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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1일 오후 6시 40분]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1일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이회창 전 총재에게 2002년 대선자금 진상의 공개를 요구하며 불출마를 강하게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이 총장이 이명박 후보와 상의도 없이 사견을 얘기했다"며 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당 살림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이 총장의 정치적 비중을 생각하면, 한나라당이 사실상 이 전 총재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방송사 여론조사, 이명박 이어 2위

 

따라서 1일 저녁에 보도될 예정인 일부 방송사들의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이 전 총재가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대선 정국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방호 당 사무총장은 1일 오후 "이 전 총재가 이명박 대통령후보에 이어 대선주자 2위로 올라섰다"는 MBC와 SBS의 여론조사 결과가 알려진 뒤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방송사 기자로부터 저녁 뉴스에 보도될 여론조사 수치를 전해들은 이 총장은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이 총장은 "얼마나 좋은 여론조사 결과냐? 지금 투표하면 우리가 이기는 결과 아니냐?"고 평했지만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MBC의 10월30~31일 여론조사의 경우 이 전 총재가 출마하면 22.4%를 얻어 이명박 후보(40.3%)에 이어 2위로 급부상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 후보의 측근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명박 지지율은 45%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해왔는데, 이회창 출마가 현실화되면 이 후보의 지지율이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이 총장은 '본론'에 앞서 2003년 대선정국 당시 이 전 총재의 기자회견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 뒤 "당시 이 전 총재는 대선자금과 관련해서 국민과 당원들에게 죄인임을 스스로 얘기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고 상기시켰다.

 

이 전 총재의 이흥주 특보가 "대선자금은 한나라당과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당시 사건이 이 전 총재가 가장 무겁게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총장은 "두 번의 대선 패배로 10년간 좌파정권의 고통에서 힘들게 했던 총재가 대선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는 상황"이라며 "후보를 두 번이나 했던 총재의 애매한 행동이 당을 힘들게 하고 55%의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지은 죄 언제 사면받았나"

 

이 총장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대선후보를 두 번이나 했던 이 전 총재의 애매한 행동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55%의 국민들과 당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이 전 총재는 나라와 당을 걱정하고 당원 동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라. 당을 아끼던 전직 총재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 달라. 만에 하나, 대선출마 계획이 있다면 하루빨리 밝힘으로써 떳떳하게 정치를 하시라. 그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국민에게 죄인이라고 했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당원들에게 지은 죄를 언제 사면받았는지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이 총장은 "내가 최병렬 전 대표를 가까이에서 모실 때, 이 전 총재의 대선자금에 대한 일련의 내용들과 제공받은 정보를 깨알같이 적은 수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며 "최 전 대표가 수첩을 공개해서 대선자금 사건의 진상을 공개해주기 바란다. 이 전 총재는 이런 모든 일들을 치유하는 과정을 겪고 나서야 후보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장에 따르면, 최 전 대표가 "국민들이 이런 내용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얘기할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2003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전모가 이 수첩에 들어있다는 얘기인데, 수첩이 공개될 경우 이 전 총재는 물론 한나라당까지 '제2의 대선자금' 파동에 휘말릴 정도의 폭발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 총장은 "설사 당이 타격을 받더라도 이미 석고대죄했는데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 다 청산하고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수첩에 박근혜 전 대표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하면 한나라당 지지층이 분열해 대선 승리가 쉽지 않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당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대선자금 폭탄을 사용해서라도 이 전 총재의 대선 행보를 가로막아야 한다는 당 지도부의 절박한 속내가 수면위로 떠오른 셈이다.

 

"여론조사, 작전세력이 몰려든 결과"

 

이 총장의 얘기는 다시 방송사 여론조사로 돌아갔다.

 

"지금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기억으로, 지난 2~3월에는 이회창 지지도는 3%였다. 그런데 조금 전 MBC 여론조사를 보니 이회창이 (대선 판에) 들어오면 정동영의 지지도가 평소에 나오던 것에도 못 미친다.

 

이회창의 19%, 22%라는 여론조사 수치는 이회창이 본래 가지고 있던 3%에 아직도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는 일부 박근혜 지지자들 그리고 정동영을 지지했거나 이회창이 출마하면 (범여권이) 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의 역선택이다. 작전세력들이 대거 몰려들어서 생긴 결과다."

 

이 총장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이 전 총재가 상당히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결과다. 이런 조사 결과에 심취되는 것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회창이 출마한다면 후보단일화를 하겠냐"는 물음에 "그게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보니 다 같이 나와도 우리가 이기지 않냐"고 단일화 가능성마저 일축했다.

 

이 총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지 약 1시간 후 박형준 대변인이 당사 기자실을 찾았다.

 

이명박 후보가 이 총장의 발언 내용을 전해들은 뒤 "그런 일이 있었냐"고 의아해했고, 이 전 총재와 정권교체의 길을 함께 간다는 기조에도 변함이 없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박 대변인 "당내 협의없는 사견일뿐"

 

박 대변인은 "누군가는 짚어야 할 것 같아서 사무총장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지만, 후보와 상의한 적도 없고 당내 협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도 "이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할 선대본부장, 선거책임자로서 두고볼 수 없었다. 대선에 도움이 되지않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의 측근(이흥주 특보)이 양측의 갈등 책임을 자신과 이재오 최고위원에게 돌리는 말들을 하자 화가 나서 한 말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연말 대선의 실무 총책임자가 밝힌 '사견'치고는 그가 던진 말의 강도나 폭발력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 전 총재의 아킬레스건을 정조준한 이 총장의 발언으로 인해 이 후보와 이 전 총재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총장의 폭탄 발언으로 인해 한나라당의 대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점이다. 이 후보와 이 전 총재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지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태그:#이회창, #이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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