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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칭찬이 좋다고 한다. 칭찬을 잘 하라고 한다. 나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칭찬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칭찬 첨삭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칭찬이 야단보다 더 지독한 독이 되기도 한다. 아이의 성장을 망치고, 공부하려는 의욕을 망치며, 삶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칭찬은 잘하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너 참 착하구나!”
“너 참 멋지다.”
“참 잘 했어요.”
“넌 정말 똑똑하구나!”


우리가 흔히 하는 칭찬들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칭찬을 많이 하면 아이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이러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들 효원이는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다. 요즘은 좀 줄었지만 한 때는 하루 두세 시간씩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했다. 즐겨 그릴 뿐 아니라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그림도 아주 잘 그렸다. 표현력도 좋고 색감도 뛰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칭찬했다.

 

“효원이는 참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항상 듬뿍듬뿍 칭찬을 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그림을 마음껏 그리도록 장려하기도 했다. 주위가 지저분해지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머, 어쩌면 이렇게 색을 잘 쓰니! 정말 멋지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칭찬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만 그리라고 해도 그림만 그리고 놀더니, 이제는 그리라고 기회를 주고 도구를 다 갖추어 주어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림 그리기를 피하려는 기색이 너무나 역력해서 진지하게 아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효원아! 요즘엔 왜 그림 그리기 싫어해?”
“그림 그리기가 두려워!”
“아니, 왜 두려워?”
“엄마 아빠가 내가 그림 잘 그린다고 자꾸 칭찬하니까 부담스러워서 그래.”
“칭찬해 주는데 왜 부담스러워?”
“나는 그림을 잘 그릴 때도 있지만, 못 그릴 때도 있어. 그런데 엄마 아빠는 항상 잘 그렸다고 칭찬만 해.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

그 순간 우리 부부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잘 한다’, ‘멋지다’라고 했던 칭찬이 아이에게 도움이 아니라 독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우리는 크게 반성하고 효원이 그림을 보고 내 보이는 반응을 바꿨다.
  
“어머! 효원이 그림 속에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구나! 이 그림에 숨어 있는 이야기 좀 해줄래?”


그러자 아이는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 놓았다.

 

“응, 여기서 여우가 들어와서…… 이쪽으로 하수도가 나 있는 거야…… 그리고 이쪽은 생쥐들이 사는 방이고…….”

아이는 부담 없이 자신이 그린 그림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풍경은 연필로 그렸는데 색깔은 전체적으로 빨간색만 있네. 왜 이렇게 그렸을까 굉장히 궁금한 걸?”
“저녁이야. 노을이 지고 있어서 건물들은 형체만 보이고 온 세상이 노을로 물들고 있어.”
“야! 효원이가 참 독특한 생각을 했구나!”

 

우리는 그 후로 평가를 내리는 말을 되도록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잘했다”, “멋지다”, “착하다”는 말이 결코 아이에게 칭찬으로 다가가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평가하는 칭찬은 칭찬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칭찬의 말을 칭찬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부담감으로 받아들일까? 한 아이가 농구대에 골을 넣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자 선생님이나 부모가 이렇게 칭찬한다.


“야! 너 마치 농구 선수처럼 잘 넣는 걸!”


그러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이 정말 농구선수처럼 잘 한다고 생각할까? 아닐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가 농구 선수처럼 농구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농구 선수처럼 잘 하지도 못한다.

 

‘난 그렇게 잘 하지 못하는데……. 내가 다음에 골을 넣지 못하면 실망할 거야. 부담스러워.’

 

숙제를 잘 해 왔다고 하자.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칭찬을 해 준다.

“정말 숙제 내용이 충실하군. 잘했어.”

 

그러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물론 기분이 어느 정도 좋은 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다음번에 숙제를 하려고 하면 어떨까? 그 전처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실제 해봤는데 그 전처럼 잘 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 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잘 하지 못해서 선생님이 실망하실 거야. 어떻게 하지?’

 

이처럼 ‘잘했다’, ‘착하다’라는 말은 결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지 못한다. 언제든지 그 말이 거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영원히 잘하지 못하고, 언제나 착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부담스럽다.

 

이런 평가에 익숙한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누군가가 ‘잘했다, 착하다, 멋지다’고 해 주어야 자신이 ‘잘하고, 착하고, 멋진’ 아이가 된다고 생각한다. 평가에 민감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칭찬할 때는 ‘평가’를 내리지 않는 칭찬을 해야 한다.

 

“청소를 하다니 정말 착하구나!”


이 말은 철저히 엄마가 평가해주는 말이다. 평가를 이미 내렸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청소를 도와주면 착하지만, 도와주지 않으면 나쁜 아이가 되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칭찬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네가 청소를 도와주니 엄마가 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네. 고마워!”

 

이 말에는 평가가 전혀 없다. 그저 엄마의 마음만 들어 있을 뿐이다. 엄마는 아이가 자신의 일손을 덜게 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면 아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엄마를 도와주니 엄마가 고마워하네. 그래 난 착한 아이야.’

 

이 경우 아이가 엄마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아이가 되는 건 아니다. 그냥 도와주어서 엄마가 고마워할 따름이다. 그리고 평가는 아이 마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넌 정말 공부를 잘 하는구나!”라는 말 대신, “네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참 흐뭇하구나”라고 해야 진짜 칭찬이다. “사내 녀석이 용기를 내서 말하다니 정말 멋지다”라는 말 대신, “용기를 내기 힘들었을 텐데 말해주니 아빠는 정말 기쁘구나”라고 해야 진짜 칭찬이다.


평가자가 아니라 독자가 되라

 

평가를 내리지 않은 채 일이 이루어진 과정 자체, 아이의 마음 그 자체에 주목해 주어야 진짜 칭찬이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칭찬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이런 말을 쓴다.


“참 잘 썼다.” 
“논리적이다.” 
“창의적이다.” 
“구성이 참 좋다.” 
“예를 잘 들었다.”


모두 칭찬이다. 그런데 모두 ‘평가’다. 철저히 선생님이 평가하는 위치에 서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말들이다. 다만 그것이 긍정적이라는 점이 지적과 다를 뿐이다. 바로 이런 말들이 빨간 펜식 시선이다. 빨간 펜을 버리고 칭찬 첨삭을 하라는 것은 지적을 하지 말고, 좋은 말을 많이 해주라는 뜻이 아니다.


빨간 펜을 버리고 칭찬 첨삭을 하라 함은 ‘평가자’의 눈으로 아이들의 글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즉, 칭찬을 하더라도 평가자가 아니라, 아이 글을 읽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아이에게 주는 것이 바로 칭찬 첨삭의 핵심이다.

 

내가 만약 왕따가 된다면 기가 많이 죽고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 것 같다. 그리고 나와 제일 친한 친구들이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따돌린다면 친구들이 너무나 미울 것 같다. 그리고 이 나이에 왕따가 된다는 생각에 쪽 팔릴 것 같다. 그리고 화장실도 혼자 가야 돼고, 급식실에서 밥도 혼자 먹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우리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친구가 갑자기 안 돼 보인다. 그 친구에게 잘 해주어야겠다.

 

‘내가 만약 왕따가 된다면’을 주제로 은진이가 쓴 글이다. 아래는 이 글을 읽고 일반적으로 하는 칭찬이다.
  
왕따가 되면 어떨지 구체적으로 잘 생각했구나. 특히 왕따를 당하고 있는 친구를 생각하다니 참 착하다.

 

여기에는 ‘구체적이고, 다른 친구를 생각했다’는 핵심적 요소가 정확하게 들어가 있다. 문제는 ‘잘 생각했구나!’와 ‘참 착하다’는 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평가자의 눈’으로 아이의 글을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독자의 시선, 그냥 따뜻한 애정을 지니고 글을 보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어떨까?

 

왕따가 되면 어떨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니까 정말 외롭고 서럽겠다는 생각이 들지? 네가 이 글을 통해 왕따를 당하는 친구의 마음을 이해한 것 같아 선생님은 너무 반갑다.
   
이런 첨삭이 진짜 칭찬 첨삭이다. 선생님이라는 지위, 부모님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아이 글을 있는 그대로 읽고, 독자로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야 말로 진짜 칭찬 첨삭이다. 위와 같은 칭찬을 받으면 아이의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 나는 왕따 당하는 친구 마음도 이해하는 따뜻한 사람이야. 나는 정말 멋져!”


태그:#글쓰기, #칭찬, #첨삭, #논술,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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