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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테인의 '행복한 눈물'
 로이 리히텐슈테인의 '행복한 눈물'
ⓒ 컬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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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불법·비리 폭로'가 점점 세밀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세한 사항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26일에는 삼성의 비자금 조성 사례와 사용처가 폭로됐는데, 세인의 시선을 끈 대목은 비자금을 이용한 고가 미술품 구입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굵은 글씨는 편집 처리).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와 신세계 그룹 이명희 회장, 이재용씨의 빙모인 박현주씨,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인 신연균씨 등이 2002~2003년 비자금을 이용해 수 백억원대의 고가 미술품을 구입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미술품 구입 대금으로 해외에 송금된 액수만 600억 원대에 이릅니다.

홍라희 여사는 수시로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관재파트에 연락해 미술품 구입대금을 미술품 거래상인 서미갤러리(관장 홍성원) 등에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그 돈은 모두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이 관리하는 비자금이었습니다.

이명희 회장이나 박현주씨 등은 각 관련 그룹의 비자금을 이용해 미술품을 구입하였습니다. 서미갤러리는 이 비자금으로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미술품을 구입해 홍라희 여사 등에게 전달했습니다.


홍라희 여사 등이 구입한 미술품(첨부자료 2. 미술품 리스트 PAGE1) 중에는 800만달러(2002년 당시 환율로 200억원대)나 되는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과 716만달러에 이르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밖에 바넷 뉴먼, 도날드 저드, 에드루샤 등 미국 추상파 작가들과 독일작가 리히터의 작품 등이 100만달러 이상의 고가였습니다. 저는 이재용씨로부터 '행복한 눈물'이 이건희 회장 집 벽에 걸려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홍라희 여사 등이 구입한 작품들은 미술사적 평가 등에서 톱클래스에 오른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주로 60~70년대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이고, 여기에 팝아트, 미디어아트 거장, 최근 유행하는 설치 매체 미술의 중견작가들의 작품입니다. 이들 작품의 특징 등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미술계를 통해 쉽게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첨부자료 2. 미술품 리스트 PAGE2는 대금 지급액 목록의 일부입니다. 미술품 대금 지급금액, 대금 수취인, 수취은행명과 그 위치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대금 지급 시기는 2002. 1.부터 2003. 9. 까지입니다. 대금 수취인은 삼성가의 미술품 구입 독점 창구인 서미갤러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몇몇 인사와 다른 화랑 이름, 조흥은행, 뉴욕 현지은행 등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삼성 측의 해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자금을 이용해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주장에 대해

□ 김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미술작품 구입 리스트는 서미갤러리가 2002년∼2003년에 구입했던 해외 미술품 리스트라고 함.

□ 김 변호사는 홍라희 관장이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과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거액을 주고 구입했다고 했으나, 미술관과 홍라희 관장 모두 서미갤러리로부터 '베들레헴 병원' 작품을 구입한 적이 없음.

다만, '행복한 눈물'은 홍 관장이 집에 이틀 동안 걸어놓은 후 마음에 들지 않아, 구매하지 않고 서미갤러리에 돌려줬음.

□ 미술품 구입은 미술관에서 구입할 경우 미술관 자금으로, 홍라희 관장이 개인적으로 구입할 때는 개인 자금으로 구입하고 있어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터무니 없음.

"'행복한 눈물'이 '익명 소장가'에게 710만 달러에 팔렸다"는 BBC 기사

검찰이나 특검이 세밀한 수사해야 합니다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는 '리스트'라는 이름의 세밀한 근거가 동반됩니다.

삼성 측의 해명은 언제나 부실하거나 오락가락한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홍라희 관장과 연관된 '미술품 비자금 구입 의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장'만 있을 뿐, '근거'는 부족해 이게 법적 대응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운영하는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소장품 코너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거론한 화가들의 실제 작품이 소개돼 있습니다. 도널드 저드(1928~1994)의 1989년작 '무제(조각 설치)'와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의 '696백조(회화)'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움미술관은 2004년 10월 13일에 개관했습니다. 이 곳에는 이병철 창업자와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각종 국보급 보물과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출신의 홍라희 관장이 특히나 선호했다는 미니멀리즘('평면성' '구획'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없애버리는 미술사조) 작품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국보·보물급 작품 150여 점을 포함해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까지 리움미술관의 소장작품은 무려 1만 5000여점이라고 하는데,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현대미술품, 그 구입 자금 출처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제대로 수사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언급한 작품 중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에 대해 삼성 측은 구입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들레헴 병원'의 행방을 찾아야 하는데, 김용철 변호사는 "홍라희 관장은 한 번 그림을 사면 되팔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의 자택까지 수사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첨부자료 2. 미술품 리스트 PAGE2'에 따르면, 대금 지급 시기는 2002년 1월부터 2003년 9월까지입니다.

이번 폭로로 인해 화제가 된 716만 달러를 호가했다는 그림인 로이 리히텐슈테인의 '행복한 눈물'은 2002년 11월 15일에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익명의 경매 참여자'에게 팔렸다고 합니다("A record was set for pop artist Roy Lichtenstein when his work Happy Tears sold for $7.1m (?.5m) at Christie's in New York"). 블로거 '김홍기'님이 찾으신 영국  BBC 뉴스를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습니다.

'익명의 소장가'가 710만 달러에 구매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이 '익명의 소장가'는 누구일까요?
▲ <행복한 눈물>이 언급된 2002년 11월 15일자 BBC 기사 '익명의 소장가'가 710만 달러에 구매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이 '익명의 소장가'는 누구일까요?
ⓒ 영국 BBC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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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대해 조사해야 할 부분은 미술품 구입내역과 더불어 조흥은행과 하나은행 등을 경유해 해외로 송금된 자금의 출처가 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자금의 출처는 찾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 구입대금이 '비자금'이라면,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리저리 돌린 '세탁자금'이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26일자 기사 <고가 미술품 구입 '비자금 600억→ 서미갤러리→ 미 경매소→ 삼성일가'>에 따르면, 실제로 2003년에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관장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핵심인) 홍라희 관장을 비롯한 삼성 가문 일가는 조사한 바 없다"면서 "검찰은 당시 이 그림들을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 다 파악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리저리 자금 추적 과정를 모두 거쳐 몸통에 접근했지만, '은폐'를 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홍송원씨는 23일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면서 "삼성이나 신세계와 무관하며, 관련 자료를 낱낱이 검찰에 제출해 충분히 소명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겨레> 기사에는 "금융정보분석원이 펴낸 '2006 자금세탁방지업무에 관한 연차보고서'를 보면 금융기관에서 '혐의거래'로 보고한 외화 500만 달러 이상 거래는 2002년 4건, 2003년 3건으로 돼있다. 삼성의 미술품 관련 사건은 이들 7건 중에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는 "내사 내용은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사실 관계 확인을 거부했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검찰 수사 라인에 있던 간부들도 대부분 '그런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삼성 미술품 관련 사건은 대검 중수부에서 손을 댔다가 삼성 쪽의 로비로 서울지검 외사부로 넘겨졌는데, 결국 흐지부지됐다'며 '검찰이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의외로 쉬워집니다. 

특별수사팀이나 차후에 조직될 특검팀이 검찰(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외사부)의 수사기록부를 참고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홍라희 관장도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횡령·조세 포탈·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재벌가, 왜 '미술관'을 주목하는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대로라면, 삼성가의 여성들과 미술품, 그리고 미술관은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뿐 아니라, 다른 재벌들도 마찬가지인데, 모두들 아시다시피 '미술관'에는 아주 흥미로운 메리트가 붙습니다. 증여세와 상속세가 절세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미술관에는 통상적으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재벌이 미술계에도 얼마든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듯합니다. 이미 미술계에서 삼성 일가를 비롯한 재벌가의 회장이나 여성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향력'마저도 돈세탁을 한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면,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과거부터 이병철 창업자를 이어 국보급 고미술품을 대량으로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건희 회장(국보급 문화재 405점 중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문화재는 총 46점, 이중 31점이 이건희 회장 개인 소유)의 경우에도 수집과정 자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이 미술가의 정설입니다.

국보급 매물이 나오면 판매상들도 대개 이건희 회장에게 가장 먼저 찾아간다고 하는데, 주식배당금으로 구입하는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자금 출처나 수집과정에 대한 언급은 업계나 호암미술관에서는 '금기'라고 합니다.

이렇듯, '수집과정이 베일에 싸여지면서' '비자금 구입 의혹'의 불씨가 양산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견지하는 재벌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미술품상으로서는 굳이 자금 출처에 대해 명확히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세간의 관심대상이 되는 이유를 제공한 것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홍라희 관장은 그야말로 초법적인 통로로 미술품을 소장했다는 것이 됩니다. 현실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의혹이겠지만 명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이미 증여세와 상속세가 절세됨에도 불구하고 불법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수집했다면 그야말로 이중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찰 특별수사팀과 곧 조직될 특검에서 신경써서 조사해야 할 부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특검법, #삼성 비자금, #김용철, #홍라희, #행복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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