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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인 경찰과 검찰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 진실을 밝혀야할 책임이 있는 기관이다. 하지만 그 같은 억울한 일을 6년간이나 밝혀내지 못하고, 고등법원에서 그 억울한 사연이 밝혀졌다면 어떻게 봐야할까?

그 억울한 사연이 복잡한 사안도 아니다. 초등학교만 나왔어도 문서의 진위여부는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가 공인기관의 문서 감정서는 물론, 숱한 증거물을 제시하면서 경찰과 검찰에 사실을 밝혀 달라고 간청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 같은 진실을 외면했다.

핵심은 4억원과 7억원 총 2매짜리 차용증을 둘러싼 진실공방. 하지만 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가해자와 유착했다는 의혹이 더 크게 일고 있다.

정씨의 재산에 압류가 들어 온 이유는

피해자인 정홍표(60)씨는 지난 2000년 2월경 대구에서 증권 투자를 하고 있었다. 당시 정씨와 한 증권사지점의 사무실에서 투자를 같이 하던 이아무개씨와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법원 재판자료 등에 따르면, 정씨는 당시 증권시장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반면 이씨는 10억원에 달하는 넉넉한 자금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큰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이씨는 2000년 2월 29일 정씨에게 자신의 주식계좌에 있는 예수금 및 주식평가액 기준 약 6억5천만원에 대해 정씨가 매수매도 권한을 주는 대신 그 이익금을 나누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계약은 한달이 채 안된 3월말 파기 되었다. 이씨의 부인이 이씨에게 주식투자를 계속하면 이혼을 하겠다면서 더 이상 주식투자를 하지 못하게 말렸기 때문. 잠시 끊어졌던 계약은 다시 한번 5월말경에 이씨의 부탁으로 성립됐다. 정씨는 이씨의 주식금의 매수매도 권한을 가지고 그해 9월까지 투자했다.

당시 이씨는 정씨에게 주식 매수와 매도 권한은 부여했지만, 주식금에 대한 인출 카드와 비밀번호는 이씨가 가지고 있어 정씨는 이 돈을 인출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정씨는 이씨의 주식계좌에 있는 약 4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가지고 주식을 사고 팔았지만 큰 이익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주식시장의 악화로 손해만 계속됐다.

같은 해 8월, 누적된 손해금이 많아지자 이씨는 정씨에게 새마을 금고에서 3억원을 대출받아 주식투자금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씨의 부동산과 정씨의 부동산을 공동담보로 대출받아 정씨가 개인적으로 필요한 1억원은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나머지 2억원으로 주식투자를 하자는 얘기였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서류 위조 

정홍표씨의 전 재산을 빼앗아간 유일한 증거로 인용된  4억원 차용증이다. A4용지 규격인데도 불구하고, 상단 부분이 비스듬하게 약 7cm 가량이 잘려 나가 있다. 조사결과 대출서류에 첨부된 관계로 스테이플러 자국등을 지우기 위해 잘랐던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 위조차용증 정홍표씨의 전 재산을 빼앗아간 유일한 증거로 인용된 4억원 차용증이다. A4용지 규격인데도 불구하고, 상단 부분이 비스듬하게 약 7cm 가량이 잘려 나가 있다. 조사결과 대출서류에 첨부된 관계로 스테이플러 자국등을 지우기 위해 잘랐던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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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이씨는 정씨에게 새마을금고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계속할 의사가 없던 정씨는 굳이 대출을 하면서까지 주식투자를 할 것인지 여부를 망설였다. 정씨는 고민 끝에 약속한 날 오후 4시가 넘어 마음을 결정했다. 부동산은 나중에 높은 값을 받고 팔면 되고, 일단 급한 자금은 이번 대출을 통해 일으켜 쓰자는 권유가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오후 4시가 넘어 동사무소에서 해당 서류에 첨부되는 인감 등을 뗀 후 오후 6시가 넘어 이씨와 같이 법무사 사무실에 같이 갔다.

당시 법무사 사무장이던 김아무개씨는 퇴근시간이 지났다고 말하면서 급하게 서둘렀다. 김씨가 대출서류라면서 내미는 각종 서류를 자세하게 검토를 할 여유 없이 정씨는 서명을 해줬다. 인감도 첨부됐다. 완벽한 서류가 갖추어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씨가 대출서류라고 믿고 찍어준 각종 백지위임장 등은 나중에 몽땅 차용금을 위한 증서로 둔갑되었다.

정씨가 찍어준 백지에는 4억원, 7억원 등으로 각기 다른 타자기를 사용해 금액이 적혀졌다. 그것도 부족해 수정잉크 등을 사용해 수정되기도 했다. 심지어 이면지를 사용해 작성돼 있어 육안으로 보기에도 11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차용증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문서였다.

그럼에도 이 두 장의 차용증은 정씨가 이씨로부터 돈을 빌려간 증거로 법정에 제출됐다. 이씨는 재판을 통해 정씨의 재산을 경매에 부쳐 돈을 가로챘다. 이씨가 제기한 1차 대여금 청구소송은 4억원이었고, 이 재판에서 승소하자 정씨는 다시 한 번 7억원의 대여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4억원짜리 차용증으로 재산을 빼앗아 간후, 정씨의 격렬한 반발이 계속되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또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재판에서 이씨의 사기 행각은 재판부에 의해 밝혀졌다. 이씨가 증거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한 7억원 차용증과 앞선 재판에서 제출된 4억원 차용증이 모두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대구고검은 지난 9월 7일 판결문에서 "이씨의 항소 및 당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정씨의 손을 들어 준 재판부... 차용증 위조 사실 밝혀내

대구고검이 정씨의 손을 들어 준 이유는 첫째, "정씨가 이씨의 계좌에 있는 현금이나 주식을 인출할 수 있는 증권카드와 도장 등은 이씨가 계속 소지하고 있어, 정씨가 이 사건 계좌에 있는 예수금이나 주식을 다른 계좌로 인출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두 번째로 "11억원의 차용증을 작성하면서, 스테이플러 자국으로 인해 차용증 상단부의 7cm 이상을 잘라야 할 정도로 상태가 불량한 재활용 이면지를 사용한 점", "작성 시점이 이씨는 오후 4시경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나, 서류에 첨부된 인감이 발부된 시간이 법무사 사무실과 상당한 거리를 격한 지점에서 오후 4시경 발부된 사실", "이씨와 법무사 사무장 김모씨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은 점", "차용증에 타자기를 사용해 가타한 점" 등을 지적하며 차용증이 '가짜'라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의 이 사건 각 차용증의 진정성립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각 차용증은 원고(이씨)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거의 전부를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지난 6년간 벌어졌던 정씨와 이씨와의 진실게임의 전모가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지난 2006년 7월경 대구검찰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장면이다. 가운데 양복을 입은 사람이 정홍표씨다.
▲ 시위장면 지난 2006년 7월경 대구검찰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장면이다. 가운데 양복을 입은 사람이 정홍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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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법 판결후 정씨의 심경과 향후 계획은

지난 9월 7일, 6년간의 검찰과 경찰을 상대하는 어려운 싸움끝에 진실을 밝힌 정씨는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깊은 탄식을 토했다.

그는 지난 2개월여 동안 기자와의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 내내 강조한 부분이 있다. "경찰과 검찰이 해야 할 일을 법원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또 "내 사건의 진실은 경찰과 검찰이 밝혔어야만 될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피나는 노력 끝에 법원에 가서야 밝혀지는 현실이 사법부의 현주소"라고 자조했다.

정씨는 "사법부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보낸 내용증명만 1500통이 넘는다는 것이다. 일반탄원서를 합하면 2000통이 넘는 다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정씨가 보낸 2000통의 탄원서 등 각종 서류는 검찰총장에게 보낸 탄원서만 150통, 법무부장관 등에 보낸 탄원서도 100통이 넘는다. 노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도 50통이 넘는다는 설명이다.

정씨는 "아무리 탄원서를 보내도 소용 없었다. 우체부 수고만 더했다, 이 같은 관행은 이제는 시정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억울한 사연을 아무리 강조해도, 해당 기관들은 접수된 민원을 기계적으로 다른 기관으로 이첩해 실질적으로 그 억울한 사연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소용이 닿지 않는다는 호소였다.

정씨는 자신이 지난 6년간 들인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 강조하면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잘못된 수사를 행한 경찰, 검찰에 대해 제정신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법부 바로세우기를 바라는 정씨의 나홀로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지켜 볼 일이다.


태그:#정홍표, #대구고등법원, #사법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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