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보였던 북한-시리아 핵협력설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이 의혹을 심층적으로 보도해온 <뉴욕타임즈>가 이스라엘이 공격한 시리아의 목표물이 핵시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도하고 나선 것이다.

 

14일자 <뉴욕타임즈>는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지난 9월 6일 시리아를 공격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위해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의 원자로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당장 북미관계 개선에 불만을 품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 등 대북강경파들의 반격의 빌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 기술이나 물질이 테러집단이나 반미성향의 국가들에게 이전되는 것을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일례로 부시 대통령은 작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이란과 시리아 이전을 포함해 미사일 기술을 확산시킨 주범인 북한이 핵무기나 기술을 확산시키는 것은 미국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고, 우리는 북한에게 철저히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뉴욕타임즈>는 부시 대통령의 이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이 시리아의 핵개발을 도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차질을 줄 것을 우려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스라엘의 공격목표는 시리아의 북한모델 원자로?

 

그러나 <뉴욕타임즈> 보도처럼 이스라엘이 공격한 시설이 핵관련 시설인지, 아니면 시리아 정부의 주장대로 일반적인 군사시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습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공습 사실만 확인해줄 뿐, 어떠한 구체적인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로부터 관련 정보를 넘겨받은 미국 역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모호성을 지키고 있다. 다만 양국의 일부 정보관리들이 <뉴욕타임즈> 등 일부 언론을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 보도 역시 오락가락하고 있다. 최초로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을 보도했던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는 "우라늄 농축 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할 상황이 오자, 이를 팔아치우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도 내보냈다.

 

그러나 10월 14일자 <뉴욕타임즈>는 이스라엘이 공격한 시설이 북한이 핵무기 제조로 이용한 것과 같은 모델의 원자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는 흑연감속로를 말한다. 이 원자로는 농축 우라늄이 아닌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한다. 특히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무기 제조로 사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이 용이하다.

 

이처럼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 언론의 보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처음에는 농축 우라늄 시설인 것처럼 보도했다가, 이번에는 공사 중인 원자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관리들이 흘린 얘기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증거 제시도 없는 상황이다.  

 

네오콘과 <뉴욕타임즈>의 합작품?

 

<뉴욕타임즈>가 앞장서 유포하고 있는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또 있다. 이러한 보도가 연이어 터지 나오고 있는 시점은 북미관계와 시리아를 중동평화회담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기된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은 북미관계 개선과 시리아의 평화회담 참여를 '동시에' 저지시킬 수 있는 유력한 카드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관리들이 공개적인 확인을 거부하면서 일부 언론을 통해 핵거래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은 미국-이스라엘 강경파들의 의도와 <뉴욕타임즈>의 특종주의가 빚어낸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온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생거 기자는 미국 언론계에서 "정보기관의 파이프라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보기관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특종 보도를 많이 해왔다.

 

대표적으로는 1998년 8월 17일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보도가 있고, 2004년 5월 23일, 2005년 2월 2일 잇따라 보도한 '북한의 대(對) 리비아 우라늄 물질 수출' 등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특종이었다는 금창리 의혹 시설은 '텅빈 동굴'로 판명되면서 오보가 되었고, 북한이 리비아에 우라늄 물질을 수출했다는 보도 역시 사실 확인이 안된 채, 흐지부지 되었다.

 

민감한 시기에 등장해온 '특종'

 

이에 따라 미국 내 일각에서는 생거 기자와 미국 정보기관 사이의 커넥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즉 중요한 시기마다 북미 대화 분위기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강경파와 특종을 갈구하는 생거 기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확인되지 않은 민감한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거 기자의 '특종'(?)은 민감한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98년 8월 17일 보도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핵개발을 했다'는 비난을 야기하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세의 빌미를 제공했다.

 

북한이 리비아에 우라늄 물질을 수출했다는 보도 역시 4차 6자회담의 개최를 위해 관련국들이 활발한 물밑 작업을 하고, 2기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점검하고 있던 중요한 시기에 터져 나왔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보도를 근거로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고, 북한은 그 해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악화되기도 했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내 강경파들이 10월 14일 <뉴욕타임즈>의 보도를 계기로 또 다시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을 강하게 문제삼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는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갖게 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상응조치로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종료를 추진키로 했다.

 

이러한 시기에 '북한-시리아 핵거래' 의혹이 증폭되면, 북미간의 2단계 합의 이행에 상당한 차질을 줄 수 있다. '북한이 시리아에 핵기술을 이전했다'는 의혹만으로도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지원국 해제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북한도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시리아 핵거래설'이 2차 한반도 핵위기를 야기한 고농축 우라늄(HEU) 의혹이나 9·19 공동성명 채택을 전후해 터져 6자회담을 좌초시킬 뻔한 방코델타아시아(BDA) 논란을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태그:#이스라엘 , #시리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