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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탄생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송시열 선생(1607∼1689)은 조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대정치가요 사상가며 성리학과 예학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000회 이상 등장하는 이는 우암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은 우암 선생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조는 한국 유학 사상 유래 없이 우암을 송부자(宋夫子)라고 칭하고 그의 문집은 평양감영에서 출판하여 ‘송자대전’으로 명명했다. 여기서 부자라는 뜻은 공자, 맹자, 주자에게 붙인 칭호로서 '큰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우암은 정몽주, 조광조, 이황, 이이 등 강렬한 인의정신으로 불인과 불의를 배격한 한국도학의 핵심 정신을 계승하였고 도학정신과 성리학의 일치를 이루었다. 또한 우암은 효종과 함께 북벌을 도모했다. 북벌의 이유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는다는 복수설치가 아니라 문명세계의 수호였다. 우암은 양란으로 퇴폐한 조선을 재건할 추동력을 인의를 실현하자는 높은 뜻으로 승화시켰다.

 

우암은 인의(仁義)를 행하는 성현을 군사부로 높이고 인의를 저버린 배반자를 이적과 소인으로 규정했다. 우암은 또한 사람의 도리를 일깨우고 천리와 인욕을 분별하여 선과 악, 의와 불의,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고 이단과 소인과 이적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우암의 사당은 인근을 정비하여 ‘우암 사적공원’으로 되어 있는데 위치는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의 보건전문대학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어제(11월 17일)부터 오늘까지 이곳에서는 '송자 탄신 400주년 기념 - 우암문화대제전'이 열렸다. 숭모행사의 일환인 국악공연의 식전행사를 필두로 송승환의 난타공연, 전통혼례 시연(모의)과 한밭휘호대회에 이어 백일장이 거행되었다.


어느새 10회째 맞는 백일장인데 초창기 1회의 백일장 때는 필자가 장원을 한 이력이 있다.

백일장은 ‘산내 디딜방아 뱅이’ 시연 관계로 얼추 오전 11시가 다 되어 시작되었다. 하여 미리 가서 이곳 저곳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날씨가 꽤 추웠으나 주최 측에서 흔들면 열이 나는 손난로를 하나씩 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일장과 동시에 실시된 ‘송자 숭모 전국 서예대제전’엔 전국각지서 오신 어르신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미리 써 오고 베껴 온 글들을 ‘그리는’ 이도 적지 않아 옥의 티로 보였다. 

 

덧붙이는 글 | 국정브리핑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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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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