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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시청 부근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를 위한 2007범국민행동'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문성현 대표, 천영세 의원, 단병호 의원,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시청 부근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를 위한 2007범국민행동'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문성현 대표, 천영세 의원, 단병호 의원,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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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부 기자를 민주노동당과 함께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이 10석으로 '진보정당의 첫 원내진출'이라는 꿈을 이뤘던 2004년 4월, 민주노동당 출입기자였다. 여의도 당사엔 한 개층이 기자실로 할당되었고, 각 언론사들은 2, 3명의 출입기자를 상주시킬 정도로 민주노동당은 붐볐다.

그 때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되어가고 있는 지금, 당사 건물엔 싱크탱크인 진보정치연구소만 덩그라니 남아 있다(새 당사는 영등포 문래동에 있다). 연구소는 7층에 있다. 2층부터 6층까지는 한나라당 당사가 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출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60%를 넘는 보수 일변도의 대선 상황을 공간이 드러내주는 것 같았다.

대선이 한 달 남았다. 하지만 수치로 드러난 민주노동당의 현주소는 절망적이다. 당 지지율은 5% 수준이고, 대선 후보 지지율은 그 밑을 맴돈다. 예비후보로 나선 노회찬 의원은 지난 8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범여권은 후보도 정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상태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 보수, 진보의 대선 구도가 선명해 질 것"이라며 낙관했었다. 전제는 맞았지만 결과는 틀린 셈이다.

위기는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여기저기서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터지고 있다. 지난 주 당 대변인이 전격 사퇴했다. 김형탁 대변인은 "우리에게 희망은 있었지만 전략도, 실력도 없었다"며 한탄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 이렇게 나라를 바꾸겠다는 '국가비전'을 놓고도 아직 논란 중이다. 당 정책위원회 젊은 연구원들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며 '코리아연방공화국'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권영길 후보가 핵심 캠페인으로 내세운 '백만민중대회'는 불법집회 논란에 휩싸여 메시지는 묻혀버렸다.

조승수 소장은 그런 당의 위기를 정면돌파할 태세다. 조 소장을 만난 지난 16일 '조승수 징계' 건을 놓고 당이 시끄러웠다. 그날 오전 지도부 회의에서 조승수 소장이 지난 9일 인터넷매체 <레디앙>에 쓴 글에서 "군사왕조집단인 북한"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며 일부 최고위원들이 경고와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또 썼다. 조 소장은 같은 매체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한다면, 나는 선거운동 못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의 민중은 통일보다 자녀 교육비와 카드 결제일이 더욱 큰 관심사"라며 당내 특정세력을 겨냥해 "통일 지상주의에 매몰된 운동권"이라고 비판했다.

 조승수 민주노동당 대표 후보 인터뷰.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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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소장은 작심한 듯싶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를 보았을 땐 "괴롭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선을 다섯 번째 치르지만 이런 선거는 처음"이라고 토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결행하는 태도다.

지역구(울산 북구) 의원으로 원내 입성했지만 1년 반 만에 의원직 상실, 또 작년 당대표 선거에 나갔다가 고배를 마신 뒤 그는 진보정치연구소장으로 지내고 있다. 국회와 당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조승수 소장을 만나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진단했다. 그는 87년 백기완 후보 선대본 기획국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결과나 승패를 떠나서 선거운동 과정이 신나고 열정이 있었다. 한번 해보자, 내가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이번 대선은 그토록 염원하던 진보정당이 있고 유무형의 자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원들은 차치하고라도 내 가족, 내 친구들에게 어떤 내용으로 표를 달라고 할지 스스로 자신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조 소장은 "메시지 전략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코리아연방공화국' '100만민중대회' 등 되레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들만 눈에 띄니깐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토로했다.

-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도 후보는 권영길 아니었나.
"그 때는 후보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다. 민주노동당=권영길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그런데 이번 경선 과정에서 그게 무너졌다. 권 후보가 승리하기 위해 손을 잡은 세력(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행동을 볼 때 언제까지 권영길인가, 절반 이상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심상정과 노회찬으로 당을 활력 있게 이끌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그 자연스런 현상을 억지로 틀어막은 경선이었다."

권영길 후보의 '대권 삼수' 배경에 대해 조 소장은 "당내 '총선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권 후보가 재선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현재 당이 처한 상황에서 창원(권영길 후보 지역구)도 굉장히 힘들다. 그런데 대선 후보로 나왔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크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지역구에 다시 안 나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경선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민주노동당의 정파 담합 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53대 47의 구도를 깨지 못하는 것 같다.
"지도부 선거나 아주 중요한 전략적 방향이 담긴 결정은 그 구도가 고착화 되었다. 처음 나타난 것이 2006년 당 지도부 선거다. 53 대 47 산술적으로 보면 2, 3% 이동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53%의 벽을 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왜?
"당내 정파 그룹은 30%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전체 당원 숫자의 증감은 큰 차이 없지만, 내용적으로는 3천명이 들어오고 3천명이 나갔다.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탈당하고 특정 성향이 조직되어서 들어온 사람이 3천명이다. 자발적인 평당원들의 입당은 극히 일부다. 그렇게 조직되어서 들어온 사람들이 주요 선거나 투표에 있어서 세력을 형성하고 그대로 관철시킨다."

조 소장은 자주 "그쪽"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쪽이 누군가'라고 물었다.  

"30%가 정파라면 그중에서 20대10 정도로 자주파와 평등파로 나뉜다. 자주파는 한국사회는 미국의 신식민지이고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인 한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반미와 통일을 운동의 최고목표로 설정한 세력이다. 비정규직 등 민생 문제 보다 국보법 등 반미 투쟁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FTA(자유무역협정) 문제도 한칠레나 한유럽 보다 한미FTA에 적극적이다. 주한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이나 대추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 그럼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은 뭔가.
"노동자 계급의 대표성을 가진 민주노총의 조직적 대오로 민주노동당이 탄생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합쳐도 노동조합 가입율이 10% 수준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대표성을 상실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근원한 민주노동당은 근원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당이 위기에 처한 뿌리는 거기에 있다."

- 전태일의 누나 전순옥 박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이 무슨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냐"고 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문국현 지지를 선언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국현 지지는 동의할 수 없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질책의 내용이 뭔지 알기 때문에 타당하다고 본다."

- 문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반성문 쓴 자유주의자다.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 등에 대해 보수자유주의와 달리 나름대로 급진적인 처방을 하고 있지만 결국 시장주의자다."

- 그럼 민주노동당은 시장주의를 부정하나.

"진보정당은 공공성의 원리로 시장이 통제되는 것을 추구한다. 공기업 민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력, 가스, 철도, 의료 등은 시장의 효율성 논리로 따질 수 없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공의 원리를 따져나가야 한다. 시장 논리의 전사회적 지배화 라는 점에서 문국현 후보가 벗어나 있지 않다."

- 보수 일변도의 대선판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어떤 반등의 계기가 만들어질지 의문이다.
"보수반동의 시대가 도래했다."

- 유권자가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나.
"두 가지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내 삶의 민주주의를 해결해 주지 못한 민주화 세력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정서가 있고 다른 한편엔 유권자의 문제도 있다. 40, 50년 동안 고도성장에 익숙해진 국민들이다. 먹고사는 문제로 힘겨운 과정을 겪긴 했지만 고도성장 속에서 '하면 된다'는 성장 중독증이 내재돼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고도성장의 시스템이 멈추면서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사교육비나 주거 문제가 자신의 삶의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유권자의 전폭적인 보수 지지는 집단적인 성장 중독증의 금단 현상이기도 하다. 성공신화와 실용주의를 이명박이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승수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소장.
 조승수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소장.
ⓒ 박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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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의 책임론도 있지만 억울한 점도 있지 않나. 국회의원의 수의 한계나 언론의 비협조 등.
"민주노동당 스스로 자초했다. 억울할 것 없다. 당연한 결과다."

-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부유세나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약들이 실현 가능성을 떠나 참신하게는 느껴졌다. 거기에서 업그레이드 된 무엇이 이번 대선에서 제기되어야 하는데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으로 묻히고….
"'우리는 꼴통 운동권입니다' 선언한 거지."

- 지난 11일에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백만민중대회에 참석했나.
"우리 후보가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고 갔다. 그런데 평소 얘기해온 한미FTA, 삼성, 비정규직 문제 좀더 목에 힘줘서 한 것 말고는 내용이 없었다."

- 무엇을 기대했길래.
"모이는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미리 당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우선, 당선 가능한 순서에 비례대표 비정규직을 만들어 내겠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연대임금제를 실현하겠다. 정규직의 임금인상분을 일부 모아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 연대임금제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신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연구소에서 정규직의 일방적 양보만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과 정규직이 각각 1/3씩을 부담해서 연대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으로 사용하자는 사회연대국가안을 내놨었다. 설사 정부나 기업에서 거부하더라도 명분은 노동계가 쥐는 것 아닌가."

- 작년에 권영길 후보가 원내대표 시절 그 같은 '사회적 연대 방안'을 내놓지 않았나.
"그렇다. 그 때는 사회보험에 관한 연대 방안이었다. 고소득 정규직이 받는 보험료에서 누진의 일정액을 양보해 저소득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권 대표의 국회연설에서 집어넣었는데, 대기업 노조의 일방적 양보로 비춰져 논의도 제대로 못해보고 민주노총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남았다. 민주노동당의 남은 기간 선거 전략은 어떻게?
"대선판 전체로 보면 주요 변수가 김경준과 이회창 아닌가. 이걸 두고 대선정국이 요동친다고 하는데 민주노동당과는 상관 없는 것이다. 소동도 미동도 안하고 있으니까. 그런 판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민주노동당답다'고 여겨지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 지난 대선에서 약 96만표를 얻어 3.9%를 획득했다. 이번 대선은 얼마나 될 거라 보나.
"고정지지층이 7% 정도 있다고 보는데 거기에 얼마나 근접하게 얻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 만약에 5%도 안되는 수준이라면?
"득표율이 낮을수록 근원적인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겠나."

- (당을) 깨자?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데 득표율에 따라 대단히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 될 것인가, 아닌가."

- 민주노동당의 자정능력이 있다고 보나.
"아직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논쟁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조승수 소장은 사석에서 "기간당원들이 개별적으로 하나둘씩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일부에서는 "대대적인 정풍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파는 있는데 제대로 된 논쟁 없이 서로가 판을 깨지 않으려는 모습이 당내 정파의 현실이었다.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은 호되게 몸살을 앓을 것 같다. 대선을 출발점으로 내년 4월 총선, 6월 당직 선거를 통해 "전환적 계기가 주어졌다"는 게 조 소장의 판단이다.

"나는 창당 발기인 중의 한 명이고, 90년대 내 꿈이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을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역구로 당선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누가 뭐래도 당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 일원으로서 나의 역할을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그 후'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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