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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가정 방문해 토론식 독서 논술 그룹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의 신도시에서 말이지요. 아이들과 그룹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의 요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듣고 보게 됩니다.

 

수업하면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쓰러울 때가 많습니다. 학원순례에 지친 피곤한 아이들의 모습을 늘 보기 때문이지요. ‘초등학생 학원순례’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곁에서 직간접적으로 그들의 애로사항을 경험해보면 요즘 초등생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님을 실감합니다. 바퀴가 달려 질질 끌려가는 초등생들의 커다랗고 묵직한 가방, 그 속에는 학원 교재와 과제물이 가득합니다.

 

그룹 수업하는 1~3학년 친구들에게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미술, 바둑, 피아노, 한자, 검도, 합기도, 태권도, 생활체육, 수영, 발레, 논술, 통키타, 학교 특기적성교육(컴퓨터, 바이올린, 첼로, 오케스트라) 무용, 속셈, 로봇만들기, 기타 가정방문 학습지, 과외지도 등등.

 

일주일에 10군데 이상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생활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학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다닌다”고 답변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학원에 지쳐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즐기면서 학원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계적으로, 의무적으로, 엄마가 다니라고 하니까 수동적인 자세로 학원순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활하면서 가장 좋을 때가 언제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학원 빠질 때가 가장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학원들은 학원을 빠지게 되면 보충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보충은 정말 싫다고 합니다. 특히 영어학원 같은 경우 시간시간마다 테스트 해 정해진 양의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1시간 이상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너 시간 정규 학원 수업 후 한 시간 이상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하고 심지어 제 그룹 수업시간에도 다른 학원 숙제에 눈을 떼지 못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원숙제와 학교숙제로 잠 못 이루는 아이들. 몇 시에 자냐고 물었습니다. 11시, 12시에 잔다는 대답이 나왔고 그 중 1학년 학생은 새벽 1시 넘어 잘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오전에는 학교, 오후에는 학원 때문에 짬이 나질 않아 학원 숙제하느라 그렇게 늦게 잔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학교에서 독서 경시대회가 있어 여러 권의 책을 읽어내야만 하는 상황이라 학원순례 속 지친 아이들은 더욱더 지쳐가고 있습니다.

 

성남 신도시가 이 정도니 다른 신도시나 서울의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피곤한 초등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아침에 등교해 수업이 끝나면 밤중까지 학원을 순례하며 밤늦게야 피곤한 몸을 누이는 초등생들의 피곤함은 직장인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학원순례 때문에 피곤에 지친 그 학생들의 모습을 늘 봐왔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 보다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면, 마치 학원에 가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해 응석부리기도 자주 하는 귀엽고 깜찍한 아이들이 온갖 학원에 매여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 왜 이리 씁쓸한지요?

 

아래 사진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일주일 생활계획표입니다. 다니는 학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어 둘, 한자, 피아노, 독서 논술…. 이렇게 다섯입니다. 좀 널널한 편이지요. 그런데 학원숙제나 문제집 풀이 등 가정학습이 만만치 않습니다. 알고 보면 1학년 학생이나 2학년, 3학년 학생들의 일주일 생활 계획표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래 학생의 경우보다 조금 더 복잡한 정도지요.

 

아이들이 아마도 학원에서 해방될 날은 없겠지요? 학원 해방은 아이들의 소원이기도 하답니다. 엄마들이 조금씩 욕심을 버리면 그만큼 아이들은 편해질텐데요, 학원순례에 “지쳤다”는 표현보다는, 그 많은 학원들에 찌들어 생활의 의욕까지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들을 엄마들은 아시나요? 제가 직 간접적으로 살펴보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운동장을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원순례, #자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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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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