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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젖소 등에 아이들이 앉아 있네.”
“어머머! 웬일이야! 젖소가 정말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가만히 앉아 있네.”

 

소금산을 지나 달리는 길가에 있는 휴게소였다. 주차장에서 내려 매점이 있는 쪽으로 가고 있을 때 눈앞에 나타난 풍경에 일행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니네! 젖소인 줄 알았더니, 속았잖아.”

 

그러나 가까이 다가간 일행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 젖소는 진짜가 아니라 모형 젖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양이나 크기가 실물에 가까워서 모두들 깜박 속았던 것이다.

 

황량한 사막의 길가에 만들어진 휴게소는 주차장도 넓고 시원한 모습이었다. 뒤쪽으로는 멀리 사해가 보이고 주차장 도로변에는 커다란 야자나무들이 우뚝 서 있는 풍경이 여간 멋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주차장에는 관광객들이 세워놓은 각양각색의 차들이 즐비했다. 매점 앞에는 예의 젖소모형 몇 개가 각각 다른 자세로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젖소모형들이 하나같이 실물에 가까운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어 일행들이 너도나도 그것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는다.

 

“이 곳은 이 지역 낙농키부츠에서 운영하는 낙농제품 판매점입니다. 제품의 질도 믿을만하고 값도 대체로 저렴한 편이니까 구입할 분들은 구입하세요.”


가이드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안으로 들어서자 각종 유제품을 비롯하여 일반 식료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일행들은 버스에서 마실 음료수를 구입했다. 몇 사람은 한창 인기가 좋은 올리브 식용유를 구입한다. 그러나 가격은 기대했던 것만큼 저렴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휴게소 뒤편으로 유제품을 생산하는 낙농키부츠 생산 공장이 바라보인다. 이곳에서는 젖소와 양을 직접 길러 생산한 우유를 공장에서 유제품으로 가공하여 판매까지 하는 것이었다.

 

 


식량을 수출하는 사막의 나라

 

“여러분! 이스라엘이 식량을 수입하는 나라일까요? 수출하는 나라일까요?”

 

낙농제품을 판매하는 키부츠가 있는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가 다시 홍해 쪽에 있는 휴양도시 에일라트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자 가이드가 던진 질문이었다. 모두들 창 밖을 내다본다. 왼편으로는 죽음의 바다라는 사해가 바라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앙상한 바위 산 너머가 네게브 사막이었다.

 

“글쎄요, 이런 사막의 나라가… 아무리 키부츠가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해도 식량은 부족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대답을 한다. 지금까지 돌아온 여행일정에서나 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아무래도 식량이 부족한 나라일 것 같았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자연환경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나라는 식량수출국입니다. 연간 10억불이 훨씬 넘는 식량을 주로 유럽 각국에 수출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주로 과일과 꽃을 수출하는 나라라고.”

 

“그렇습니다. 이 나라의 농업인구는 전체인구의 15%밖에 안 되지만 사막을 일군 땅에서 생산한 식량이 자국민들이 먹고 남아서 수출하는 나라가 분명합니다.”

 

“집단농장인 키부츠와 모샤브가 아직도 잘 되고 있습니까? 요즘 많이 쇠락했다는 말도 있던데.”

 

다른 일행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농업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근년 들어 많이 쇠락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에서 기적을 일군 나라로 유명하다. 이 나라의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 강원도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데, 그나마 그 절반 이상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강우량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자원은 오직 갈릴리 호수가 있을 뿐이며 비는 11월에서 4월 사이의 우기에만 조금 내린다. 그나마 연간 강우량이 북부 지방에는 700mm 정도이고 남부지방에는 겨우 50mm 정도로 지역적인 불균형도 매우 심하다. 연간 평균 사용가능한 물의 양은 16억 톤인데 이중에서 약 75%가 농업용수로 이용된다.

 

거의 대부분의 국토가 사막이어서 자연환경으로 볼 때는 사실 농업은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 그래서 크고 작은 수로와 파이프를 전 국토에 거미줄처럼 설치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농업형태도 독특한 키부츠와 모샤브라는 집단농장 형태를 갖고 있다. 키부츠는 사유재산이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모든 생산 수단을 공유하고 생산 분배한다. 언뜻 생각하면 공산주의 개념의 집단 농장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그 운영방식은 철저히 민주화되어 있으며 주민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고 있는 것이 다르다.

 

키부츠란 본래 '소집단'이란 뜻으로 공동으로 생산·판매·생활·소유하는 집단, 즉 공동 운명체로 묶인 집단농장이다. 이 키부츠는 회원이 불과 50명도 안 되는 작은 키부츠에서부터 1천명이 넘는 키부츠도 있다.

 

키부츠를 일으킨 사람들은 초기 이스라엘의 농업개발과 국가사회건설에 막중한 공헌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초창기의 정부와 국가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 키부츠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키부츠의 효시는 1909년에 설립한 드가니아 키부츠다. 드가니아는 갈릴리 호수 남쪽의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에 세워진 공동체다. 이 키부츠는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토지개발 회사(Pales'ne Land Development Company)에 최초로 고용되었던 노동자들 중에서 개척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또 하나의 다른 키부츠는 긴네레트(Kinneret)로 1913년에 세워진 키부츠다.

 

 


이스라엘에서 초기에 성공한 공동생산·공동분배라는 사회주의 이념을 배경으로 결성된 키부츠는 그러나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인한 경제적 비효율성과 구성원의 욕구불만을 초래했다. 모샤브는 이런 키부츠의 단점과 경제적 모순을 보완하여 형성된 또 다른 형태의 집단농장이다.

 

모샤브는 개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키부츠의 자급자족적인 시스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인 마케팅을 공동으로 펼치는 일종의 협동조합 성격을 띤 공동체다. 이런 모샤브가 형성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모샤브가 등장했다.

 

모샤브에서 생산한 수확물은 수출과 내수를 통해 개별 구성원의 이익창출로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북동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서쪽의 아라바 지역까지 약 350여 개의 모샤브가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이스라엘 농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적어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키부츠와 모샤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도 어학연수를 겸하여 많이 와서 일하고 있다 합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창 밖의 사막풍경은 여전히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식량을 자급자족의 단계를 넘어 수출까지 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거 혹시 종교사대주의 아닐까요?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계속 달려 이스라엘의 홍해 국경휴양도시 에일라트에서 출국수속을 하고, 다시 이집트의 국경도시 타바에서 입국수속을 거쳐, 이집트 여행을 계속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니 사해의 물빛이 달라져 있었다. 어떤 곳은 붉은빛을 띤 곳도 보인다. 유입되는 수량이 부족하여 말라가는 사해의 모습이었다. 놀라운 것은 사해를 중간 중간에 논두렁처럼 막아놓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막아놓은 모습은 바다가 아니라 마치, 우리네 봄날의 커다란 무논배미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대단한 것은 틀림없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너무하는 것 아닌가요?”


일행 중에서 누군가 엉뚱한 질문을 툭 던졌다.


“예루살렘 장벽도 그렇고, 여리고도 그렇고.”


잘사는 유대인들과 상대적으로 탄압받고 못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교하는 것이리라.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 사람들 툭 하면 테러를 하잖아요? 그러니 이스라엘로서도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요.”

 

가이드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편이었다.

 

“이스라엘도 사실 미국이 뒤에서 봐주지 않았으면 지금 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잖아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도 다 미국과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것이고.”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나쁜 것이 아니고, 엄밀히 따져 보면 분명히 테러를 일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잖아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일행 한 사람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을 들고 나섰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르잖아요? 수천 년 간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신들의 땅에 갑자기 몰려들어온 유대인들이, 자기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이라고 눌러앉아, 오히려 쫓겨났으니 억울할 만도 하지 않을까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유대인들로서도 물러설 곳이 없잖아요? 우리들이 객관적으로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로서야 벼랑 끝 싸움이겠지요?”


그것도 그럴 것이다. 이건 두 민족 간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유대인들이 정당한 것 같아요.”


잠자코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이건 막연한 편들기였다. 마음이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쏠림 현상이야 객관적인 정당성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거 혹시 종교사대주의 아닐까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짝사랑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냉정히 판단하면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짝사랑할 이유는 없었다. 기독교의 성지가 그 땅에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더구나 이스라엘인들은 지금도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때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시절 기독교 자체의 문제일 뿐이다. 국가와 국민들의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버스는 어느새 이스라엘의 국경도시이며 휴양도시인 에일라트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시가지와 거리는 말쑥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거리도 깨끗하고 휴양도시답게 말끔한 모습이었다.

 

이 도시는 기후도 온화하고 이스라엘 땅에서는 유일하게 아름다운 홍해바다에 접하고 있어서 휴양도시이자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인근에는 안쪽으로 요르단의 아카바항과 오른쪽으로 이집트의 타바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이집트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경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해야 했다. 입국이 아니고 출국이어서인지 심사는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이스라엘 지역을 안내해준 교포 가이드, 그리고 친절하고 깔끔했던 아랍인 버스운전기사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이집트 국경초소로 향했다. 이스라엘이여 안녕!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낙농제품판매점, #에일라트, #타바, #국경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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