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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아그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졸라도, 나들이 가자고 아무리 졸라도, 이 못난 아빤 나들이 못 간단다.

아빠도 부럽다. 김밥이랑 과일이랑 그렇게 맛난 거 등짝에 짊어지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이다, 들이다, 억새구경, 단풍구경, 꽃 구경 가는 그들이 아빠도 무지 부럽단다.

하다못해 엎어지면 코 닿을 곳, 태화강변 지천에 널린 코스모스 꽃밭도 억새 풀밭도 가본다 가보자 했건만 기어코 기필코 못 가보고야 마는구나.

미안하다 사랑하는 내 아그들아! 아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도 아빤 너희들이랑 놀러 못 간단다.

왜냐하면 아빠는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토, 일도 없이 아빤 특근을 해야만 한단다. 일 있을 때 많이 해야 한단다. 돈이 없으면 당장에 생존의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아빠가 처한 피할 수조차 없는 냉엄한 현실이란다.

더구나 아빠는 하청이고 비정규직이다. 하루살이처럼 언제 어느 때 강제 해고당할지 모른다. 정규직이야, 원청이야 정년까지 고용보장이 되고 있지만 아빤 그런 거 없단다.

초등 5년과 7살인 너희들에겐 차마 못 할 말일 테지만 아빤 출근 때마다 속이 바짝바짝 마른다. 출근해서 원청 관리자가 불러도 하청업자가 불러도 겁이 덜커덕 난다. 혹시나 나가라는 거 아닐까? 혹시나 그만두라는 거 아닐까?

다행히 아직까진 별일 없지만 옆 공장에서 공장합리화니 경영합리화니 하면서 하청 노동자 고용계약 중도해지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음은 내 차례 아닐까? 그렇게 아빤 늘 고용불안에 휩싸여 지낸다.

아빠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을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한 달 400시간 넘게, 500시간 넘게 일해야만 겨우 생활비가 충당된다. 엄마는 그나마도 생활비 부족하다며 새벽같이 일어나 신문을 돌리러 나간다. 200 여부 넘게 돌리는 데 4시간 걸린단다. 그래서 받는 돈이 고작 30만원 선,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힘들어도 신문 돌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너희들은 엄마 신발 봤니? 오래된 신발은 밑창이 다 헤어졌더구나. 접착제가 힘이 없어 너덜너덜 거리는 데도 그걸 신고 신문을 돌리더라. 새 신발 하나 사 신으라니까 아직 신을만하고 돈 아깝다며 고집을 피운다. 그래놓고 너희들이 뭐 사 달라면 지체없이 다 사주더구나.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겠지.

미안하다 사랑하는 내 아그들아! 꽃구경도 단풍구경도 억새풀 구경도 못 가줘서….

금요일 저녁에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내일도 일 가?"
"응, 그래…. 그런데 왜?"
"아빠랑 놀러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토요일 밤에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내일 또 일 나가나?"
"응, 그래…. 그런데 왜…?"
"에이, 내일 아빠랑 놀고 싶은데…."
"그런데 아빠는 왜 맨날 일만 나가…?"


나는 우연찮게 아내의 신발을 보았습니다. 오래된 샌들이었습니다. 접착제가 삭았는지 앞쪽이 벌어져 너덜거렸고, 한 짝은 끈이 떨어졌는지 묶여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신발을 신고 신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신발이 신문 돌릴 때 편하다고 했습니다. 새 운동화 하나 사라니까 아직 신을 만한데 왜 새 거 사냐면서 신경질을 부립니다. 그 돈으로 아들 딸 맛있는 거나 사주겠답니다. 참으로 알뜰한 당신….

오늘도 특근하려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합니다. 밖엔 비가 내렸는지 축축하고 서늘합니다. 그래서 옷을 두텁게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옷을 두텁게 입었는데도 왜 이리 옆구리가 시릴까요. 왜 이리 가슴이 얼음장 같을까요.

오늘 저녁 퇴근할 때 아내가 용돈 하라고 준 돈으로 아내 새 운동화 한 켤레 사들고 가야겠습니다. 싸구려 만 원짜리라도….

덧붙이는 글 | 가족은 특별한 인연 같습니다



태그:#아내, #아들, #딸, #가족,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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