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간다.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간다. 길가에는 이미 수확이 끝난 밤 껍질이 수북하고 늙은 호박 하나가 가을햇살에 토실토실 익어간다. 속살이 드러난 투명한 어치계곡은 눈길만 닿아도 시름을 앗아간다.

 

하늘에는 흰 구름 피어오르고 다랑이논의 벼는 누런 황금빛이다. 백운산 억불봉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우뚝 솟았다. 백학동마을 입구 신황교의 시냇물소리 시원스럽다. 마을 집집마다 온통 감나무 밭이다. 주렁주렁 오지게 매달린 감이 빨갛게 가을빛으로 익어간다.

 

 

도선국사가 이름 지은 백학동

 

아름다운 절경 백운산 억불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백학동을 가리켜 도선국사는 학이 하강하는 물형과 황룡이 배를 지고 있는 물형으로 풍수해가 없는 선계의 땅이라 감탄하여 백학동이라 이름 지었다 전해진다. 수어댐에서 바라본 백운산 억불봉은 한 마리 학이 사뿐 내려앉는 모습이다.

 

억불봉은 보는 위치에 따라,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불상의 형태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형상으로도 보인다. 어치 지계마을에서 보면 바구리(바구니)를 되짚어 놓은 형상이어서 이곳 사람들은 억불봉을 가리켜 바구리봉이라 부른다.

 

전남 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광양시는 백운산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군과 이웃한 고을이다. 백학동은 행정구역상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황죽리, 어치리의 12개마을(비촌, 평촌, 탄치, 지계, 외회, 내회, 어치, 죽림, 신전, 웅동, 신황, 구황)을 합하여 일컫는 이름으로 500여 년 전부터 터전을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

 

예로부터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백학동은 맑은 수어호 위로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며 우뚝 솟은 백운산의 억불봉은 보는 이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한낮에도 이슬이 맺힌다는 시원한 오로대와 15m 높이의 장엄한 구시폭포가 있는 맑고 깨끗한 어치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와 숲이 잘 어우러져 있다.

 

특산물로는 백운산 기슭에서 자생하는 최고 품질의 밀시감과 대봉감을 깎아 백운산 고지대 청정지역에서 말린 백운곶감, 신비의 약수로 불리는 백운산 고로쇠, 백운 고사리, 매실과 밤, 단감이 많이 생산되며 두릅, 초피, 토란대, 표고버섯, 도토리묵 등도 많이 난다.

 

전통적으로 많은 유림을 배출한 백학동은 나라가 국난에 휩싸일 때 이곳 백학동에서 배출 된 황순모, 황병학 등의 의병활약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백운산의 백학동은 유교적 색채가 짙은 현실주의적 이상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적 정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뚝심으로 전국 304개 정보화마을 이끌어

 

백학동마을 운영위원장 조기옥(53)씨. 그는 전국의 304개 정보화마을을 이끌어가는 수장(정보화마을 전국운영위원장)이다. 정보화마을의 기틀을 만들어가느라 동분서주하는 그를 몇 차례의 전화 끝에 어렵사리 만났다.

 

조 위원장은 백학동마을을 비롯한 광양 관내 정보화마을은 타 시도에 비해 시의 관심도가 높아 활성화되어가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광양시의 지원으로 일본 견학도 예정되어 있다. 견학을 통해 포장박스 디자인과 판매망 확보, 홍보 등의 실질적인 운영의 묘를 배워올 계획이다.

 

올 연말(12월 7일~9일)에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제1,2전시관에서 열리는 정보화마을 직거래장터에 주생산품인 백운곶감, 밤, 고사리 등의 품목으로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백학동마을은 연차적으로 장기발전계획을 세워 자연친화적인 친환경체험과 공원조성, 황토방, 삼림욕장, 백운산자연생태공원을 만들어가는 게 그의 꿈이다.

 

신황마을 이장을 12년간 역임하기도 했던 조 위원장의 일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몸살이 날 정도로 밀어붙인다. 전라도식 표현을 빌리자면 ‘쎄(혀)가 빠지게 일한다.’ 정보화마을과의 인연은 올해로 5년째, 마을 주민들이 애써 수확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다 멍석을 깔아준 행정자치부의 정보화마을 덕택이라고.

 

백학동마을은 정보화마을 사이트에 곶감을 상품으로 올린 뒤 불티가 났다. 전자상거래로 대박이 난 것이다. 첫해에 9가구가 참여 8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무엇보다 보람된 일은 2006년에 백운산곶감 단일품목으로 5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이런 게 진짜 보람된 일 아니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백학동마을은 작목반별로 움직인다. 곶감 작목반 20가구, 고사리작목반 10가구, 매실작목반 10가구, 이렇게 3개 작목반을 운영한다. 이제 곶감 작목반은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척척 진행할 정도로 노하우가 생겼다. 곶감 작목반은 올해부터 검수원을 둔다. 철저한 품질검사를 통해 불합격품을 사전에 차단하고 검인이 있는 품목만 판매한다.

 

 

전자상거래는 믿음을 팔아야

 

전자상거래는 실물을 직접 볼 수 없으므로 믿음이 중요하다. 또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믿음과 신뢰가 깨지는 건 하루아침이다. 소비자와 함께 믿음을 쌓아가는 것은 철저한 품질관리다. 백학동마을의 농산물은 청정지역에서 한정 생산되므로 생산과 동시에 대다수의 품목판매가 이루어진다.

 

백운산 자락에서 고사리 꺾기, 매실 따기, 어치계곡에서 고기 잡기 등의 체험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요즘 유명세로 한몫하고 있는 백운산곶감은 조 위원장이 2000년에 처음 상품화했다. 처음 곶감을 깎아놓고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 암담해 한숨짓던 일이 엊그제 같다고 회고한다.

 

그는 곶감을 짊어지고 광양의 기업체와 관공서 등을 돌아다니며 홍보용으로 120상자를 돌렸다. 첫해에 80상자를 팔아 4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때는 5년 안에 돈벌이 할 생각은 아예 꿈도 못 꿨는데 정보화마을 덕분에 발걸음이 빨라졌다고.

 

상거래는 순간의 이익을 위해서 절대로 양심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조 위원장은 얘기한다. 또한 영업은 소비자가 설령 자존심을 건드려도 참고 인내하며 스스로 자신을 이겨낼 수 있어야 판매를 할 수 있단다. 노인에게 차 한 잔 대접했더니 구매로 이어진 일, 진짜 밤 꿀을 가짜라며 부추겨 그냥 먹으려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단다.

 

백학동 곶감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곶감과 달리 건조해도 크기가 작게 줄고 당도가 높다. 경남 산청 등지에서도 이곳 감을 사다 곶감을 깎을 정도로 알아준다. 백학동 골짜기 주변에 모여 사는 인구는 300여 가구 1천여 명이다. 젊은 층이 줄어드는 다른 마을과 달리 이곳은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곶감 건조장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곶감 완제품을 생산하는 집이 무려 50가구나 된다.

 

 

감이 주렁주렁 오지게 익어가는 마을

 

마을 정보센터 마당에서 할머니가 들깨를 털고 있다. 진한 들깨향이 진동한다. 마을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조방환(82)씨 댁이다. 감 밭 사이에 심어놓은 토란대를 베어와 다듬고 있다. 토란대는 다른 작물에 비해 물기가 많아 생토란대 30kg을 손질해 말려야 겨우 1kg을 얻을 수 있다.

 

마당 한편에는 벌레 먹은 밤을 말리고 있다. 좋은 것은 팔고, 벌레 먹은 것 중에서 쓸만한 밤을 골라 말려 황률을 만든다. 잦은 비로 인해 올 밤농사는 별 재미를 못 봤다. 설상가상 밤 가격마저 폭락해 가슴이 시리다.

 

길가 담장너머로 늘어진 가지마다 감이 주렁주렁하다. 감나무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대나무가 힘을 거들고 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감이 넘쳐난다. 공골댁(70) 할머니는 들깨 알곡을 선별하고 있다. 선풍기를 이용해 쭉정이를 날려 보낸다.

 

 

마당에는 대봉감이 한가득 익어간다. 행랑채 마당에는 바구니 가득 고추가 담겨 있다. 빨간 홍시감이 보인다. 직접 따와 맛을 봤다. 와~ 감의 달콤함에 푹 빠져든다. 온 집안이 감 천지다. 행랑채에도, 부엌 앞에도, 텃밭에도 ,뒤란에도, 돌담에도, 저 멀리 산자락에도 감나무다. 나무마다 감이 넘실넘실 매달려 있다.

 

구황마을 다리 위에는 알밤이 가득 널려 있다. 마을 회관 오른편으로 억불봉, 노랭이봉 가는 등산로가 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하다. 감나무 사이 텃밭에는 열무와 배추가 쑥쑥 커가고 울타리에는 석류의 붉은 열매와 아주까리 열매가 익어간다. 백운산이 산 그림자를 드리운 백학동 마을은 새소리 가을 풀벌레소리로 가득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큐, 인빌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백학동마을, #백운곶감, #백운산, #억불봉, #고사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