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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쌀쌀한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11월의 마지막 주말,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모인 청소년 시민 교사 등 300여명은 추위에 아랑곳없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라고 쓰인 날개 모양의 상징물을 어깨에 걸치고는 무대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놀 권리를 줘야 합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만 해야 하는지라 삭막합니다. 유엔 협약에도 어린이의 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던데, 한국의 어린이들을 제발 신나게 놀게 해 주세요."

 

첫 발언대에 오른 송이초교 4학년 강선우 어린이가 또박또박 작은 목소리로 '어릴 때부터 이어지는 공부압박으로 친구들과의 관계가 삭막해져 간다'고 호소하자 참석자들은 박수로 호응했다. 초등학생의 호소는, 모든 것이 입시에 맞춰져 있어 초등학생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 공동 행동의 날 행사'가 24일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대전 등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이하 대학평준화국본)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교육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가 중요함을 알리고 이를 위한 국민운동이 시작됨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대학평준화국본'은 지난 9월 20일 만들어졌다. '교육운동을 하던 분들이 모여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입시제도 개선이 3불 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 등 금지)만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후 간담회와 포럼을 진행하면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으로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로 나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이 출범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단체들 간의 연대운동으로 가기보다는 개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네트워크를 이루는 방식으로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이후 논의에 참여한 경상대 정진상(대학평준화국본 공동대표)교수가 전국 자전거 대장정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회원수가 출범 두 달 만에 5000여명으로 늘어났다. 회원으로는 '강풀'이란 필명으로 알려진 만화가 강도영씨와 영화배우 정진영씨, 장세옥 전교조 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대학평준화국본 이형빈 정책팀장(이화여고 교사)은 이번 운동이 "5년 정도 안목으로 펼치는 중단기적 운동"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오늘과 같은 문화제 등의 행사를 계속 펼쳐나갈 것"이라며 "올해 안에 10000명 회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홍세화씨는 인사말을 통해 "고교교육이 대학 입학을 위한 종속물이 됐다"고 비판하고 "이제 시작이지만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행사의 의미를 새겨보자"며 각오를 다졌다.

 

고2 성하림 학생은 "수능이 끝난 날 또 한명의 학생이 자살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오직 최고의 대학을 가는 게 제일인 학교가 학생의 자율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교육은 하나의 시장이 됐고, 학생은 질 좋은 상품이 되어야 한다"며 "교육이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진보정당의 대선주자들도 참여해 교육 문제에 대해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강남의 부동산 문제도 결국은 교육문제로 시작됐다, 교육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긴 시간으로 치유할 것이 아니라 단시간 내에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실 가능한 일이겠냐며 의문을 갖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제한 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문제를 언급하며 '삼성 비자금을 다 거두면 무상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당 금민 후보는 "대학입시를 입학자격시험으로 바꾸고,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서열제가 대학 경쟁력 세계 60위로 만들었다"며 "29조원의 사교육비는 교육 불평등기금"이라고 비난했다.

 

또 "대학평준화는 결코 하향 평준화가 아니며 세계 여러 대학의 사례를 봐도 평준화된 대학 경쟁력이 더 높다"고 밝혔다. 이어 "부패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이 이익을 이어가기 위한 논리로 평준화를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영 민주노총 서울본부장도 '해방이후 입시제도가 16번이나 바뀔 만큼 갈팡질팡한 교육정책'을 질타하고 "1%정도 밖에 안 되는 기득권 세력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입시제도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화제 성격으로 치러진 이날 행사에 출연한 이들 또한 입시제도와 교육현실에 대해 한마디씩을 잊지 않았다. 이야기 도중 눈물짓기도 한 이랜드 율동패의 노동자는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슬퍼진다"고 말하고 "월80만원 수준의 비정규직에게 사교육비는 꿈도 못 꾼다"며 '사교육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밴드 보드카 레인은 데뷔 과정에서 기획사의 의도로 일부러 학력을 드러냈음을 밝히며, "솔직한 자기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고 반성한 뒤 "속죄의 의미로 공연을 펼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청소년 학부모 교사들이 앞장서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반드시 이뤄내고, 이를 통해 입시경쟁과 학벌구조를 타파하여 참교육 실현 및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덧붙이는 글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http://www.edu4all.kr


태그:#입시폐지 , #대학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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