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며칠 전 새벽, 최근 석 달치 통장을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출이 몇 배 정도 많았던 것이다. 통장에 계속 잔고가 넉넉히 남아있으니 과다 지출이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석 달 전 빌려준 돈을 돌려받으면서 시작됐다. 그 돈이 고스란히 예금통장에 들어가면서 통장은 갑자기 '배부른 돼지'가 됐다. 그 때 여름휴가를 가면서 과다 지출이 시작됐고,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그 흐름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이광구 시민기자가 쓴 <내인생 첫번째 재무설계>
 이광구 시민기자가 쓴 <내인생 첫번째 재무설계>
ⓒ 더난출판

관련사진보기


만약 그 새벽 통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의 지출곡선은 통장 잔고가 '0'이 될 때까지 계속 급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이라곤 통장에 더 이상 빈 자리가 없어 재발급 받을 때만 찾는 내가 왜 갑자기 통장을 뒤적이게 됐을까. 바로 <오마이뉴스>의 이광구 시민기자가 쓴 <내 인생 첫번째 재무설계>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재무설계 관련 글을 쓰기도 했었다.

재무설계 전문기업 '포도에셋'에서 재무상담사로 일하는 이광구 기자는 이력이 독특하다. 10여 년 전 노동자협동기업 형태의 사업을 시작했다가 철저히(?) 망하고, 그 즈음 강화도로 이사해 서울 강남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아이 적게 낳는 게 대세가 된 지금 아이를 셋이나 낳았고, '공부 잘 할 필요 없다', '돈 잘 벌 필요없다'고 가르치는 독특한(?) 부모가 바로 이광구 기자다.

'재테크', '1억 모으기', '투자'와 같은 종류의 책을 바퀴벌레만큼이나 싫어하는 내가 이 책을 기꺼이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돈 버는 이들, 비밀은 바로 철학과 관리

"50대 초반인 박씨는 개원 17년째의 제법 성공한 의사다. 자녀 둘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건물(자산가치 13억원) 임대소득이 월 6백만원이고, 병원 평균 수입은 월 2천만원이다.…살고 있는 아파트는 시가 10억원이 넘고, 그 외 연금과 펀드를 비롯한 금융자산도 꽤 많다. 이렇게 넉넉한 생활을 하는 박씨지만 은퇴를 준비하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돈은 박씨가 벌지만 사실 호강은 부인과 자녀들이 한다. 전에는 자녀 둘이 부인의 카드를 함께 썼는데, 셋이 쓴 신용카드 대금이 8백만원이나 나온 적도 있다.…부인에게 주는 월 생활비는 1200만원이다. 박씨 본인은 150만원쯤 쓴다.…부부가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은퇴 후 자금을 계산해보았다.…그랬더니 생각보다 자금이 많이 모자랐다. 80세 이후에는 현재 주택을 시세 5억원대 아파트로 옮겨 그 차액을 사용하기로 했다.…그의 부인은 박씨와 생각이 달랐다.…가정의 평화를 위해 박씨는 미래의 은퇴자금을 포기했다." - P36

이와 같은 사례들이 이 책엔 가득하다. 책을 통해 이 시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박씨처럼 고소득자도 나오지만, 월소득 130만원 쯤 되는 간호사, 월소득이 270만원 정도 되는 10년차 부부, 월 매출액이 1억에서 1억8천만원 정도 되는 가게를 운영하는 37세 자영업자,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1억8천만원을 대출받은 대가로 매달 소득의 절반을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 40대 곽씨 등 여러 부류가 나온다. 그 속엔 나와 차원이 다른 사람이 있는 반면, 나와 비슷한 이들도 있다.

이들을 통해 알게 되는 큰 진실이 있다. 바로 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누구나 아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의 강도는 구체화된 사례를 통해 접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차이가 크다.

위에서 예를 든 박씨처럼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부를 갖고 있음에도 아예 노후대책조차 못 세우는 가정이 있다. 그러나 월 가정소득이 270만원에 불과하고, 물려받은 재산 한 푼 없지만 순자산이 2억 원이 넘는 10년차 부부도 있다.

그 비밀은 바로 관리에 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다면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잘못된 습관이 생기면 나중엔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반대로 적게 벌지만 제대로 관리하면 몇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즉 이 책은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돈을 갖고 어떻게 제대로 관리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가 월 소득이 1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상관없이 재무설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달리 말하면 돈 버는 노하우를 얻기 위해 책장을 펼친 독자라면 실망하게 되는 책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가정인 경우, 가장의 소득으로 인생의 재무계획을 차분하게 세우고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며 "오히려 남보다 더 많이 벌려다 탈나는 경우가 많다"고 충고한다. 그런데 저자의 마지막 말은 고치는 게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남보다 많이 벌려다 탈나는 경우도 있지만, '남만큼 벌려다' 탈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 비법,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 자기 생각과 생활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즐거운 사람이면 좋겠다. 남과 얘기를 차분히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지언정, 피해는 주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자동차 창밖으로 담배꽁초나 휴지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란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내가 버린 게 아니라고 해서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자기가 잘하는 걸 열심히 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다." - P15


글쓴이는 자기 경험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편하게 다가선다.
 글쓴이는 자기 경험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편하게 다가선다.
ⓒ 더난출판

관련사진보기


돈 관리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철학이다. 관리만 강조하면 '돈'만 남고 '사람'은 사라진다. 진정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내 삶을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자면 가족, 결혼, 직장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따라 돈에 대한 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인생 첫번째...>는 재무설계서이기도 하지만 보육과 교육, 그리고 주택을 다룬 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정 재무설계에 있어서 보육과 교육, 주택은 핵심사항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재무설계는 파탄이 날 수도 있고, 매끄럽게 갈 수도 있다.

글쓴이는 부부, 결혼, 자녀 문제 등 자기 경험담을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바를 던진다. 책엔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하는 막내 보리를 놓고 벌인 가족 회의, '부자와 꿈'에 대해 딸과 나눈 대화, 자기 힘으로 해외여행 경비 마련 계획을 세운 아들 온달이, 노동자협동기업 실패 후 쓴 반성문, 구로시장 골목길 자취방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 등 솔직한 경험담이 가득하다.

딸과 말다툼하다가 "어떻게 응징하지"라고 상상하는 부분이나 동문회에서 보내온 후원금 쪽지를 보면서 얼마를 내야할까 고민하는 대목, 친구 주유소에서 공짜 기름을 넣다가 자식에게 핀잔 듣는 글쓴이의 모습을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독자들 머리 위에서 가르치듯 내뱉는 정보가 아니라 '나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하며 다가오니 글이 훨씬 따뜻하다.

또한 이 책은 돈 버는 게 나 혼자 힘만으론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부부가 뜻이 맞아야 하고,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 더불어 생활정치도 중요하다. 정부 정책에 따라 개인의 노력이 얼마든지 헛수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면 흔들린다. 그래서 단결과 실천이 필요하다. 올바른 주택정책을 내세우는 사람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 뽑는 것은 어쩌면 그 가운데 가장 쉬운 실천일 것이다." - P183

돈보다 중요한 것, 건강·학습·취미생활·봉사활동

글쓴이는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고 이야기한다. '건강', '학습', '취미생활', '봉사활동'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도 배부른 사람 이야기지, 돈이 없으면 못한다'고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맞다. 하지만 위에서 예를 든 것은 돈을 제대로 쓰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람과 재미는 당연하고 돈도 적게 드는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다. 봉사활동을 하면 적게나마 활동비를 받거나 식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는 일이 있으니 돈 쓸 시간이 적어지게 된다." - P190

<내인생 첫번째...>를 읽다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행복'이란 단어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게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갖고 다시 책표지를 봤다. 역시…. 책 부제가 바로 '오늘 행복하고 내일 부자되는'이었다.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원리금균등분할상환, 세제적격연금펀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수익률, 청약저축 등 내겐 생소한 단어들과 각종 그래프들이 난무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이 '재무설계'를 내세운 '행복 안내서'였기 때문이다.


내 인생 첫번째 재무 설계 - 오늘 행복하고 내일 부자되는

이광구 지음, 더난출판사(2007)


태그:#이광구, #재무설계, #행복, #내인생첫번째재무설계, #재테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