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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의 외손자인 가와노 다스미 씨(왼쪽)와 그의 손자 나리타 진씨. 이들은 7일  명성황후의 거처였던 건천궁과 묘소인 홍릉을 찾아 참배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의 외손자인 가와노 다스미 씨(왼쪽)와 그의 손자 나리타 진씨. 이들은 7일 명성황후의 거처였던 건천궁과 묘소인 홍릉을 찾아 참배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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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복궁 내 명성황후의 거처였던 건천궁에 특별한 일본인 손님들이 찾았다.

한 축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이다. 이들은 일본내에서 명성황후을 시해한 후손들을 찾아 다니며 십수 년째 진실찾기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축은 건천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의 후손이다. 가와노 다스미(86·
일본 쿠마모토현 거주)씨는 1895년 건천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 '구니토모 시게아키'(1861~1909)의 외손자다.

구니토모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모자 중 한 사람으로 당시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의 지시로 명성황후 시해를 위한 '특별부대'를 조직하고 시해 당일에는 '특별부대원' 들을 끌고 들어가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데 적극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기 전에 건천궁에서 용서 빌고 싶었다"

가와노씨는 최근 몇 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명성황후의 묘소인 홍릉(洪陵)를 찾아 외조부가 저지른 일을 참회해 왔다. 그는 이 날도 "죽기 전에 꼭 복원된 건천궁에 와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가와노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생전에 다시 건천궁과 홍릉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옆 자리에 앉은 손자에게 몇 번씩 눈길을 보냈다.    

가와노씨의 이번 참회 방문에는 손자인 나리타 진(30)씨가 동행했다. 가와노씨가 혈육과 동행한 것은 처음이다.      

손자와 함께 온 이유를 물었다. 그는 "아마 내가 몸이 불편해 걱정이 돼 따라 나선 것 같다"고 답했다. 손자에게 명성황후와 외조부의 죄상을 알려 준 적 있느냐고 되물었다.

"설명은 해 줬지만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역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걱정이다."

다시 손자인 나리타씨를 만났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모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구니토모 시게아키(오른쪽). 가와노 다스미 씨의 외조부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모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구니토모 시게아키(오른쪽). 가와노 다스미 씨의 외조부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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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명성황후와 관련한 한국에서의 활동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어 자청했다. 일본에서는 전혀 언론에 보도가 안 된다. 부모님께는 할아버지를 부축하기 위해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나리타씨는 "3년 전에 할아버지로부터 명성황후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다"며 "많이 놀랐고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인의 심정과 할아버지의 마음을 보다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며 "할아버지의 참회 활동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진정으로 존경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더라도 명성황후 묘소를 참배하는 일을 이어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손자의 속내를 가와노씨에게 전했다. 가와노씨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 "당연합니다"고 답했다.

세대간의 소통역할을 한 나리타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옮긴다. 인터뷰는 7일 밤 이들이 묵고 있는 서울 프라자 호텔 근처에서 이뤄졌다.

나리타씨 일행은 지난 6일 오후 문화재청과 한국관광공사, 에이콤인터내셔널이 마련한 '명성황후의 숨결을 찾아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했고 오늘(8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한다.

"'우리는 한 나라의 국모를 죽인 가계' 사죄하는 마음 배워야"

-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언제 어떤 경로로 알게 됐나
"3년 전 할아버지를 통해서다. 침술을 배우기 위해 할아버지 병원을 오가고 있는데 당시 자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 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고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명성황후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 당시 할아버지의 외조부가 저지른 일도 들었나
"그렇다. 할아버지가 우리는 한 나라의 국모를 죽인 가계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한국인이 용서해 줄 때까지 사죄하고 또 사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처음 들었을 때 심경은 어떠했나?
"많이 놀랐다. 할아버지가 한국을 찾아 사죄하는 이유와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 할아버지로 부터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몰랐나
"전혀 몰랐다. 학교에서는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이 조선으로 출병했다는 정도만 배웠다. 일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그렇다."

- 부모님들도 말씀해 주시지 않았나
"부모님은 할아버지와는 달리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잘 모르고 있었고 아버지는 언급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3년 전 한국을 찾아 명성황후 묘소를 참배하기 시작한 이후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런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하고 있고 모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 다른 가족들은 할아버지 활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두 동생 다 관심이 없다. 다른 일가 친척들도 할아버지 활동에 무관심하다. 좋지 않은 아픈 상처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일가친척들... 상처 건드리려 하지 않기 때문"

가와노씨의 손자인 나리타 진
 가와노씨의 손자인 나리타 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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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할아버지와 동행한 이유는?
"한국은 초행길이다. 할아버지의 명성황후와 관련한 한국에서의 활동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어 자청했다. 일본에서는 전혀 언론에 보도가 안된다. 부모님께는 할아버지를 보조(부축)하기 위해 따라 가야 한다고 했다."

- 오늘 건천궁과 명성황후 묘소를 방문했는데 소감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인의 심정과 할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명성황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할아버지의 참회 활동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큰 소리로 밝힐 수 없지만 할아버지를 진정으로 존경한다. 다른 한편 모르는 게 많아 부끄러웠다."

- 할아버지께서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다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외에 참회 방문을 할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미혼이다. 결혼 후 아이들에게도 조상들이 연루된 일을 알릴 생각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더 많은 것을 알고 공부하고 싶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침술을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도 침술을 전공했다."


태그:#명성황후, #시해 자객 후손, #명성황후흫 생각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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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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