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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굴러가요! 돌 굴러요! 어서 피하세요!”


산길을 오르고 있는데 위쪽에서 몇 사람의 다급한 외침이 귀청을 울렸다. 밑에서 오르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위쪽을 바라보았다. 경사가 급한 등산로 위에서 커다란 돌 한 개가 툭 툭 부딪치며 날아오고 있었다.

 

“앗! 돌이다!”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한두 걸음을 옆으로 옮기는 순간 방금 내가 서 있던 곳으로 어른 머리만큼이나 큰 돌이 날리듯 밑으로 굴러 내려갔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보다 5~6미터쯤 위쪽을 오르고 있던 남자가 다리를 감싸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다쳤습니까?”

 

내가 그의 옆으로 다가갔을 때 그의 일행이 감싸고 있던 다리의 옷을 위로 올렸다. 피부가 약간 벗겨지고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굴러온 돌이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그 등산객도 날아오는 돌을 보고 잽싸게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허벅지를 다친 것이었다. 그는 그 돌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다리가 부러졌을 것이라며 그만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지만, 다리에 상당한 통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즐거운 겨울산행

 

12월 4일 충북 보은에 있는 구병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한 우리는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상주 방향으로 뚫린 새로운 도로를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왼편으로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진 멋진 산이 바라보인다.

 

“저 산이 구병산인 것 같은데, 우리가 지나쳐 온 것 아냐?”


속리산 입구 들머리를 지난 후였다. 다음 나들목으로 나오며 물으니 앞으로 곧장 가면 적암휴게소가 나온다고 한다. 그곳이 산행 기점이라는 것이었다.

 


얼마 달리지 않아 적암휴게소가 나타났다. 휴게소에는 금방 도착한 듯한 두 대의 관광버스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휴게소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구병산 입구 오른쪽에는 정말 떡시루처럼 생긴 시루봉이 아침 햇살에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을 입구 넓은 마당에 차를 세우고 곧장 마을 안길을 지나 골짜기로 향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골짜기 길은 공기가 싸늘했다. 모두 옷깃을 여미며 천천히 걸었다. 그때 뒤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몰려왔다. 적암휴게소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었다.

 

골짜기 길에서 왼편 길로 접어드는 등산로 입구에 구병산과 853봉 입구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그 표지판 위에는 수많은 산악회 리본들이 매달려 차가운 바람에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길은 아직 평탄하고 경사도 완만했지만 우리는 힘을 조절하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 잠깐 쉬는 사이 한 떼의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대구에서 온 남녀 산악회원들이었다.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관광버스 두 대로 백여 명이 함께 왔다는 것이었다.

 

“언니야! 빨리 온나!”
“오빠야! 와 그리 빨리 올라 가노? 내사 몬 따라가겠다 아이가.”
“늬는 평소엔 힘이 넘쳤다 아이가, 그칸데 오늘은 웬 죽는 소리고?”

 

추운 겨울인데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다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렇게 즐거운 백여 명의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로 산골짜기가 온통 소란스러워진다. 우리도 잠깐 쉬었다가 나서니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었다.

 


옹달샘의 전설

 

조금 더 올라가자 정수암지 옹달샘 터가 나타났는데 겨울 가뭄 때문인지 물은 말라 있었다. 안내문에는 이 옹달샘의 전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정수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수행하던 승려들이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속세로 내려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 옹달샘 때문이었다. 옹달샘 물을 마시면 정력이 솟아나기 때문에 그 넘치는 정력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속세로 내려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옹달샘 물을 한 번 마실 때마다 생명이 7일 간씩 연장되기 때문에 매주 이 샘물을 마시면 영원히 살 수 있으니 다음 주에도 또 오시라는 웃기는 안내문이었다.

 

등산로는 이곳에서 두 길로 갈렸다. 왼쪽 길은 구병산 정상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편 길은 853봉을 거쳐 능선 길을 타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오른편 길을 택했다.

 

고도가 높아지자 산 그림자에 가렸던 따뜻한 햇볕이 등 뒤에 느껴지며 이마에 땀이 흐른다. 그런데 산 중턱쯤 올라서자 나뭇가지와 가랑잎 위에 하얀 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양이 점점 많아졌다. 산길은 가팔랐고 크고 작은 수많은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렇게 올라 능선이 저만큼 보이는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앞서 올라가던 어느 등산객의 발길에 걸린 돌멩이가 굴러 내린 것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만일 그 돌멩이가 어느 등산객의 가슴이나 머리에 정통으로 부딪쳤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돌멩이 건드리지 말고 조심들 하그라!”


리더인 듯한 남자 한 사람이 돌이 구르지 않게 조심하도록 당부하는 말이었다. 모두 조심한 때문인지 능선에 오를 때까지 더 이상 돌이 굴러 내리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능선에 올라서자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능선과 북쪽의 산자락은 온통 새하얀 눈이 제법 두껍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는 걸, 아이젠을 착용해야지.”


올라선 능선에서 853봉과 구병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 길은 위험한 바위길이었다. 바위 밑 안내판에는 위험한 능선 길을 피하여 바로 아래 북쪽으로 난 우회 길을 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길은 두텁게 깔린 눈길이었던 것이다.

 

겨울산행에는 아이젠이 필수장비

 

우리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는 동안 다른 등산팀들은 의논이 분분했다. 아이젠을 준비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결국 그들은 아이젠을 가져온 십여 명만 정상을 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우리는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정상 쪽으로 향했다.

 

“어! 어! 어! 조심해! 밧줄 꼭 붙잡고.”


암벽을 내려오는 일행을 바라보다가 나도 몰래 터져 나온 외침이었다, 밧줄을 붙잡고 내려오던 일행 한 사람이 바위길에 미끄러진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밧줄을 놓치지 않아서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853봉 뒷길이었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능선의 북쪽 길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곳곳에 미끄럽고 위험한 암벽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눈이 얼어붙어 있어서 그 밧줄만으로는 위험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바위길을 조심조심 오르고 내리며 어렵사리 정상에 도착하니 시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북쪽 건너편에 솟아 있는 속리산의 연봉들이며 주변의 산과 보은의 넓지 않은 들녘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구병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구병산의 산줄기들과 바위봉우리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이 구병산 정말 멋진 산이구먼.”


바위길에 미끄러져 진땀을 흘렸던 일행이 속리산 쪽을 바라보며 감탄을 한다. 위험한 고비를 너머서 정상에 오른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충북 알프스로 불리는 구병산의 정상은 해발 876 미터였다.

 

“그래서 예부터 저 속리산 천황봉을 지아비산, 이 구병산을 지어미산, 금적산을 아들산이라 하여 삼산이라고 불렀다지 않던가?”
“그래, 그럼 그 아들산은 어떤 산이지?”

 

그러나 아쉽게도 금적산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상에 주변 산 지도를 비치하여 금적산도 알아볼 수 있게 했으면 좋겠구먼.”


지아비와 지어미, 그리고 아들산과 더불어 삼산이라는데 아들 산을 알아볼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 채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와 하산 길로 나섰다.

 

우리가 정상에서 내려오자 조금 전까지 능선의 하산 길 입구에서 점심을 먹으며 시끌벅적하던 다른 등산객들도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정수암지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곧장 오른 등산객들이었다.

 

겨울 산길에서는 굴러 내리는 돌 조심해야

 

그들과 뒤섞여 내려오는 산길은 남향의 양지여서 눈은 없었지만 경사가 급하고 역시 크고 작은 돌과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길이었다. 그런 급경사 길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런 길을 한 30분쯤 내려왔을까? 그때였다.

 

“돌 굴러가요, 조심하세요!”


또 돌이라니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이번에도 제법 큼직한 돌이 위에서 굴러 내리고 있었다. 급경사 길이어서 굴러 내리는 돌은 걸어 내려가고 있는 등산객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은 위험한 순간이었다.

 

“아! 아악!”


그 돌멩이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소린가, 드디어 사고가 났단 말인가. 깜짝 놀라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저만큼 여성 등산객 하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짧은 순간이 지난 후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붙잡아 일으켰다.

 

다행히 그녀는 다친 곳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돌멩이를 바라보며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은 것이었다. 그녀 외에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조심들 하세요. 돌 굴러 내리지 않게.”

 

우리 일행 한 사람이 누구랄 것 없이 위쪽에서 뒤따라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돌 조심을 경고했다. 그들도 서로서로 발길에 돌이 굴러 내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도 그랬는데, 내려올 때도 돌 때문에 또 놀랐네 그려,”

“그러게 말예요? 요즘 같은 겨울 산행뿐만 아니라, 특히 봄철 산행은 더욱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모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조심 내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쯤 내려오자 너덜 돌밭길이 끝이 났다.

 

적암 마을 앞 언덕에 이르자 뒤편에 솟아 있는 시루봉 아래 자리 잡은 마을풍경이 평화롭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주차해 놓은 승용차 가까이 이르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할머니 한 분이 곶감을 내밀며 맛을 보란다. 근처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할머니에게서 산 곶감이 달콤하게 피로를 풀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구병산, #적암마을, #아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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