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의원 등)에게 주면 부담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 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줬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2003년 12월 12일 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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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정치인·판검사·금융계 인사 등에 대한 로비를 직접 지시한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회장 지시 사항'이라는 제목의 이번 삼성 내부문건 공개로, 삼성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파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3일 <한겨레>가 공개한 문건은 크게 두 가지. 지난 2003년 11월 12일과 같은해 12월 29일 작성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한남동 자택이나, 사장단 회의 등에서 지시한 것 등을 담고 있다.

당시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이 이같은 내용을 정리했으며, 그룹 핵심인사들만이 참석하는 회의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2003년 구조본 법무팀장으로 이들 회의에 참석했다.

이건희 회장 "호텔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에게 주면..."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보면, 정치인을 비롯해 판검사와 금융계 인사 등을 상대로 한 로비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나와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03년 12월12일 보광휘닉스 파크에서 "호텔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이 없지 않을까"라며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 볼것"이라며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주었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 회장은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추미애 전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준비를 하려고 할 때 (삼성이) 도와주려고 한 적이 있다"며 "그래서 제가 그러지 마시라고 심부름 오신 분한테 돌려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의를 받은 시점은 2004년 이전으로 상당한 액수였다"면서 "구체적인 시점과 액수 등은 추후에 밝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국회의원을 비롯해 판검사 등 사회지도층이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LG 덤핑에 대해 "기자와 교수를 동원해 여론 조성해보라"

사회지도층에 이어 그동안 삼성에 비판적이었던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에 대해서도 삼성이 전방위적으로 '관리'를 시도한 점도 보인다. 시민단체에겐 수십억원을 지원하거나 언론에 대해선 '광고'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 회장은 2003년 10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참여연대 같은 NGO에 대해 우리를 타겟으로 해를 입히려는 부문 말고 다른 부문에 대해서는 몇십억 정도 지원해 보면 어떨지 검토해 볼 것"이라고 지시했다.

또 같은해 10월 18일에는 "<한겨레>신문이 삼성에 악감정으로 쓴 기사를 스크랩해 다른 신문과 비교해 한겨레 쪽에 보여주고 설명해 줄 것"이라며 "이런 것을 근거로 광고도 조정하는 것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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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앞.(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경쟁회사들의 마케팅에 대해서는, 언론과 교수를 동원해 삼성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LG가 해외에서 덤핑을 일삼는다 하는데, 제대로 하면 몇조 이익이 날것으로 국가적으로 손해고 전부 같이 망할수도 있다는 여론을 만들어 볼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제 담당 기자나 교수를 시켜, 삼성과 LG를 비교해서 홍보하고 이같은 여론을 조성하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같은 로비 방식은 충격적"이라며 "삼성 대외로비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룹총수가 직접 이를 구체적으로 지시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삼성 "현재로선 문건 자체를 확인할수 없다"

삼성그룹은 이같은 내부문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확인을 거부했다. 삼성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대해선 처음 보는 것이며, 그 출처에 대해서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내부에선 비자금 조성 의혹이 이건희 회장으로까지 번지는 것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내부에서도 그같은 문건에 대해 확인을 해보고 있다"면서 "김 변호사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주장 등이 제대로 된 검증이나 여과없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오는 5일 삼성 비자금의 사용처 등에 대한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었다.

삼성 로비지침 문건이 공개됨에 따라 사제단 쪽은 5일 기자회견에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나와 비자금 집행과 사용처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