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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 열린 제4회 우양탈북포럼.
 지난 11월 30일 열린 제4회 우양탈북포럼.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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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꼭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면접만 보고 이메일 발송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러다 취업은 고사하고 백수 생활을 면치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겁도 났죠."

취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다. 하지만 ○○대학교에 재학 중인 전지현씨(가명)에게는 남다른 고민이 하나 더 있다. 새터민(북한 탈주민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새터민 대학생들은 11월 30일 열린 제4회 우양탈북포럼에서 학업과 취업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비교적 솔직하게 풀어냈다. '새터민 대학생의 사회진출을 위한 민간 부문에서의 역할과 지지방향 모색'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 발표자로 나선 학생은 송연경씨와 전지현씨.

[사례 1] 먼저 '사회'를 알고 대학에 가다

전지현씨는 아주 어린 나이에 '새터'를 찾았다. 그래서인지 "하나원(새터민의 사회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퇴소하기만 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실력도 떨어지는 상태에서 지원했다 탈락"을 맛보면서 "취업해서 돈이나 많이 벌어야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포럼 사회를 맡은 박윤숙 교수
 포럼 사회를 맡은 박윤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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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쉽지 않았다. "북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력이라고 해봐야 서너 줄밖에 되지 않는" 전 씨를 반기는 회사는 드물었다. "이메일을 발송했는데 반응도 별로 없고, 정작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간신히 입사한 회사, 그 곳에서 전씨는 '고졸'의 설움을 실감했다. "월급 타는 날이면 (대졸자와) 엄청나게 차이 나는 월급통장 명세"를 확인하면서 부터였다.

"고졸 학력인 제게는 보잘것없는 소액 월급밖에 돌아오지 않더군요. 3달만 지나면 월급 인상을 해주겠다던 사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는 것입니다. 그때 사장이 이래요. 탈북자가 어디 이런 좋은 환경의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겠느냐고. 다 자기가 한 사람 구한다는 입장에서 입사시킨 거라고. 기가 막히고 배신감에 이놈의 회사를 확 그냥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죠."

"탈북자라는 것을, 더구나 고학력 시대에 뒤떨어진 낙후된 사람이란 것"을 절감한 전씨는 다시 대학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합격 통지서를 받았고, 전씨는 "조금은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대학공부를 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례 2] "새터민들의 피나는 노력이 우선"

"북에서 초등학교 교사였어요. 교대를 졸업했죠. 이쪽에서도 전공을 살려 교사를 계속 하고 싶었죠. 임용고시를 보려 했는데… 주체교육을 받은 네가 학생들에게 뭘 가르칠 거냐, 그래서 안 된다… 꿈을 접었지요. 아쉬웠어요."

○○대학교에 다니는 송연경씨(가명)는 앞서 전씨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송씨는 지금이야 "어떨 때는 나이를 속여 미팅한 적도 있다"며 웃었지만, '나이'로 인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외래어가 아닌 한국말인데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교수님 말씀"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송씨를 "굉장히 놀라게 만든 것"은 영어였다.

"북한에서야 러시아어만 배웠으니까, 영어는 이쪽에서 처음 접했어요. 알파벳도 하나도 모르고 ABC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대학 들어가 수업 따라가랴, 영어 공부하랴, 힘들었어요. 대학 다닐 의욕마저 상실하게 만든 큰 걸림돌이었지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새터민들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눈길"이 걸림돌이 됐다. 송씨는 "자격증을 많이 땄는데도, 계속 떨어지더라"고 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북한 사람이라고 쓰지 않았더니, 바로 면접 연락이 왔다고 한다. 면접 과정에서 '이상한 말투'의 연유를 알게 된 면접관은 깜짝 놀라면서 "만약 미리 알게 됐더라면 이렇게 면접을 보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취업에 성공한 송씨는 먼저 "앞서 달리는 한국 대학생들과 격차를 줄이려면 새터민 학생들의 피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력하는 자에게는 좋은 일만 생기게 마련이다. 절대 무섭지 않다, 두려워하지 마라"면서 개인적인 노력이 따라야만 '무한 경쟁 새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성프란시스대학 김동훈 교수(왼쪽)와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이영석 교육훈련팀장.
 성프란시스대학 김동훈 교수(왼쪽)와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이영석 교육훈련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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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가르쳐 달라

이날 포럼에 참여한 새터민 대학생들은 '애로사항'을 풀어놓기는 했지만, 과거와 같은 특혜'를 요구하거나 바라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이 요구한 것은 '정착에 필요한 교육'이었다. 포럼 말미, 질의응답 시간에 한 새터민 대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터민들에게 도움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먼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에 대해 부모들은 우리보다 더 무지하다. 경제 자체를 모르니 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신다.

도대체 돈을 모아서 뭘 하겠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 증권도, 보험도 하나도 없다. 돈 백 만원 모아도, 천 만원 모아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다. 경제 원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터민 1만명 시대, 이제 특혜의 시대 역시 지나가고 있음을, 젊은 새터민들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 그리고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터민 1만명 시대!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해야
"특별대우보다는 냉정한 현실 알려줘야"

정의승 우양재단 이사장
 정의승 우양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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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터민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이 날 포럼에서는 강서구 ○○동에 거주하고 있는 새터민 현황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김성모 ○○ 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현재 관내 거주 새터민이 "10월 말 기준으로 259세대 450명으로 그중 여성이 295명, 남성이 155명이며, 만약 2세까지 포함할 경우 500여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새터민 대학생 분포도 다양해지고 있다. 포럼에서 노희정 우양재단 새터민·이주민 지원사업팀장은 새터민의 64.7%가 거주하는 서울·경인 지역 34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3년까지는 연세대와 한국외국어대에 새터민 대학생이 집중되어 있다면, 2004년부터는 중앙대, 한양대, 숙명여대, 서강대, 숭실대, 성균관대, 한체대 등으로 골고루 분포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정부 대책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포럼에 참석한 전승호 통일부 정착지원팀 팀장은 "과거 총액 개념으로 1세대 기준 3640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던 정착 기본금은 이제 6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전 팀장은 이는 "노력하는 새터민들에게는 지원을, 그렇지 않은 새터민들에게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기존 기본금 지원에서 장려금 지원 중심으로 제도가 바뀐 결과"라며 "사회 복지 부문에서도 일반 영세민과의 형평성 문제를 감안하여 특례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 날 포럼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 지원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 우양재단 노희정 팀장은 새터민 취업 문제에 대해 "새터민을 채용한 사업장에 급여를 지원하는 고용지원금으로 기업체를 유인하기보다는 새터민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편견을 없앨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이영석 교육훈련팀장은 "우리도 힘든데 왜 그 사람들을 특별 대우해줘야 하느냐는 의견이 많다"면서 "새터민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이 특권의식을 버릴 수 있도록 냉정한 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또한 "새터민 출신 대기업 근로자들에게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가 '후배들을 공채로 들어오게 해 달라는 것'인데, 특채로 들어오면 특권 의식을 갖는 경우가 많아 관계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라며 "너무 뜨거운 사랑은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는 만큼, 새터민들이 냉정한 눈높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생존 본능을 더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훈 성프란시스대학 교수는 포럼에서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청소년들의 취업 현황과 문제점을 소개하면서 "지금 그들(동독 청소년)보다 훨씬 적은 수의 새터민 청소년들도 제대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적응할 수 없다면 통일이 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불 보듯 뻔하다"면서 민관차원의 다양한 협력과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젊은 새터민들이 얼마만큼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여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는 앞으로 통일 공간에서 나타날 북한지역 청소년들 취업문제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우양재단이 주최한 이날 포럼은 세계사이버대학교 박윤숙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오마이뉴스, 하나은행 동교동 지점 등이 후원했다.


태그:#새터민, #우양탈북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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