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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병사적지 순례

함양 서상중고등학교 앞에 마련되어 있다.
▲ 문태수 의병장의 흉상 함양 서상중고등학교 앞에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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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의병정신선양회(회장 윤우)로부터 의병사적지 정기순례 통문을 받았다. 사실 나는 요즘 한말 호남지역 의병 전적지 답사와 집필로 매우 바쁘지만 어찌 이 순례에 불참할 수 있으랴.

이번 정기순례는 경상남도 우도 지역 의병사적지 순례로 의병장 문태수, 전성범, 노응규, 임란 때 의병장 곽재우, 최초 여성의병 논개의 묘, 임란 직전의 대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서원, 그리고 문익점 선생의 목화시배지, 의병의 한의 서린 진주성 등으로 자못 기대가 컸다.

11월 10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내가 사는 강원도 안흥에서 원주로, 다시 경기도 오산 나들목으로 가서 하행하는 순례 버스에 올랐다. 의병정신선양회 윤우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들께서 매우 반갑게 맞아주셨다. 버스 안에는 낯익은 분들이 많았다.

지난해 키르키즈탄에서 국적을 취득한 허게오르기씨도 손을 내밀었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는 더 반갑다는데, 내 고향 왕산 의병장 후손을 순례 버스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가. 의병정신선양회 윤우 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의병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성 최초 의병장 논개의 묘소, 뒤는 부군 최경회 장군의 묘소다.
▲ 논개의 묘소 여성 최초 의병장 논개의 묘소, 뒤는 부군 최경회 장군의 묘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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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義兵)'이란 나라의 정규군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한 민간인 군인(일종의 게릴라)으로, 조선조 선조 임금 때 임진왜란 침략(1592~1598)과 근대 재침략(1894~1945) 때 우리 의병은 나라를 지키고 찾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의병은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백성의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의연히 일어선 의로운 분들이었다.

당초부터 승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선 것도 아니었다. 일찍이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은 '의병정신이 곧 민족정신이요, 민족혼'이라고 말씀하셨다. 한말의 근대 의병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효시로 무장투쟁의 선봉이었고, 훗날 독립군과 의열단, 조선의용대, 광복군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노응규 의병장과 함양의 여러 독립투사를 모신 사당이다.
▲ 신암사(愼菴祠) 노응규 의병장과 함양의 여러 독립투사를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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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정한론(征韓論)'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

두 시간 뒤, 순례버스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곧 덕유산과 지리산 비경이 펼쳐졌다. 늦가을의 경치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는 말을 귀에 익도록 듣고 배우며 자랐지만, 그 말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였다. 오히려 엠파이어스테이트와 같은 초고층으로 마천루를 이룬 미국이나 영국의 타워브리지, 프랑스의 에펠탑을 동경하면서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이 넓은지 좁은지 모르고 산다. 나도 지난 60여 년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 남의 얘기만 듣고, 남이 사는 나라가 마냥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최근 십수 년 동안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 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나라를 둘러볼수록 내 나라 한반도가 아기자기하면서도 매우 아름답고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일본을 몇 차례 기행하고는 왜 걸핏하면 일본이 실제로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정한론(征韓論)’을 버리지 못하는지 그 까닭을 알았다. 일본의 산하는 어딘가 거무튀튀했다. 거기다가 걸핏하면 지진이요, 태풍으로 애써 모아놓고 세워 둔 재화나 건물들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린다. 좁은 섬나라에 1억이 넘는 사람이 살기에는 어딘가 좁다.

일본에 정통한 이에 따르면, “지금은 일본이 선진국으로 부를 누리고 있지만 에도(江戶) 시대까지도 먹을 게 부족하여 자식이 많은 집에서는 똑똑한 자식은 거둬먹였지만 그렇지 못한 자식은 버렸다”고 할 만큼 식량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지난날 수시로 우리나라 삼남지방까지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은 까닭이라고 했다. 거기다가 지리적으로 볼 때 드넓은 대륙으로 진출하자면 반도인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400년 전 임진왜란이 그랬고, 한 세기 전 한일병탄이 그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정은 일본 침략을 대비치 못하고 일군에게 쫓기기에 바빴는데, 이 땅의 백성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나라와 국토를 지켰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는 오늘의 우리들은 일본을 비롯한 외적의 침략에 나라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버린 순국선열의 영전에 백배를 드려도 모자랄 것이다.

문익점의 목화시배지에서 베를 짜는 전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베짜기 재현 문익점의 목화시배지에서 베를 짜는 전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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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국권을 빼앗기는 불행이 없기를

낮 12시, 우리 순례단은 함양 서상나들목을 빠져나와 서상중고등학교 앞에 마련된 구한말 문태수 의병장 흉상과 의재사(義齋祠)에서 깊은 묵념을 드리고 헌화를 하였다. 함양군문화재 이지현 해설사는 덕유산 호랑이 문태수 장군이 일제에 매수된 주막집 주모가 탄 독약이 든 술을 마시고 쓰러진 것을 일제의 끄나풀들이 장군의 발을 도끼로 찍어 체포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창자가 찢어지듯 아팠다.

점심을 서둘러 먹은 뒤, 여성 최초의 의병장 논개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논개 묘소 바로 위에는 논개의 지아비였던 임란 때 용장 최경회 장군의 무덤이 있었다. 윤우 회장은 ‘논개 선열’ 또는 ‘의병장 논개’라고 불러야 한다며  ‘의기(義妓)’라는 칭호는 거둬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남명 조식 선생의 서원이다.
▲ 덕천서원 남명 조식 선생의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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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은 온통 감으로 뒤덮였다. 전국에서 가장 품질 좋고 값싼 곶감이란다.
▲ 감 산청은 온통 감으로 뒤덮였다. 전국에서 가장 품질 좋고 값싼 곶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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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노응규 의병장과 함양의 여러 독립투사를 모신 신암사(愼菴祠)를 참배하고서는 거기서 가까운 문익점의 목화시배지로 갔다. 참 오랜만에 목화의 재배에서 베를 짜는 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킨 장군이시다.
▲ 김시민 장군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킨 장군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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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아름다운 고장 산청을 가로질러 3시 30분 남명기념관에 도착하였다. 산청은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한 선비의 고장으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산청군 문화관광 안승필 해설사가 아주 재미있게 소개했다. 5시 남명 선생의 덕천서원을 둘러본 뒤 지리산 천왕봉 아랫마을인 중산리로 가서 산나물 비빔밥으로 만찬을 들고는 1박하였다.

이튿날 오전 9시 30분, 진주성을 둘러본 뒤 12시에는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을 모신 의령의 충익사(忠翼祠) 사당을 참배하고는 곧장 귀로에 올랐다. 이번 의병정신선양회 의병사적지 제21차 정기 순례는 1박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경남의 깊은 계곡의 산수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을 더듬는 매우 귀한 순례였다.

의병정신선양회 순례단 일행은 순국순열의 유족이나 역사학도로 답사에 임하는 자세가 매우 진지하였다. 이런 역사탐방이 들불처럼 일어나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움과 나라사랑, 국토사랑이 넘치는 국민들로, 다시는 우리나라가 국권을 빼앗기는 불행이 없기를 나는 순례 기간 내내 빌었다.

논개의 충혼이 서린 진주 남강 위의 누각이다.
▲ 촉석루 논개의 충혼이 서린 진주 남강 위의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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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든 바위다.
▲ 의암 선열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든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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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장군 곽재우와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충익사 홍의장군 곽재우와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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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복회보 제290호(2007. 11. 27.)에도 실려 있습니다.



태그:#국토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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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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