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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너머로 보이는 앞산의 모습
▲ 김용택 시인 창문너머로 보이는 앞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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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닮은 강. 섬진강. 대한민국 어디인들 가을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겠냐마는 섬진강 물줄기는 가을의 투명한 햇살에 속살까지 눈부시게, 징하게도 가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지키며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겠다는 김용택 시인. 그래서 섬진강과 김용택 시인은 퍽도 많이 닮았다. 솔직하고 넉넉하고 때로는 고집스러운 모습마저도….

다른 지역, 이곳을 떠날 생각은 아예 안 해 봤다는, 일찍부터 다른 삶을 넘보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이 있었고 평화로웠다. 섬진강 얘기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접어두기로 하고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주는 교육관이 듣고 싶어졌다. 요즘 한창 푹 빠져 있는 시에 대한 생각도….

흔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는 김용택 시인에게 인터뷰 내용들이 매번 비슷하지 않냐는 질문에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다. 비슷한 질문이더라도 살아가는 세월만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지키는 것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인터뷰도 즐겁게 받아들인다.

일년 중 꽃피는 봄과 낙엽지는 이맘때가 가장 좋다.
▲ 김용택 시인 일년 중 꽃피는 봄과 낙엽지는 이맘때가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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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을 분리시키는 것은 아주 나쁜 것”

- 선생님 시를 좋아합니다. 선생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애틋했다가도 애절했다가도 가끔은 미소도 머금게 하고, 참 함축된 글이라는 게 이리도 오묘한지… 선생님 시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고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다르고, 시는 삶을 시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하는 것. 시는 시대의 문제핵심에 가 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 시대가 아프면 아파야 하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워야 하고 절망을 하면 절망해야하고 고통과 절망 속에서 시는 희망을 노래해야 하지요.”

- 선생님의 연세쯤 되시면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나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다 보니 시상이 한정되어 있지는 않느냐고 어느 분이 꼭 여쭤봐 달라고 했는데…
“시는 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삶이 중요하지요. 시를 위해 인간이 있으면 안 되고 문학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문학을 위한 문학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아이들을 떠나서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시를 쓰는데 절대 방해가 되지는 않고 제가 살아가는 삶이 곧 문학이고 시입니다. 시와 삶을 분리시키는 것은 아주 나쁜 것이죠. 시는 삶 속에서 나옵니다. 제 시가 곧 삶인 게죠.”

늦가을 오후 햇살을 받은 섬진강의 풍경
▲ 섬진강의 모습 늦가을 오후 햇살을 받은 섬진강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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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김용택 시인의 ‘시’ 얘기가 슬슬 궁금해진다. 사랑 얘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감성을 깨우는 시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랑’이라는 시에 대해 여쭤보리라. 읽는 내내 궁금한 게 있었는데 왜 헤어졌는지? 첫 부분은 이별의 아픔이 애절했고, 뒷부분에서는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가는 희망적인 부분도 느껴졌고, 어쨌든 왜 헤어졌는지 그 사연이 듣고 싶어졌다.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 지난 몇 개월은 /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어 /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 어찌하지 못합니다./
...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 당신의 어깨에 /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 한 봄입니다. / 행복하시길 빕니다. / 안녕 /

김용택 시인과 섬진강은 솔직하고 넉넉하고 때로는 고집스러움마저도 닮았다.
▲ 섬진강의 모습 김용택 시인과 섬진강은 솔직하고 넉넉하고 때로는 고집스러움마저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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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랑이었습니까?
“저하고 근무하는 여선생이 있었는데 곱고 착해서 친구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잘 안됐습니다. 헤어졌지요. 그 후 여선생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책상 속에 넣어 둔 편지를 그 이듬해 학년이 바뀌면서 우연히 서랍을 정리하다 연필로 쓴 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시의 앞부분에는 여선생의 편지를 다듬어 넣고 뒷부분은 제가 연애를 하면서 경험했던 저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 고통 속에서 새로운 사랑은 또 시작되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게 사랑이라면 그 울타리는 여자든 남자든 관심이 있어야 한다. 간혹 사람들은 사랑의 반대말은 이별이라고 단정 짓는데 이별도 사랑의 한 과정이며 굳이 사랑의 반대말을 찾자면 무관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그래서 기다림과 그리움의 이야기도 펼쳐놓는다.

“기다림, 그리움. 정신을 풍족하게 가꿔주는 아름다운 말들입니다. 그리움이 없는 삶은 메마르고 건조합니다. ‘6월’이라는 시도 그리움에 대한 애틋한 일상을 적어 놓은 것인데 이곳에서 일직하며 쓴 시이지요. 사랑이 절절하면 숨길 수가 없습니다. 시가 안 됩니다. 시는 직접적인 언어이며 크게 울림의 말들입니다. 거짓으로 꾸미면 안 됩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한 글들은 감동과 감흥이 진실할 때 통하는 것입니다.”

호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섬진강의 억새밭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가을들녘의 억새밭 호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섬진강의 억새밭을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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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없는 삶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김용택 시인은 로댕의 글귀를 한 구절 읊어주었다.

“로댕이 그랬죠.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 감동은 새로운 것이며 힘의 원천이고 창조적인 삶을 이끄는, 그래서 희구와 감동을 통해 전율하며 살고자 합니다.”

21살에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설을 보게 되고 읽다보니 다른 책에 관심이 갔다. 역사, 사회, 철학, 사상을 알게 되고 그러다보니 독서를 통해 살아왔던 세상과 살고 있는 세상을 알아갔다. 자신과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생을 알게 되고 자연의 장엄함을,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보였고 이런 과정에서 시라는 의미가 다가왔다.

“독서를 통해 세상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져서 주체하지 못해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글이 무엇인지, 나와 관계있다는 것이 논리적인 글이 되고 삶이 되더군요. 글을 쓰면서 생각이 높아지고 자세히 알아지고 많은 생각을 주체하지 못해 쓰고 반복하게 되고 그렇게 15~16년을 지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소설이나 평론이 아니고 시가 맞았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냥 시가 써졌습니다.”

21살 때부터 책을 읽고 82년에 문단에 등단했다.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무엇이 되려고도 안했다. 어떻게 인생을 잘 가꾸어 가는 게 중요하지 서울에 사는 게, 미국에 사는 게, 대학을 나오는 게, 많이 아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복되게 가꾸어 가는 게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덕치초등학교 아이들의 특징은 무슨 일이든 거리낌 없이 선생님과 대화하는 게 익숙하다.
▲ 김용택 시인 덕치초등학교 아이들의 특징은 무슨 일이든 거리낌 없이 선생님과 대화하는 게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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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의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의 모습
▲ 덕치초등학교 김용택 시인의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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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노는 것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는 일

- 제 자식 귀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다 보니 작은 것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보다는 남들보다 월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며 공부 쪽에 중점을 두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우리나라 교육문제, 어떤 게 문제인가?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고치지 않고 있죠. 초등교육은 특히 노는 시간을 줘야하는데 아이들이 놀 줄을 모릅니다. 더불어서 장난치고 노는 것을 어른들이 싸그리 공부로 뺏어가고 있습니다. 논다는 것은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인데 같이 살 줄을 모릅니다. 도시아이들이 시골에 오면 못 놀고 혼자 놉니다. TV, 컴퓨터로만 놀려고 합니다.

결국은 폐쇄적, 자기중심적, 독단적, 남을 의식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요.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놀 줄 모르고 어른이 되었을 때의 폐단은 상상을 초월해 무섭게 나타날 것입니다. 학교는 같이 먹고 공부하고 놀라고 모아놓은 것인데 일등만 하려고 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칩니다. 무의식중에… 어른들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놀 줄 안다는 게 중요한데요.”

-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학생 수가 학급당 많이 감소는 했는데 그래도 30~40여명의 학생들이 한 학급을 이루고 있지요.
“예전에 50~60여명의 학생 수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30~40명이라….학생 수가 많다는 것은 교육을 안 하겠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교육은 인간 개개인의 개성, 인간성을 기르는 것인데 학생 수가 많다 보면 선생님은 그 숫자를 한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봐야 하는데 개개인은 볼 수 없고 결국 공부 잘하는 아이가 눈에 띄고 공부 못하는 아이와 거스르는 아이만 드러나게 되지요. 교육이념이 뭔가요 ‘홍익인간’ 아닙니까. 널리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는 것,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일등주의는 뭔가요. 남을 딛고 일어서야 일등이 되는 것 아닙니까”

섬진강은 지금도 멋지게 가을을 담고 흐르고 있다.
▲ 섬진강의 모습 섬진강은 지금도 멋지게 가을을 담고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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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은 정규교육은 정확하게 이수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책읽기, 그림그리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즐겨하고 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김용택 시인은 그림은 교육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논리를 세우는 일입니다. 꽃, 화분, 눈, 코, 입 등을 세밀히 관찰하고 이를 통해 논리적인 사고를 정서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일이지요. 여기에 글쓰기도 아주 중요합니다. 글을 쓰면서 자기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일기쓰기가 글쓰기의 기초로 보편화 되어 있는데 일기쓰기를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일기는 착한 일을 쓰는 게 아닌데, 착한 일을 했으면 그만이지 일기로 칭찬받는 게 아닙니다. 일기는 그날의 일을 자세하게 기록하며 생각을 키우는 작업입니다. 사물을 자세히 보고 논리적인,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태도를 키우는 일이죠. 사고는 창조적인 사람을 키우기 위함인데 ‘참 잘했어요’는 왜하는지, 그걸 뭐더러 해….”

그러게 말이다. 꼭 일기에는 착한 일을 쓰고 빨간색 연필로 ‘참 잘했어요’, 아니면 달팽이집이 지어지곤 했던 기억이 스친다. 생각도 잠시, 김용택 시인은 질문도 하기 전에 생각주머니가 쏟아져 나온다.

“그림이나 글쓰기, 공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가장 기본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꾸며 사는 게 중요합니다.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얘기이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이 변해도 사람이 중요합니다. 글쓰기 위해 독서는 중요하지만 인간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숙제를 위해 아이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면 안 됩니다. 독립된 인격체, 동등하게 대해줘야 하고 교육이라는 것은 자기 교육, 가르치면서 동시에 선생님들도 배워야 합니다. 가르치다보면 아이들에게 배우게 되기도 하고 선생이라는 직업이 배워가면서 가르치고 그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 이곳의 담임을 맡고 있는 김용택 시인.
▲ 김용택 시인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 이곳의 담임을 맡고 있는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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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그리기를 마치고 온 아이들이 교실로 우르르 몰려든다. 남학생 두 명이 쌈질을 해서 여학생이 고자질해 혼찌검이 났다. 학생 한 명이 오늘 결석을 했다. 종례를 하며 우유며 이것저것을 꼭 챙겨서 전해주라고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숙제 얘기보다는 책상 위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의 종례 모습.

늘 살아있는 자체가 감동이며 안사람과 사는 게 가장 기쁘고, 섬진강과 창문 너머 앞산,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운동장 풍경들을 사랑한다는 김용택 시인. 스스로가 복이 많다는 사람이다.

일년 중 꽃피는 봄과 낙엽이 지는 이맘때가 가장 좋다는 김용택 시인을 엿보며 삶의 여백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섬진강은 지금도 멋지게 가을을 담아 흐르고 있다. 삶이 시라고 말하는 시인의 진솔한 가슴만큼 언제나 새로운 감동을 만들며, 또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며 시인의 언어가 사람들의 마음에 쉼표로 자리하기를 기대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늦가을 하늘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보았다.
▲ 유난히 파란 하늘 돌아오는 길에 늦가을 하늘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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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용택, #섬진강, #덕치초등학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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