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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문국현, 권영길이 설정하고 있는 주된 대립축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정치 세력의 정치적 승패는 상업광고처럼 한 두 개의 핵심 컨셉이 좌우한다. 핵심 컨셉의 승패는 그 시대 그 공동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축을 적확하게 설정하고, 그 극복 방안이 국민적 공감을 얻는데 달려있다.

 

영국의 대처 정부는 수많은 개혁을 했지만 대처리즘(Thatcherism)의 핵심 컨셉은 간명하다. "개인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업을 정부와 노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정부를 복지부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1월 17일 고별연설에서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새롭고 거대한 위협으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들었다. 프랑스의 <르피가로>(Le Figaro)도 "20세기 두개의 바스티유를 부수고 새로운 문화혁명을 위하여 가볍고 다이내믹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이 신문이 지목한 두개의 바스티유는 "진보성을 상실하고 진보를 거부함으로써 이익집단화 돼 가고 있는 노조"와 "국립행정대학 출신을 중심으로 한 관료 카스트 집단"이었다.

 

주된 대립물은 국민 다수에 의해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존재(예컨대 부정부패, 독재, 이민족의 압제)도 있고, 정치가와 지식인의 사회분석 결과 도출되는 존재(예컨대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도 있는데, 어쨌거나 대중적 공포와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물론 공포와 증오의 이면에는 욕망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기에 때로는 이들이 전면에 부상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깊은 속살과 상처를 뜯어보면 한국 사회는 공포와 증오와 한과 짜증이 넘치는 사회이기에 적어도 당분간은 선거의 승패는 증오와 분노와 짜증 에너지의 합리적 운용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 정치세력은 이 에너지의 흐름을 등에 업거나 올라타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국은 레드 콤플렉스, 전쟁의 공포, 국가와 우익 보수 세력에 의한 잔혹한 학살과 탄압의 공포가 표심에 큰 영향을 발휘하였다. 여기서 재미를 본 보수 세력들 상당수는 아직까지도 친북좌파 시비를 통해 국민들의 저변에 깔려있는 공포심과 증오심을 활용해 보려고 하지만 약발이 다한 듯하다.

 

진보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의 심리의 저변에 거세게 흐르는 반북대결주의를 보고 '평화'를 내세워 소모적 남북 대결과 대북 강경세력에 의해 촉발될 지도 모르는 전쟁의 공포를 자극해 보려고 하였지만 이 역시 약발이 다한 듯하다. 적어도 이회창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십 년 동안 한국 하늘에 짙게 드리운 공포가 없어졌다고 해서 국민적 증오와 분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강력하고 질긴 증오와 분노가 들끓고 있고, 들끓을 수밖에 없다. 국민적 증오와 분노의 대상을 적확하게 설정하고, 설득력 있는 극복전략에 입각하여 치열하게 싸우려는 의지를 과시하는 것은 정치세력의 명운을 가르는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주된 대립축?

 

'차별 없는 성장, 가족행복시대'를 핵심 구호로 내세우는 정동영은 도대체 무엇을 주된 대립축으로 설정하고 있을까? 어떤 증오와 분노를 등에 업고 있을까? 그 극복 방안은 얼마나 넓은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을까?

 

정동영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주된 대립축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와 토목 중심 경제다. 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만능주의' '정글 자본주의' '20%만 잘 살고 80%는 버려지는 2대8 사회' '돈 있고, 땅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약육강식 경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공사 따고 땅을 파는 낡은 경제' '운하를 파서 환경재앙을 만들어 내는 토목경제' '왜곡된 자본주의'로 현란하게 표현된다.

 

이것을 극복하는 핵심 전략이 '차별 없는 성장'이고, 그 비전이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인 '가족 행복 시대'이다. 차별 없는 성장은 '좋은 교육 기회, 완벽한 교육훈련 시스템, 평생학습 제도, 촘촘한 사회 안전망, 중소기업 강국의 토대위에서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내세우는 문국현도 주된 대립축은 정동영과 비슷하다. 문국현은 '양적 구조조정을 중시하고, 고용유연성을 추구하며, 양극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주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문국현은 11월4일 창조한국당 후보 지명 대회 직후 단일화 관련 기자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이 반신자유주의 임을 다시금 명확히 하였다.

 

"역시 중요한 것은 가치와 정책, 비전의 차이……(정동영.이인제 후보는) 아직 신자유주의에 빠져서 비정규직과 실업이 왜 늘었는지 모르고 있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오마이뉴스, 2007.11.5)

 

더불어서 문국현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를 단호히 응징하지 못하고 사회적 특권계층에게 물렁한 법치(부정부패 사회)와 평생학습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줄이고 산재의 주범인 '과로 사회'를 설정하고 있다.

 

결국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은 신자유주의를 주된 대립축으로로 설정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외눈 안경'의 폐악

 

한국 사회는 너무 과도하고 가혹한 시장과 너무 과소하고 온화한 시장이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독특한 체질이다. 전자는 신자유주의 시비의 근거이고, 후자는 좌파정권 시비와 '줄푸세'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기강과 질서는 세운다는 박근혜의 핵심 구호)의 근거다.

 

너무 과소하고 온화한 시장은 진보와 보수 기득권 집단과 '생선가게 지키는 고양이' 격인 공무원(정치인과 관료)이 공모하여 만든 것이다. 너무 과도하고 가혹한 시장은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 편향적인 게임규칙 탓도 있지만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 경제의 발전, 과학기술혁명 등 우리가 관리 통제하기 힘든 요소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그래서 정통 진보적 해법(사민주의적 해법)도 정통 보수적 해법(신자유주의적 해법)도 적용하기 곤란하다.

 

어쨌든 세계화, 지식정보화, 개방화, 경쟁의 격화, 소비자 선택권의 확대, 공급자간 격차의 확대, 개인주의, 양극화(?) 등은 방어와 완충의 대상이긴 하지만 공격과 분쇄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승자독식주의, 시장만능주의, 경쟁력 지상주의'는 그 실체도 모호하지만, 그 뿌리 역시 1997년 보다는 훨씬 오래 된 뒤틀린 역사가 만든 한국 특유의 문화 현상이다. 이 역시 공격과 분쇄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결국 진보와 보수 기득권자 편향적인 게임규칙의 합리화를 외면하면서 아무리 분노에 찬 언어로 신자유주의를 성토한다 해도 결국은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한계 때문에 제대로 구축되지도 않을 공적 사회안전망 관련 해법 밖에 내 놓을 것이 없다.

 

따라서 오랫동안 강자의 횡포와 상식의 훼손(특히 불합리 할지언정 정해진 게임규칙 자체를 지키지 않는 범법행위)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에너지를 등에 업고 강력한 공격성과 개혁성을 발휘해온 민주개혁진보는 신자유주의라는 '외눈 안경'을 끼면서 공격성을 급격히 잃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문국현은 4조2교대제라는, 진보가 '타는 목마름으로 찾아 헤매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적 해법'을 제시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구현만 된다면 기업 이해관계자들 그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이 해법은 보통 사람들이 시골 시장 좌판에서 종종 만나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이게 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의 직관은 대체로 정확하다)

 

민주개혁진보의 공격성과 개혁성이 떨어진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각종 불의에 대한 강력한 공격성을 발휘해 온 노무현 대통령의 신통치 못한 지지율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여 계승. 발전시켜야 할 합리적 핵심(반칙, 특권, 기회주의, 권위주의 척결 의지와 진정성 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진보, 보수, 공공부문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회적 강자들이 화전민적, 도적떼적 성향을 강하게 띠고, 헌법, 선거법, 조세, 재정, 보건의료복지, 공무원 관련 법과 제도 등 불의한 구석이 너무나 많아서 파괴하고 창조할 것이 너무나 많은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차별 없는 성장, 가족행복시대'라는 주적이 모호하고 방어적인 구호를 고창한다면 스스로 역사 창조의 주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주도자들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로 자리 매김하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를 '기업 이윤 증대를 위해 사람 자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조'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중심 진짜경제' 역시 이미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들에게만 솔깃한 구호일 뿐이다. 사실 4조2교대제는 본질적으로 1980년대 후반 현장 활동가들이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투쟁을 조직해서 '사람존중. 근로조건 개선-기술혁신-매출. 이익 증대'라는 선순환을 일으킨 사례와 유사하다. 한때는 많이 유효했고, 지금도 유효한 곳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화하려고 하면 폐악이 더 커지는 해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외눈 안경만큼 한국의 민주개혁진보 세력에게 유해한 이데올로기는 없을 것이다.

 

정형근과 이회창에게 배워라

 

어느 나라나 집권을 넘볼 수준에 다다른 진보와 보수 정치세력은 상대방의 합리적 핵심 중 수용 가능한 것을 재빨리 수용함으로써 지지기반을 확장하거나 적대적 지지층을 감소시킨다. 최근 강경한 반북 단체들로부터 계란 투척세례를 받는 쇼(?)를 연출하면서까지 한나라당의 대북 정책을 전격적으로 변화시킨 정형근 의원의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 시도로 인해 '평화'라는 오랫동안 진보가 독점한 가치의 호소력이 많이 떨어졌다. 정형근이 한 시도는 '제3의 길'이나 '신중도'를 표방한 유럽 정치세력들에게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은 전격적으로 수용한 보수의 합리적 핵심 가치가 있는가?

 

정동영은 '가족 행복'이라는 전통적으로 보수가 선호하던 단어는 빌려왔다. 그러나 그것을 떠받치는 세부 정책은 대체로 전통적인 진보 정책 일색이다. 아무리 복지를 투자개념으로 보고 약간 공세적인 복지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정말 '가족 행복'이라는 단어만 빼놓고는 이명박, 이회창에게 합쳐서 60~70%의 지지율을 가져다 준 보수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문국현은 사람중시-고용안정-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전통 진보 가치에다가 경쟁력과 생산성(매출이익 증대, 기술혁신, 노동시간 단축, 고용증대 등) 향상이라는 보수 가치를 결합시켜 약간 신선한 퓨전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들끓는 증오와 분노와 짜증 에너지(아마도 가장 강력한 것은 반칙=부정부패, 특권일 것이다)의 일부만 끌어다 쓰고 있다. 물론 일자리 500만개 창출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는 핵에너지가 되겠지만 실현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인정받을 수가 없다.

 

이회창 출마선언문을 보면 대북정책, 외교정책, 좌파정권에 대한 상투적 시비도 있지만(그래서 정치적 색맹임을 과시하였다), 실제 평범한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을 만한 얘기는 '시도 때도 없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도심의 도로를 점령하여 교통마비를 가져오고, 대한민국 군인들을 공격하거나, 젊은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엄단하겠다'는 것, '큰 소리와 떼쓰기가 활개치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일이 바보짓이 되고, 거짓과 변칙이 유능한 것으로 통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 정도이다.

 

민주개혁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과거 군사독재의 부활을 예고한다고 길길이 뛰지만, 사실 박근혜, 이회창, 이명박 등 보수 정치인들이 모두 중시할 정도로 국민적 공감대가 넓은 가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문국현은 거의 흡수하지 않는 가치이다.

 

이명박 등 한국 보수 정치세력의 대표 주자들은 대체로 너무 과소한 시장을 문제 삼긴 하지만, 6월 항쟁과 7~8월 투쟁의 유산인 진보 기득권 집단과 그 사상적 경향성만을 문제 삼을 뿐이다. 너무 과소한 시장을 만드는데 일조한 재벌, 사학, 종교, 토건, 부동산 불로소득자, 한나라당 직능조직이 대부분 포괄하고 있는 공급(경쟁) 제한 장벽을 쌓은 전문직,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하는 유무형의 강력한 규제권과 재정 할당권을 행사하는 마피아화된 관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별로 없다. 한마디로 보수 도적떼의 대변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국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체감하고 때로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정치사회적 실체의 일부, 즉 교통과 행정 집행을 방해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진보 기득권 집단, 대단히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집단, 비대한 공공부문, 과도한 규제 세력 등을 정조준하고 있다.

 

'줄푸세' 와 '선택집중 전략'(개발 드라이버)과 '유능'(?)으로 집약된 보수의 합리적 핵심 가치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은 것은 민주개혁진보가 내세우는 가치; 시장폭력 완충, 개인.가족에 대한 국가.사회의 높은 책임성, 절차적 민주주의,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 원칙과 신뢰, 이해관계자의 공동 지배, 공정성과 도덕성 등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때때로 반동적 이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이명박, 이회창 등은 한국 사회에 들끓는 분노와 증오 에너지 중 50%(진보와 공공부문을 향한다)를 제대로 운용하고 있지만 정동영은 거의 운용하지 못하고 있고, 문국현은 반부패-공정거래 등을 내세워 30% 정도는 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동영과 문국현이 진보 혁신을 제대로 한다면 이 에너지의 100%를 운용할 수도 있다.

 

'신 진보' 선언을 하라!

 

한국의 민주개혁진보는 신자유주의라는 문제인식 틀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망조를 피할 수 없다. 평등 구현과 격차 줄이기만큼 합리적 불평등의 구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망조를 피할 수 없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성 강화만큼이나 개인 자율. 책임성과 시장원리 강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망조를 피할 수 없다.

 

기강과 질서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 기득권 집단과 각종 특권이 즐비한(예컨대 공무원 연금 등) 공공부문에 대한 분노와 짜증 에너지를 직시하고 현명하게 운용해야 한다. 대통령은 5년, 국회의원 등은 4년마다 심판을 받는 계약직 노동인데 왜 권능이 막강한 고위 공무원은 무기 계약직 노동인가? 철밥통들에게는 지금 보다 낮은 처우를, 몇 년 마다 심판을 받는 계약제들에게는 높은 처우를 보장해야 불평등이 합리적인 것 아닌가?

 

격차를 늘려야 할 곳에서 격차를 늘리지 못하면 격차를 줄여야 할 곳에서 격차가 잘 줄어들지 않는다. 구부러진 동전의 앞면은 그대로 두고, 뒷면을 펴려고 하면 잘 펴지지 않는다. 따라서 '패자부활전'만 얘기 할 것이 아니라 그 전제 조건인 '승자재신임전'을 얘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종신정년 교수를 엄격히 심사한 KAIST 서남표 총장의 정신과 방법을 받아 안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 강자의 경쟁, 약자와 복지를 위한 실력주의와 시장주의를 선언해야 한다. 아무리 허접해보여도 보수 가치에 대한 높고 안정된 지지는 언론의 농간 탓도, 국민의 착각 탓도 아니다.

 

정형근과 이회창에게서 배워야 한다. 정동영, 문국현은 탈 진보, 신민주개혁진보 선언을 해야 한다. 지지율을 올리는 1단계 로켓이 정통 진보 가치라면, 2단계 로켓은 '탈진보' 혹은 '신진보'의 가치이다. 진보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보수의 합리적 핵심 가치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대호 기자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2001년 사회평론) '한 386의 사상혁명'(2004년 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년 백산서당) 의 저자로 현재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탈 진보,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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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 소장(2005) 전 대우자동차기술연구소 차장(2003)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2009) '희망한국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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