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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를 다 먹지도 않았는데, 다시 들어 온 군만두. 부추와 고추를 썰어 넣어 매콤한 맛이 났다.
▲ 군만두 대령이요 한 접시를 다 먹지도 않았는데, 다시 들어 온 군만두. 부추와 고추를 썰어 넣어 매콤한 맛이 났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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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추워, 안 맛있어! 더워, 맛있어!"

벌써 세 번째, 접시에 가득 군만두를 들고 온 호명씨는 비워지지 않은 접시를 보면서 한 소리해 댔다. 식으면 맛없으니, 따뜻해서 맛있을 때 먹으라는 말이었다. 어법으로 따지자면 엉터리 한국어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해낸 그녀의 호통에 난 그저 "아, 네에"하며 군만두를 한 입에 넣었다.

접시를 다시 들고 오기 전에 먹었던 만두는 약간 짜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 만두는 잘근 씹히는 고기와 부추 맛과 함께 혀끝을 자극하는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손으로 만든 음식이다 보니, 간이 적당히 배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호명씨는 일하던 공장에서 두 달치 월급을 못 받고 우리 쉼터에서 생활한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처음 쉼터에 왔을 때, 말벗이 될 만한 사람이 없어 전화로 중국어 통역을 불러 쉼터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호명씨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중국어로 혼자 먼저 쏟아붓고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식이라, 대화가 참 힘들었다.

그래도 쉼터에 묵고 있는 사람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데다, 억척스럽고 싹싹함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호명씨는 쉼터 식구들과 쉽게 어울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겨우 일주일 조금 넘는 기간에 말하는 방식이 변해 있었다. 예전처럼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중국어로 쏟아붓던 방식이 아니라, 한국어를 섞어 쓰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을 보며, 말이 금세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호명씨가 어쩐 일로 만두를 만드나 싶어 주방에 들러봤다. 살림을 해 봤던 주부의 솜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실직하여 쉼터에 숙식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벌써 몇 접시씩 돌린 것 같은데, 잘게 썰려 도마 위에 소복이 쌓여 있는 부추는 물기를 빼기 위해서인지 한쪽으로 몰려 기울어져 있었고, 밀가루 반죽은 아직도 만들 만두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한 쪽에선 후라이팬에서 삶고, 한 쪽에선 삶은 만두를 굽고 있다.
▲ 중국식 군만두 요리 중 한 쪽에선 후라이팬에서 삶고, 한 쪽에선 삶은 만두를 굽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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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드문 나로서는 후라이팬에서 삶고 나서, 다시 굽는 방법으로 만드는 만두를 보며, 간단치 않은 요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호명씨는 방금 전에 사무실에 군만두 접시를 놓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굳은 반죽이 허옇게 달라붙은 손에 만두를 집고 코 밑에 갖다 대는 통에 다시 한 번 한 입 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일요일, 충치를 제거하는 등 치과 치료를 받을 때만 해도 쉼터 식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제일 나중에 치료를 받았던 호명씨와는 사뭇 다른 활달함과 밝은 성격을 주방에서 볼 수 있었다.

나이로만 치면 호명씨나 나나 비슷한 연배지만,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은 친동생이나 조카뻘만한 나이일 것이다. 사실 주방에서 군만두를 만들며 활짝 웃는 그녀가 정작 먹이고 싶어 하는 이들은 아마도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자식들일지 모른다. 후한 만두 인심을 쓰며, 주말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밀린 월급 받지 못해 애타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대접하며 그녀는 웃고 있었다.

진한 그리움을 속에 담고 자신의 동생 같고 조카 같은 이들에게 만두는 권하는 그녀 앞에서 차마 '나 배불러서 못 먹어요'라 말하지 못하고 또 한 입 덥석 먹어야 했다. 한 입 베물고, 역시 만두는 더운 만두가 제격이라고 손을 치겨 주자, 호명은 '내일 또 한다'고 답을 했다.


태그:#군만두, #이주노동자,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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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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