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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주에 가는 목적은 경기전 단풍과 풍남문, 전동성당을 둘러보는 것 반, 맛잔치 구경 반 이었다. 정안휴게소에서 얻은 전주 맛잔치 브로셔는 온통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 일색이어서, 행사로 혼잡할 터인데 음식점에 혼자 가서는 식탁 한가득 나오는 음식을 주문받지도 않을 것 같고 혹 주문을 받아 먹는다 해도 소화가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맛의 고향 전주에서 나홀로 여행은 음식점에서는 쭉정이 취급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쭉정이라도 잔칫집에서 어디 밥 한끼 얻어 먹지 못하랴, 개다리 소반에 밥 한그릇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겠지.

볼 때마다 왜 저기에 저런 모양을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증이 나게 하는 화반(노란 부분의 동물모양).  머리는 코끼리를 닮았고 꼬리는 여우 같다.
▲ 풍남문 볼 때마다 왜 저기에 저런 모양을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증이 나게 하는 화반(노란 부분의 동물모양). 머리는 코끼리를 닮았고 꼬리는 여우 같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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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풍남문이 나를 반겨준다. 수원 화성 장안문(북문)은 커다란 도로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져 우리에게 다가오기가 힘들지만, 장안문의 축소모형 같은 풍남문은 소형차 두 대가 겨우 교차할만한 작은 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에 남부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을 끼고 있어 문화재라는 엄숙함보다는 좀 큰 이웃집 솟을대문 같은 풍모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운데 문루를 두고 좌우에 종루와 포루가 배치된 풍남문은 이층 누각 창방과 도리 사이에 얼굴은 코끼리 같고 꼬리는 수달이나 여우같은 동물형상의 화반이 있어 흥미를 유발시킨다.

풍남문 포루에는 사정거리 3백에서 5백미터 된다는 복제된 대포가 있는데 실감나게 만드느라 포구에 포탄을 반쯤 걸쳐 놓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고추를 내밀고 멀리싸기 내기를 하는 것이 연상되니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복제된 대포 풍남문 포루에는 사정거리 3백에서 5백미터 된다는 복제된 대포가 있는데 실감나게 만드느라 포구에 포탄을 반쯤 걸쳐 놓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고추를 내밀고 멀리싸기 내기를 하는 것이 연상되니 나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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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포루에는 사정거리가 300m에서 500m된다는 복제된 바퀴가 두개 달린 대포가 있는데 포구에서 대포알이 나오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마치 꼬맹이들이 고추를 내밀고 얼마나 멀리 나가나 성벽에서 오줌을 내려 깔기는 것이 연상되어 재미있다. 내가 잘못된 것인가?

아침을 해결하러 남부시장으로 들어간다. 유독 손님이 바글바글한 집으로 들어선다. '남문 피순대집'. 시장통 음식점치고는 크고 깨끗하며 식구들과 함께 온 듯 여자손님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입구에는 여러 개의 뚝배기를 가스불에 올려놓고 끓이고 주인 아주머니는 한켠에서 머릿고기를 발라내고 있다. 돌아다니며 주전부리를 할 것 같아 양이 적은 국밥을 시켰다.

시장통 해장국집 치고는 넓고 깨끗하다. 맵고 라면국물 비슷한 맛이 나는 국물과 폭 익혀서 부드러운 고기는 헛헛한 위벽을 질퍽하게 도포해주어 속을 편하게 만든다.
▲ 남문피순대집 국밥 시장통 해장국집 치고는 넓고 깨끗하다. 맵고 라면국물 비슷한 맛이 나는 국물과 폭 익혀서 부드러운 고기는 헛헛한 위벽을 질퍽하게 도포해주어 속을 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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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배추김치, 마늘과 고추가 나오고 접시 한가득 부추가 나온다. 국에서 건진 머릿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모양인지 초고추장 그릇도 새우젓과 함께 나온다. 엎지를까봐 걱정 되는 펄펄 끓는 국밥 뚝배기가 온다. 순대는 하나도 없다. 순수한 머릿고기로 낸 육수는 이런 맛이 안나는데….

후추와 정체불명의 조미료가 들어 간 듯한 국물맛, 해장국집에서 무슨 웰빙을 기대하겠는가? 그 정도야 감내해야지. 맵고도 약간 달싸한, 라면스프 맛이 조금 나는 듯한 뜨거운 국물은 헛헛한 뱃속을 잘도 타고 흘러 알코올로 혹사된 위벽을 질퍽하게 적신다. 머릿고기는 여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부위를 잘 알 수 없게 다듬어지고 푹 익어서 부드럽다. 나를 달래주는 3500원짜리 국밥에 감사하며 해장국집을 나온다.

조금 일찍 같으면 더욱 좋았을 뻔 했다. 경기전 담장 넘어 단풍
▲ 경기전의 단풍 조금 일찍 같으면 더욱 좋았을 뻔 했다. 경기전 담장 넘어 단풍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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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은 아직도 공사중인지 비계를 뒤집어 쓰고 있지만 첨탑의 우아함을 모두 가리지는 못한다. 김장행사하는 천막이 경기전 입구에 어지러히 널려 있고 한쪽에서는 떡메치는 소리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섞여서 들려온다.

경기전은 조선조 어진(왕들의 용안이 그려진 그림)을 모신 곳인데 이미 이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으니 (한옥마을과 전주시내 어슬렁 거리기 http://yonseidc.com/2006/junju_01.html ), 이제 다른 것을 찾아보자.

전주 초입인 삼례에서부터 예를 갖추고 들어 온다던 전주. 그것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무조건 내려야 하는 준엄한 경기전에 두마리의 거북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 두 마리 거북 전주 초입인 삼례에서부터 예를 갖추고 들어 온다던 전주. 그것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무조건 내려야 하는 준엄한 경기전에 두마리의 거북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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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下馬)비가 정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이 근엄한 건축물에 조그마한 거북이 두 마리가 노닐고 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 포토갤러리(http://yonseidc.com/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맛잔치, #피순대, #경기전, #고추, #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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