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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방송, 파업에 돌입하다

 

셔터가 내려진 정문이 스산하다. 현관에는 노조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고, 벽에는 요구사항을 적은 선전물이 붙어있다. 1층에는 조를 짠 조합원들이 밤샘 농성을 벌이며 앉아 있다. 벌써 열흘이 넘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JTV 전주방송지부(이하 전주방송노조)가 10월 26일 0시를 기해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전주방송 노사는 단체협약 협상이 벽에 부딪치자 지난 10월 초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조정마저 최종 결렬되자 노조는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했다. 30일엔 서울상경투쟁을 전개했고, 31일엔 사측과 한차례 교섭이 있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지난 5일부터 노사는 다시 실무협상을 시작한 상태다.
    
파업 열흘째인 지난 11월 4일, 저녁 9시에 전주방송을 찾았다. 파업 때문인지 건물 안의  공기가 무거웠다. 1층에는 밤샘농성을 하는 조합원들이 스티로폼을 바닥에 깐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벽에 붙여진 대자보엔 “김사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무거운 분위기의 1층을 지나 2층 노조사무실에서 전주방송노조 홍윤기 위원장을 만났다.

 

"수익만 강조하는 사장 퇴진해야"

 

- 노조의 가장 중점적인 요구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방송으로서의 역할, 공공성, 지역성을 강화하는 거다. 그 다음이 ‘노동조합 가입자격확대'라든지, ‘징계위노사동수'라든지, ‘근속수당지급'이라든지 하는 노사간의 내용이다. 노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주방송이 전북에 있는 유일한 민영방송으로서 지역민들에게 좋은 방송과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데, 단지 방송사를 돈벌이로서만 이용한다는 거다. 앞서 말한 두 가지가 복합적인 요구이긴 하지만 노조는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여론의 지지를 얻고 노조의 주장대로 공공성과 지역성을 지키기 위한 파업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지금까지의 전주방송을 먼저 평가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례는 뉴스를 녹화한다는 거다. 뉴스를 녹화해서 방송한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아침뉴스를 전날 저녁에 녹화해서 방송하는데, 이건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뉴스는 항상 생방송이 원칙이다. 현 김택곤 사장이 주장하는 것은 “전날 아이템과 다음날 아침 아이템이 같은데 생방송을 할 필요가 있냐”는 거다.

 

그건 잘못됐다. 방송사의 뉴스는 항상 생방송으로 진행되어야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바로 신속하게 뉴스를 내보낼 수 있는 건데 현재 전주방송의 아침뉴스는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망각한 처사다.

 

또 하나는 지역을 위한 다큐멘터리라든가 하는 지역중심의 프로그램에 굉장히 소홀하다는 거다.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게 아니다. 회사는 지난 3년간 11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 돈을 지역민들을 위해 쓰지 않고 30%를 주주배당에 썼다. 나머지도 지역방송을 위해 프로그램으로 재투자 되지 않았다.

 

방송위원회나 다른 곳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할 지 몰라도, 우리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투자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는 것. 심지어 매칭펀드 형식으로 돈을 받아와 회사에서 돈을 보태 제작해야 하는 경우에는 회사가 돈을 보태야 된다는 부담 때문에 자금을 반납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한 디지털 방송도 문제가 있다. 디지털 방송이라는 것은 HD 방송을 기본으로 하는데 회사에는 HD장비가 하나도 없다."

 

- 그럼 디지털 방송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건가?
"흉내만 내는 거다. SD방송용 데이터를 HD로 변환만해서 방송한다. 쉽게 말해 ‘뻥튀기'하고 있다. 실제 HD 방송 제작에 필요한 HD카메라나 HD VCR과 같은 장비가 하나도 없다. 이것은 지역민에 대한 서비스정신이 부족하다는 것 아니겠나."

 

- 그렇다면 이번 파업에서 노조가 얻고자하는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
"김택곤 사장의 퇴임이다. 김 사장 퇴임의 의미는 앞으로 전주방송이 지역방송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보는 거다. 현재는 우리가 민영방송이다 보니까 수익에 대해 초연하고 자유로울 수 없지만 지금은 (이윤추구가)너무 심하다. 방송사가 아무리 민영이라고 해도 방송으로서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도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전주방송이 정말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제대로 된 방송사가 되게 만드는 게 목표다."

 

-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제기한 전주방송의 문제가 김 사장의 잘못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건가? 김 사장의 퇴임으로 해결된다고 보나?
"일단은 그렇다. 김택곤 사장이 워낙 수익성 극대화만 강조하고 지역방송으로서 할 일을 너무 안했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현 김택곤 사장의 퇴임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다. 솔직히 우리들끼리는 '더한 놈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현재 김택곤 사장을 2년 8개월 동안 봐 온 상황에서 일단은 김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 공공성 확보는 자본과의 투쟁"

 

- 지난 ‘시사저널'노조의 파업 등을 보면 최근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는 싸움은 권력보다는 자본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언론도 산업으로서 자본의 영향이 크단 얘기다. 자본과 언론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언론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MBC나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실질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많이 독립이 됐다고 본다. 하지만 자본으로부터 독립은 되어 있는데 이들이 공영방송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느냐고 하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또 어렵다. 
 
민영방송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어렵다. 그렇지만 자본으로부터 독립이 안 되면 언론사로서 공공성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번 파업도 일종의 자본과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배주주가 너무나 많이 배당을 해가는 것이 파업의 내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전주방송 노조가 지향하는 '지역언론' 전주방송의 방향은 무엇인가?
"전주방송이 98년도에 방송 허가를 따면서 약속한 것이 있다. 지역성 구현,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 지역민에 대한 서비스. 뭐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실제로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전주방송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민방도 공통적으로 잘 안 되고 있다. 민영방송의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전주방송의 궁극적 방향은 정말 지역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문화가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를 하고 지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결국은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는 방송사가 되는 것이다."

 

- 우리 지역 다른 언론에서는 이 파업을 제대로 공론화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건 우리의 문제다. 우리가 이것을 계속 뉴스거리를 만들어주느냐 하는 건데, 처음엔 파업을 한다고 하니까 뉴스거리가 된다. 지난번 상경투쟁 때도 다른 언론사에서 뉴스를 실어줬다. 타 언론사에서도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뭔가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매일 만들어 나가기는 힘들다. 보도자료도 만들고 매일매일 뉴스를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런데 아직은 매일 뉴스거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어렵다."

 

- 11월 5일부터 진행될 실무교섭은 어떻게 전망하나?
"실무교섭이 시작되면 사측과 노조에서 각각 단체협상에 관한 안을 가지고 나올 거다.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쉽게 안 풀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해고 걱정보다 부정적 시선 더 힘들다"

 

- 현재 계약직을 비롯한 비정규직도 전주방송 노조 가입이 가능한가.
"전주방송노조가 98년 12월 21일에 창립된 이후로, 현재 계약직과 같은 비정규직은 가입을 못하게 되어 있다. 노조 가입조건은 회사마다 다른데 전주방송은 아직 비정규직이 포함되지 않는다. 제일 좋은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같은 노조에 가입되는 거다. 현재 노조 단체협상안에 비정규직은 가입 못한다는 항목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을 개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이 이번 단체협상안에는 없지만 추후에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협상이 끝나면 2년 후에 다시 협상을 할 수 있다. 2년 뒤, 제가 연임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하겠지만 새로운 노조위원장으로 바뀌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전주방송에 언제 어떻게 입사했나.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나?
"97년 4월에 기술파트담당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기술국은 영상 음향 다 하는데 기술감독을 빼고는 다 해봤다. 노조위원장은 전임을 하기 때문에 노조위원장 취임 전에는 음향 쪽을 담당했었고, <뉴스&뉴스> <클릭! 이 사람> <시사진단> 등 대부분 프로그램들을 다 해봤다."
 
- 원래 노조에 관심이 있었나?
"노조가 처음에 생길 당시, 노조가 편성제작국 PD중심으로 편성이 됐다. 기술국에선 제가 주도가 돼서 그 때부터 쭉 노조 활동을 했다. 특별히 학교 다닐 때 운동을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특별한 계기 보다는 직장생활하면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면서 관련 서적들도 찾아보게 됐다.

 

- 노조위원장이라고 하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사측으로부터 가장 많은 압력을 받는 위치다. 부담스럽지 않나.
"부담감은 많다. 일단은 '내가 조합원 45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특히 지금처럼 파업을 하고 있으면 부담감은 더 크다. 하지만 전에 위원장 하셨던 선배님들도 다 하셨고, 저도 제가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다. 선배들도 보고 있고, 제 나이나 위치에 있어서 꼭 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하고 있다."

 

- 파업에 대해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집에 있는 아내나 부모님이나 많이 걱정들을 하고 계신다."

 

- 파업이 열흘째인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무엇보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고. 대부분 결혼도 했고, 가족도 있고. 특히 주변에서 파업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니까 힘든 면이 많다.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파업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으니 그게 가장 힘이 든다."

 

-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사실은 위원장 입장으로서는 파업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끝나면 좋지만 파업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적당히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 이번 파업이 시작되고 나서 전주방송은 아침뉴스가 방송되지 못하기도 하는 등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도민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된다. 이런 면에서 '노조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당연히 좋은 방송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은 도민들이나 시청자들께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이번 파업이 더 나은 전주방송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좀 더 좋은 방송을 보여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방송, #언론노조, #파업, #선샤인뉴스,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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