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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여전히 찌푸려 있다. 가랑가랑 뿌리는 빗방울 사이로 따오푸를 이별하고 천장 북로의 둘째 날 여정이 시작되었다. 동부 티베트는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가 우기라고 하는데, 라싸까지 가는 동안 계속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더구나 험준한 산길에 토사가 흘러내려 길이라도 막아버린다면 길이 뚫릴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든지 왔던 길을 되짚어 천장남로로 우회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벌써 차는 따오푸 외곽을 벗어나고 있다. 이곳의 산은 산이 아니다. 나무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고산의 산은 마치 잘 다듬어진 초원이다. 그 야트막한 초원에는 티베트인들의 주식인 참빠(보리)가 한창 누렇게 익어가고 그 가장자리엔 양떼와 야크가 풀을 뜯고 있다.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정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풍경이다.

외곽을 빠져나오자마자 차는 또다시 우리를 협곡 속으로 몰아넣는다. 산 중턱엔 티베트인들의 전통적인 가옥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협곡의 가운데로는 검붉은 강물이 굽이굽이 티베트인들의 간고한 삶을 껴안고 흐르고 있다. 협곡 속에 갇힌 채 흐르는 강물과 나란히 두 시간여를 달리던 일행이 루후오(爐霍)에 도착한 것은 9시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루후오는 따오푸에서 시작한 협곡이 가다가다 지친 곳에 만들어진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깐즈(甘孜)로 가는 길과 쓰다(色達)로 향하는 길이 갈리어지니, 이 루후오는 천장북로상의 교통의 요충지라 할 만하다. 시내 중심가에는 상가들이 주로 밀집해 있고 민가들은 대부분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산 중턱 중앙에는 수령사(壽靈寺)라는 사원이 있어 많은 승방들을 거느리고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령사는 1650년에 세워진 후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훼손되어 1983년에 중건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시내를 통과하면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또다시 협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길동무라도 하자는 것인가. 도대체 이 골짜기는 언제까지 우리를 따라오려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였다 안 보였다 30분여를 달려 따라오던 강물을 겨우 떼어놓고 우리 일행이 탄 차는 방향을 바꾸어 다시 산을 기어오른다. 한참을 오르다 돌아보니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우리를 배웅하고 있다. 몹시도 무료했던 모양이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통메이 파스(고개)의 정상 초원엔 노랑 빨강의 작은 꽃들이 점점이 초록 양탄자를 수놓았다. 양탄자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정도로 고산의 초원은 풀들도 키가 작은 이끼류의 풀이다. 밟으면 푹신푹신한 풀밭이 끝없이 트인 초원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다.
 
그 초원에는 지금 라마승들과 원주민들의 소풍놀이가 한창이다. 가만히 보니 스님들은 단순한 소풍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연세가 지긋한 노승들은 한쪽에 따로 천막을 치고 차와 담소를 즐기고 있고, 그 곁에 다소 큰 천막 안에는 젊은 스님들이 한창 토론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일종의 야외 법회라도 개최하고 있나 보다.   
 


스님들의 무리와는 좀 떨어진 곳에는 이 근처 마을에서 온 듯한 원주민들이 풀밭에 앉아 소풍을 즐기고 있다. 우리 일행이 다가가자 흔쾌히 우리를 맞아 주었다. 원주민들의 소풍은 참으로 소박하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해바라기 씨가 촘촘히 박힌 과자를 내놓는다. 그들 앞에는 몇 병의 음료수 그리고 장작불 위에 수유차가 끓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가져온 소풍 음식 전부이다. 그 흔한 술 한 병 없이 즐기는 그들의 소풍은 말 그대로 소풍(逍風)인 셈이다.

 

야크 버터를 주원료로 만든다는 티베트인들이 즐겨 마시는 수유차는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다. 펄펄 끓는 솥단지를 열어 긴 국자로 떠서 먹은 수유차는 소금 간이 된 듯 짭짤한 맛이 난다.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디키(dickey)는 이곳이 자기 어머니의 고향이라며 자신도 어린 시절 이런 초원에서 곧잘 소풍을 나왔다고 한다. 다소 들뜬 목소리다.

 

비록 대접받은 것은 과자와 수유차가 전부였지만 따뜻한 인정에 취한 탓일까,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값지다. 헤어지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을 우편으로 부쳐 주겠다고 하자 수첩을 찢어 주소를 적어준다.

 

소담스런 그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고개를 내려오는 길에 왠지 자꾸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구가 입에 맴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내세에서의 삶을 의심하지 않는 그들, 언젠가는 하늘로 돌아가리라 믿는 그들, 그래서 마지막 육신의 찌꺼기까지 천장(天葬)을 통해 하늘에 보시하는 그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미치자 티베트인들의 소풍은 마치 하늘로 돌아가기 전에 그들이 누리는 지상의 잔치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돌아온 후 바쁜 일상을 핑계로 한 달도 훨씬 더 지난 후에야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우편으로 부쳐 주었다. 우체국 문을 나서며 나는 그 사진이 그들의 지상 소풍이 끝나는 날까지 소중한 인연의 끈이 되기를 빌었다.

 

작아산 마루에서 옴마니 밧메홈

 

12시 30분, 점심시간에 맞추어 깐쯔시에 도착했다. 깐쯔시는 동티베트의 전형적인 도시로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이며 특히 동충하초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이곳 역시 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시내를 가로질러 물이 흐르고 있다.

 


우리 일행은 시내 초입에 있는 작은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시내 구경을 할 생각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깐쯔시는 어제 우리가 묵었던 따오푸보다는 도시의 규모가 훨씬 크다. 대로변을 중심으로 양쪽에 회색빛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길거리에는 붉은색 가사를 걸친 라마승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시주를 다닌다기보다는 상점을 기웃거리며, 사원에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고르기도 하고 흥정도 하는 것으로 보아 깐즈시의 일상의 모습이 이러한가 보다. 수레에 과일을 싣고 노점을 하는 과일 장수와 실없는 흥정을 해 보기도 하고, 가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디키(dickey)가 멀리서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고 있다. 빨리 출발하자고 한다.

 


깐쯔시를 출발한 일행은 3시간여를 달리다 마니깐꺼(馬尼干戈)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1호 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3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민가가 겨우 서너 채에 불가했는데, 그사이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마니깐꺼는 청해성으로 가는 길과 사천성 성도로 가는 길 그리고 참도를 통해 티베트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형성된 마을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역참(운송역)과 같은 기능을 가진 소읍인 셈이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마을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어느 마을에 와있는 기분이다. 휴식을 하는 잠깐 사이 마을 골목길을 찾아들었더니 가는 곳마다 개들이 짖어댄다. 얼마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개 짖는 소리에 오금이 저리다.

 


마니깐거를 벗어나자 멀리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운 산들은 모두 초록 일색인데 그 초록 사이로 멀리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설산이 수줍은 듯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설산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대면하려고 발길을 재촉해 고개를 오르면 설산은 꼭 그만큼 달음질을 친다. 설산과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숨고 찾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작아산(雀兒山, 취얼산) 기슭을 기어오르고 있다.

 


작아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구절양장이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칭칭 감고 있는 길은 지금 하늘에 걸려 있다. 아찔한 높이의 길이다. 차도 숨이 차는지 굉음을 토해낸다. 5050m 작아산 정상, 천장공로상에서 가장 높은 고갯마루에 섰다. 때마침 티베트 원주민이 탄 차가 지나가면서 오색의 종잇조각들을 창밖으로 뿌린다. 옴마니 밧메홈.

 

덧붙이는 글 | 이글은 2007년 7월 19일부터 8월 7일까지 19박 20일 동안 전교조 인천지부 문화 답사 동호회 소속 교사 11명이 중국 사천성 성도에서 천장북로(차마고도)로 라싸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우정공로를 통해 네팔까지 답사한 기록 중 천장북로-라싸까지 7일간의 기록입니다


태그:#천장 북로, #티벳여행기, #라싸가는 길, #차마고도 , #천장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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