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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의 상징인 성물은 인간이 우러러 보는 눈높이에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은 고정관념을 깨는 ‘작고 소박한 성물전시’가 있는 날, 우리의 시선 아래로 내려온 성물을 보러 갔다.

 

10월 15일 오후 6시 전주 바오로딸 서원의 개막식 전례에서 김봉술 신부는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며 말문을 열었다.

 

“흙은 나의 탄생이며 죽음이며 부활입니다.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성물이 본래 자리를 찾는 전시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예가 한미(데레사) 씨는 흙으로 성물을 빚듯이 소감을 말했다.

 

 “저는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친근한 작품을 고집해 왔습니다. 성물을 흙으로 빚으면서 예수님, 성모님, 성요셉 성인이 제단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분이 아니라 늘 가까이에서 지극하신 마음으로 나지막이 기도해주시는 우리네 부모님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자식이 넘어지면 달려와 일으켜 주시고 아파할 때 안아주시는 부모님, 그 사랑을 흙으로 빚어내고 싶었습니다.

 

수십 차례를 전시를 해 오면서 전시가 나 혼자만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정성과 사랑을 전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꽃을 꽂아주시고 한지에 국화를 그려주시고 다과를 준비해 주시는 그 손길이 전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과 사랑으로 전시될 때 작품의 감동이 두 배 세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소박한 그 정성과 사랑이 아름다운 감동을 연출하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작가 한미(데레사)씨는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설명했다. 작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개막식의 기쁨을 만끽했다. 첫 번째 작품 설명은 농아들을 양팔에 안고 있는 성모상이었다.

 

“흙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늘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물만을 빚고 있다는 못마땅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농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성모님께서 농아 아이들을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아니 우리 비장애인들보다 농아들에게 더 많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빚어낸 작품입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 발에 올려 있는 것은 서로 의지하며 산다는, 농아와 비장애인들이 서로 부대끼며 산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은 ‘돌아온 탕자’로 유명한 렘브란트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돌아온 탕자를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네 삶은 매일 매순간 돌아온 탕자의 삶인 것 같습니다. 탕자처럼 내 욕심과 이기에 사로잡혀 살 때가 많은데 우리는 그 삶을 반성할 줄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탕자처럼 살지 않고 아버지처럼 품에 안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빚어낸 것입니다.”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작고 소박하게 담아낸 성물전시 부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할멈  못난 것으로 주오’였다.

 

“최양업 신부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씨는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못난 것이나 흠집이 난 것을 샀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물건을 하나도 남김없이 팔 수 있으니까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많은 연민을 품고 있었던 아버지의 인품을 닮은 최양업 신부, 사목하는 동안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배려와 사랑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신앙선조들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의 신앙이 바로 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애잔한 눈길을 머물게 하는 ‘네가 깰까봐 가슴 조리며’라는 작품 설명이 종교와 우리를 반성하게 했다. 

 

 

 “제가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잠을 자지 않을 때 포대기로 업고 이렇게 잠을 재웠습니다. 우리 때문에 쉬지 못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쉬어드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를 업고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예수님도 눈을 부치시라고 만들었습니다. 몇 해 전 성당 마당에서 전시하고 있을 때 길을 가던 허름한 차림의 행인이 이 작품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베풀려면 예수님처럼 이렇게 겸손하게 베풀어야지. 교만한 종교들이 이 작품을 보고 깨달아야 하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하는데 제 가슴이 뜨끔했어요.”

 

다과회에서 송편 몇 개와 요구르트를 마셨다. 시골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올라 수녀님께 남은 송편을 싸달라고 했다. 서점 앞 인도에는 노점상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사과와 감, 호박과 도라지 등을 팔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있었다. 짐을 꾸려야할 시간인데도 물건들이 즐비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콩나물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생활지 무료 가판대에 살포시 등이 닿은 채 ‘콩나물 사요’ 호객하는 할머니와 소복하게 콩나물을 담고 있는 작은 바구니들.

 

“할멈 못난 것으로 주오!” 하며 물건을 산 최경환 할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히 울려 왔다. 콩나물과 작은 바구니들, 콩나물통과 노점상 할머니가 살아있는 성물 작품이었다. 소박한 삶처럼 아름다운 성물 전시가 어디 있을까?

 


태그:#성물전시,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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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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