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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난 사람들'.
 

제목부터 눈길을 확 잡아끈다. 처음엔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 쯤으로 생각했다. "화제의 인물을 만나 인터뷰나 하겠지" 싶었다. 그도 그럴게 KBS 홈페이지 '뉴스'란에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의 메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말 '화가 난 사람들'이었다.

 

첫 화면(news.kbs.co.kr/special/digital/angry.html)엔 화가 나 얼굴이 붉어진 사람이 그려진 배너 광고가 걸렸다. 동그라미 안에 붉은 색을 칠한 얼굴이 다소 유치해 보이긴 하지만, 내용은 사뭇 진지하다.


화면 제일 위에 있는 9일자 동영상을 켰다.


"아니 니가 그럴 수가 있어? 니가 뭔데~" 음성변조된 목소리가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동영상 시작을 알리는 음악인 듯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제561돌 한글날. 그러나….' 깜깜한 화면에 흰 글씨로 새겨진 글씨, 주제가 한글날임을 알았다.


이어 흘러나오는 노래. "가나다라마바사~ 으헤으헤~" 가수 송창식의 '가나다라'다. 화면에는 우리말로 된 간판 여러 개가 겹쳐졌다 사라졌다.


다음엔 알파벳 송이 이어졌다. "에이비씨디이에프쥐이~" 뜻을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간판들이 어지럽게 영상을 수놓았다.


코미디언 변기수씨의 유행어 "아~니죠~"가 어색하게 두 번 반복됐다. '뭐야 이거-.' 밋밋했다. 그냥 'X'표시를 눌러 영상을 끄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참았다.


후훗-. 참길 잘했다. 이전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영어 학교가 들어선 한 마을에서 장사를 하는 한 아저씨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주변 상가들이 영어 간판을 달 필요가 없다는 게 아저씨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일반 뉴스 인터뷰와는 달리, 시간이 조금 길었다. 그래서일까. 점점 아저씨가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회심의 한 마디를 내뱉는다.

 

"아니 자기 나라 말도 못하면서 무슨 외국어를 해요. 그걸 공무원들이 앞장서고 있잖아. 아니 영어부터 가르치기 전에 자기 나라 말부터 똑.바.로 가르치라고 그래요."


목소리엔 강한 힘이 실렸다. 아주 뭐 통쾌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이어 관계 공무원의 해명이 시작됐다. "우수한 한글이 외국어와 함께 병기되면…(중략)"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잘 모르는 듯하다.


지루한 해명이 계속됐다. 사실 이렇게 영상이 끝나면 찝찝했을 것이다. X싸고 밑 안 닦고 나온 그런 안 좋은 느낌. 하지만 마지막 한 방이 있었다.


앞에서 한 말을 멋지게 짓이겨버릴 만한 그런 한 방.

 

"영어부터 가르치기 전에 자기 나라 말부터 똑.바.로 가르치라고 하고 싶어요."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신선'했다. '통쾌'했다. 이전 YTN '돌발영상'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런데 표현 방식은 '돌발영상'과는 사뭇 다르다.


화난 사람들은 어설프게 돌려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배경 음악을 통해서든지, 인터뷰를 통해서든지, 그냥 '대놓고' 말한다.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처럼 아주 거침없다.


생(生) 욕지거리도 이곳저곳서 튀어나온다. 물론 '삐~'하는 소리로 바꿔 들리긴 하지만.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버라이어티쇼' 재미 저리가라다.


다루는 내용은 우리 일상생활 속 이야기다. '택시 야간 승차 거부', '극장 팝콘 가격', '버스 정류장 금연', '학교 근처 비싼 방값' 등. 그래서 더 살갑다. 마음에 와 닫는다. 누군가에겐 목에 핏대 세워가며 얘기했을 법한 것들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말말'을 보며 억지웃음을 짓는 게 지겨운 이에겐 시원한 청량제로 다가온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화(火)난 사람들'이 '뉴스'란에 있는 이유를.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를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신명나게 짚어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난사람들, #KBS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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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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