저녁에 아들이 못하게 한다면 미안하다고 전화가 오기도 했다. 일주일간 구례 곳곳을 돌아다니라 맥이 풀릴쯤 할아버지 한 분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다.

"할아버지, 이 근처에 쓸 만한 집이 있나요?"
"우리 마을에 집 한 채가 있지. 가볼랑가?"
"그래요."

찢어진 문풍지와 토방까지 점령하려는 풀들의 기세가 엿보인다.
 찢어진 문풍지와 토방까지 점령하려는 풀들의 기세가 엿보인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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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만에 계약, 청소에 열흘

할아버지를 따라 오래된 한옥에 도착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슴 높이까지 자란 풀이 성을 지키는 병사마냥 집을 빙 둘러 열열한 기세로 위협하고 있었다. 

"이 집이 그래도 쓸만한 집이여…. 예전에 얼마나 좋았다고."

한옥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내가 보기에도 집은 좋아 보였다. 더욱이 우린 이미 지쳐 있었고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이 집을 계약하기로 하고 마을 이장님께 찾아갔다. 

이장님은 집주인에게 바로 연락해 주셨고 2시간 후에 순천에서 온 집주인과 만났다. 번잡하지만 집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진행된 끝에 1년씩 세를 주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집을 만나서 계약까지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 집을 얻은 것은 거의 충동계약에 가까웠다.

풀밭인지 마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풀밭인지 마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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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둘러보니 보일러도 새것처럼 빛이 났고, 주인 할아버지 말로는 전기가 끊겨 있으니 한전에 전화만 하면 될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이 꿈처럼 해결되었다.

그러나 집세를 입금한 다음 날 한전에 전화해보니 전기가 끊긴 지 오래되어 설치를 새로 해야 한다고 했다. 집주인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결국 들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들여서 전기도 넣었고 멀쩡해 보이던 보일러도 서비스 센터의 손길을 거쳤다. 이래저래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미 한 계약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느새 풀만 가득했던 집에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열흘간 집안 청소와 집수리를 끝내고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집 주변에 풀을 베는 것만도 3일이 걸렸다. 그 덕에 마을에는 풀을 태우는 연기가 3일 동안이나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풀을 모두 베어내고 청소하는데 열흘이 걸렸다. 청소 후 변화된 모습.
 풀을 모두 베어내고 청소하는데 열흘이 걸렸다. 청소 후 변화된 모습.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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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저기 청년들 뭐 하는 사람이래?"
"몰라."

동네 사람들은 돌담을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건넸다.

"어이 여기는 뭐할라고 왔는가?"
"네. 살라고 왔지요."
"뭐하고 살라고?"
"인터넷으로 농산물 직거래하는데요."
"그게 뭐 하는 것이여?"

이런 말들이 오갔지만  칠순을 넘긴 어른들에게 "인터넷으로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운영한다"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며칠이 지난밤, 마을 어른들이 계신 노인정에 떡을 해가지고 갔다. 그곳에는 마을 어른 일곱 분이 계셨다. 물론 마을이장님도 계셨다.

"아! 자네들이 우리 마을에 이사 온 새로운 사람들인가? 잘 왔네. 자네들 무슨 일을 하는가? 동네 사람들이 모두 궁금하게 생각하는데 이장인 내가 당최 설명할 길이 없어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중간마진을 최대한 줄여서 농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했더니 개인 홈페이지도 운영하는 이장님은 쉽게 이해를 했다.

"좋은 일인데… 그렇게 해서 먹고는 사나?"
"네. 밥은 먹고 삽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 동네는 별다른 특산물도 없고 팔 것도 없는데 걱정이구만…."

그 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고 마을 주민들의 평가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여에 걸친 탐색전 후, 마을 주민이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 중 하나가 끝이 났다.

"이제 늦었으니 가봐."
"네."

일어서는 우리에게 이장님의 마지막 당부가 이어졌다.

"마을에 도시 사람들이 한둘 와서 사는데, 동네 일이 있음 얼굴도 안보여. 자네들은 인상을 보니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구만…."
"네, 마을에 일이 있으면 꼭 나갈게요."

마루와 창호지가 있는 사무실. 무엇보다 햇살이 참 좋은 곳이다.
 마루와 창호지가 있는 사무실. 무엇보다 햇살이 참 좋은 곳이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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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빌딩과 한옥, 누가 더 행복한가

마을 회관을 나와 사무실로 가는데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마을 골목으로 불어오는 공기는 싸늘했지만 상쾌했다. 대문에 어설프게 달아 놓은 사무실 간판이 바람에 흔들린다. 처마 끝에 달아놓은 풍경이 요란한 바람에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멀리 지리산 왕시루봉이 어둠 속에서도 그 넓은 품으로 우리를 앉아주는 것 같았다. 시골 한옥을 사무실 삼아서 일해보겠다는 작은 꿈 하나가 또 이렇게 이루어졌다.

사무실 창으로 마을 정자와 지리산 끝자락이 보인다. 산과 들 사이로 섬진강이 흘러간다.
 사무실 창으로 마을 정자와 지리산 끝자락이 보인다. 산과 들 사이로 섬진강이 흘러간다.
ⓒ 조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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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을 벌어 멋진 집을 짓고 멋진 빌딩에서 멋진 옷을 입고 일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시골에서 빈 한옥에 사무실을 차려 일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더 행복한가는 모르겠다.

마루가 있는 사무실…. 낮이면 햇살이 쏟아져 졸기에 좋고, 그래서 일하다 힘들면 마루에 누워 낮잠 자기에도 좋은 집, 텃밭이 있어 상추와 오이, 마늘, 파를 키울 수 있는 집. 이런 집이 내가 하는 일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박새 한 마리가 사무실 처마에서 울어댄다. 뭐라고 하는 것일까?

"그려, 잘왔어 잉…."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참거래 농민장터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로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간전면 양천리로 이사했습니다.



태그:#시골집, #빈집,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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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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